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위타순 전전하다 1번 올라가 멀티히트…현지 기자 “진루타 쳐주는 2번이 이상적”
[일요신문] 추신수(35·텍사스 레인저스)를 가리키는 가장 정확한 표현은 ‘출루 머신’이다. 별명도 ‘추추 트레인’이 아닌가. 그동안 좀처럼 부진한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추신수가 5월 10일(한국시간)과 11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경기에서 각각 4차례씩 출루하며 9타석 8출루로 올 시즌 최고의 성적을 올렸다. 특히 11일 경기는 1번 지명타자로 선발출장, 4타석 3타수 3안타 1볼넷 1타점 1득점으로 만점 활약을 펼쳤고, ‘오늘의 수훈선수’로 뽑혀 중계팀과 인터뷰하며 선수들이 뿌리는 ‘게토레이 샤워’까지 소화했다.
그동안 줄곧 7, 8, 9번에 서며 하위 타순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추신수가 1번으로 올라가자마자 연속 안타를 뽑아내는 배경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추신수는 타순에 영향을 받는 건가. 제프 배니스터 감독은 추신수를 왜 하위 타순에 둬야 했던 건지도 궁금할 따름이다.
추신수는 5월 11일까지 1번타자로 3게임, 2번타자로 16게임, 7번타자로 5게임, 8번타자로 7게임, 9번타자로 1게임에 출전했다. 1번타자로 출전했을 때는 5안타 1타점 4볼넷 OPS(출루율+장타율) 1.519를, 2번 타자로는 11안타 2타점 7볼넷 16삼진 OPS .445를, 7번타자로는 4안타 2홈런 6타점 5볼넷 OPS 1.259, 8번타자로는 6안타 1홈런 2타점 3볼넷 OPS .750, 9번타자로는 3안타 1홈런 3타점 OPS 2.200을 기록했다.
사실 표본 수가 적어 이 내용만으로 추신수가 어느 타순에 서야 성적이 더 좋은지를 단정 지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추신수는 2번보다는 1번에 설 때 좀 더 좋은 성적을 나타냈다. 메이저리그 통산 1204경기 중 1번 출전이 411회(34%)로 최다이고, 1번이었을 때 통산 타율이 2할8푼1리, 출루율이 .388이었다.
텍사스 제프 배니스터 감독은 시즌 개막 후 5월 3일까지 추신수를 개막전 한 경기를 제외하곤(이때는 1번 출전) 계속 2번에 세웠다. 그러다 추신수가 고전을 면치 못하고, 팀도 성적 부진에 빠지자 이후에는 7, 8번에 내보내다 급기야 9번 타순까지 세웠다.
추신수가 상위 타순이 아닌 하위 타순에 이토록 오래 뛰어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추신수의 타격감이 살아났던 5월 10일 샌디에이고전부터 1번타자로 뛰었고, 이후 팀은 3연승을 거뒀다. 그리고 5월 12일 경기에선 다시 2번타자로 출전했다.
지금까지의 성적만 놓고 본다면 추신수가 1번에 나서면 개인 성적은 물론 팀 성적도 함께 오른다는 걸 알 수가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매일 라인업을 새롭게 짜는 배니스터 감독도 3일 연속 추신수를 상위 타선에 배치했다.
그렇다면 추신수는 올 시즌 왜 이렇게 더딘 출발을 보인 걸까. 그가 최근의 출루 능력을 시즌 초부터 뽑아냈더라면 배니스터 감독은 그를 상위 타순