5개월 사이 100억이 ‘오락가락’
▲ 국회 사무처직원들이 지난달 28일 전·현직 국회의원 등 315명에 대한 재산 신규등록과 변동사항 신고 내역을 게재한 국회 관보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 ||
개중엔 소유 부동산 공시지가의 변동, 주가 변동 등으로 인해 어쩔수 없이 재산의 변동이 생긴 경우도 있었으나 후보자 시절 재산신고에서 자신의 재산을 누락했다가 뒤늦게 신고한 사례도 여럿 발견됐다. 또한 용처를 확인하기 어려운 거액의 현금성 재산감소도 있었다. 또 후보자 시절엔 ‘군말 없이’ 등록했던 부모나 자식의 재산을 의원 재산신고 땐 ‘독립생계’를 이유로 고지 거부한 사례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변동 폭이 컸던 의원은 이회창 자유선진당 의원. 후보 때 신고한 재산은 -(마이너스)120억 5100여만 원이다. 이는 대선자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140억 대의 빚을 졌기 때문. 당시 재산신고 기준시점이 2007년 12월 31일이어서 이 의원이 대선자금 조달을 위해 빌렸던 금액만 기재됐던 것이다. 이후 올 상반기 이 의원은 선관위로부터 130억 원가량의 선거보조금을 받아 빚의 대부분을 갚아 현재엔 3억 원의 빚만 남아 있는 상태며 그밖의 기타 재산 내역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최근 재산등록에는 25억 원대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무려 140억 원 이상의 재산 변동 폭을 보였다.
재산이 증가한 의원 중 변동 폭이 두 번째로 큰 인물은 김세연 한나라당 의원이었다. 김 의원의 재산은 430억 2863만 원에서 512억 6020만 원으로 무려 79억 7396만 원이나 급증했다. 부채를 ‘탕감’해서 재산이 늘어난 이회창 의원과 달리 김 의원은 ‘부자’에서 ‘더 큰 부자’로 상승한 셈이다. 불과 몇 개월 만에 80억 원에 가까운 재산이 늘어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우선 김 의원의 부동산 재산은 155억 1920만 원에서 94억 3920만 원으로 줄었으나 그 외의 재산은 모두 늘어났다. 소유하고 있던 땅 중 한 건은 매각했고 대신 부산 동래구 수안동에 모친 명의의 세 필지의 땅을 추가로 신고했다. 또 본인 명의의 토지 한 건(경남 양산시 하북면 용연리 7XX-X번지 논)은 지난 신고에서 누락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인근의 땅 모두 지난 2005년 10월 24일 상속받은 것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김 의원 재산 급증의 이유는 건물과 주식 재산의 상승에 있었다. 건물 평가액은 219억 7650만 원에서 255억 9890만 원으로 후보 시절 신고 때보다 36억 2240만 원이 늘었고, 증권은 31억 7920만 원 상당이 늘어난 296억 9040만 원어치를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빚은 238억 원대에서 180억 원대로 줄어들었다.
김세연 의원에 이어 재산이 많이 불어난 이는 김노식 친박연대 의원이다. 김 의원은 후보자 시절 신고재산 총액이 16억 8895만 원이었는데 이번에는 이보다 22억 610만 원이 증가한 38억 9503만 원을 등록했다. 김 의원의 경우 부동산 보유분에서는 ‘큰’ 변화가 없었으나 그 외의 재산이 늘어나 전체 재산 규모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의 경우 후보자 당시엔 신고액이 4억 9711만 원이었는데 이번엔 이보다 3억 6542만 원이 증가한 8억 6253만 원을 등록했다. 이는 모친 명의의 논과 밭이 15건 추가되었기 때문. 부동산등기부 확인 결과 모친 명의의 이 부동산은 지난 85년에 매매한 것으로 후보자 신고 당시엔 누락했던 것으로 보인다.
▲ 이회창 의원은 후보 때 신고한 재산이 -120억 원이었지만 선거보조금 130억 원을 받아 대부분의 빚을 청산했다. | ||
조윤선 한나라당 의원의 경우엔 후보자 때 신고했던 재산(44억 5348만 원)보다 의원 신분으로 최근 공개한 재산(66억 4354만 원)이 21억 8100만 원 정도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조 의원이 후보자 시절 신고하지 않은 시부모의 재산을 이번에 등록했기 때문이다. 시부모의 재산 총액은 시어머니 소유의 서울 잠원동 아파트(공시지가 7억 600만 원), 경기 과천 주공아파트(4억 4800만 원)와 예금(8억 6153만 원) 등 약 20억 1200여만 원이었다.
문국현 창조한국당 의원도 15억 1950만 원의 재산이 늘어나 눈에 띈다. 문 의원은 총선 후보 때 81억 3580만 원으로 신고했던 재산 총액이 이번 재산등록에선 96억 5530만 원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건물 등 부동산 평가액은 줄어들었으나 채무액이 8억 가량 줄었고 예금액이 12억 4615만 원이나 늘어났다.
이 가운데 문 의원 본인 명의의 예금은 줄고(2억 3623만 원→1억 3058만 원) 대신 부인 명의의 예금이 급증했다(5억 9117만 원→18억 8297만 원). 장녀와 차녀 명의의 예금도 각각 3000만 원씩 추가로 신고돼 있다. 보유 주식에도 약간의 변화가 있었는데 본인이 소유하고 있던 주식은 거의 처분한 반면 같은 회사의 주식이 배우자 명의로 신고돼 있었다. 또 문 의원 명의로 된 유한양행 주식 100주도 지난 신고 당시엔 없었다가 추가로 기재돼 있었다.
김소남 한나라당 의원도 13억 6700만 원의 재산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총선 후보 때 신고한 재산 총액이 25억 9623만 원이었던 김 의원의 현재 재산규모는 39억 6324만 원. 이는 주로 동대문 용두동에 있는 본인 소유의 복합건물(주택·상가) 평가액이 늘어난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 건물의 평가액은 34억 1858만 원에서 23억 1416만 원이 오른 57억 4373만 원으로 신고돼 있다. 반면 김 의원은 총액 40억 9500만 원의 금융기관 채무와 건물임대 채무를 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산이 급증한 이들 의원과는 대조적으로 불과 몇 달 사이에 110억 원대의 재산이 줄어든 의원도 있었다. 민주당 비례대표인 정국교 의원은 지난 5개월 사이에 무려 112억 7543만여 원의 재산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 궁금증이 더해진다.
정 의원이 지난 4월 총선 당시 후보자로서 선관위에 신고한 재산 총액은 지난해 12월 31일 기준으로 502억 2104만 원. 그런데 최근 국회의원으로서 처음 공개한 재산 총액은 389억 4561만 원이다.
이 기간 동안 예금 총액의 경우 약 341억 4172만 원에서 308억 4227만 원으로 32억 9945만 원이 줄었다. 또한 자신이 대주주로 있는 에이치앤티(H&T) 주식(상장)의 경우 주식 총수는 그대로이지만 평가액이 113억 97만 원에서 77억 7782만여 원으로 35억 2315만 원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외에도 정 의원이 후보자 시절 공개한 산업금융채권 등 40억 6761만여 원 상당의 채권은 이번 국회의원 재산공개 항목에는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이로 보아 해당 채권을 매각한 것으로 추정된다.
▲ 양정례 의원의 경우 누락됐던 세 건의 부동산이 이번 재산등록에 추가로 포함되면서 후보 때 재산과 큰 차이를 나타냈다. | ||
잘 알려졌다시피 이 기간 동안 정 의원은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3월엔 민주당 비례대표 안정 순위(6번)로 공천을 받았고 그 덕에 4월 총선에서 가뿐하게 금배지를 달았다. 그러나 그 뒤 주가조작혐의로 검찰에 구속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현재 정 의원은 주식투자자들로부터 거액(440억대 추정)의 손해배상소송을 당한 상태다. 일단은 민·형사소송에 대처하기 위해 거액의 변호사 수임료 등이 지출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가 일각에선 지난 총선 당시 정 의원이 민주당 비례대표 공천을 받은 과정에 대해서도 의문을 나타냈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검찰 수사에서 이러한 의혹에 대해 밝혀진 바는 없다.
정국교 의원과 함께 정영희 의원도 재산이 31억 4153만 원이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 궁금증이 생긴다. 정 의원은 친박연대 비례대표 후보자 시절 48억 7612만 원을 신고했었는데 이번에 등록한 재산총액은 17억 3459만 원이었다. 정 의원의 경우 부동산 평가액의 변화로 재산 규모에 큰 차이가 생긴 것으로 나타났다.
재산이 크게 감소한 의원들 중엔 이영애 자유선진당 의원과 나성린 한나라당 의원도 있었다. 이 의원은 재산총액이 12억 9760만 원 감소했는데 소유 아파트 거래가와 예금액, 주식 평가액이 감소한 탓이었다. 나 의원도 9억 6595만 원의 재산이 감소했는데 토지는 늘어났으나 예금, 채권 보유액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부모나 자녀 재산을 등록하는 부분에 대해 후보 시절과는 다른 잣대를 내세워 눈길을 끈 의원들도 있었다. 정하균 친박연대 의원의 경우 후보자 재산신고 내역(9억 5266만 원)과 국회의원 재산등록 총액(4억 2970만 원)이 5억 2300만 원가량 차이를 보였는데 이는 후보자 시절에는 신고했던 모친의 재산을 최근 국회의원 재산등록 때엔 ‘고지거부’했기 때문이다. 후보자 시절 정 의원이 공개한 모친의 재산은 토지와 주택을 합쳐 약 4억 9000여 만 원이었다.
정해걸 한나라당 의원 역시 후보 시절 공개했던 두 아들의 재산을 이번 재산등록 때엔 독립생계를 이유로 고지거부했는데 후보 때 신고한 두 아들의 소유 부동산(경북 의성과 구미시 아파트) 평가액은 약 1억 5000만 원이었다. 조영택 민주당 의원 역시 후보 시절 공개했던 장남의 재산을 이번엔 독립생계를 이유로 고지거부했다. 조 의원은 총선 후보 때 장남 명의로 신고했던 서울 서초동 삼풍아파트 전세권 3억 2000만 원을 이번 재산등록에선 자신의 명의로 신고했는데 당시 장남 명의의 재산은 이 전세권 외에도 예금 1억 1930만 원이 있었다. 정영희 친박연대 의원도 지난 재산공개에서 신고했던 장남과 차남, 삼남 명의의 아파트와 임차권을 이번에는 ‘독립생계’를 이유로 고지거부했다. 이 아파트 거래가와 임차권 가격을 합하면 13억 원에 이른다.
그렇다면 ‘고지거부’는 어떤 경우에 가능한 것일까. 재산신고 대상자는 본인과 직계존비속 가족까지가 해당된다. 그런데 가족의 경우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이 있을 때엔 고지거부를 신청해 재산 내역을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 1인의 경우 월 소득 69만 4571원, 2인은 117만 6479원 이상의 소득이 있으면 고지거부를 신청할 수 있다. 공직자윤리위원회 관계자는 “고지거부 신청시 소득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합당하다고 판단될 경우 고지거부 신청이 받아들여진다”고 설명했다.
한편 재산변동 폭이 ‘거의 없는’ 의원들도 눈길을 끌었다. ‘최소폭’의 재산변화를 보여준 이는 김태원 한나라당 의원으로 100만 3000원이 증가한 것으로 등록했다. 박선영 자유선진당 의원(278만 6000원 증가), 이춘식 한나라당 의원(302만 원 감소), 백재현 민주당 의원(380만 4000원 감소) 등이 재산 변동 폭이 작아 상대적으로 주목을 끌었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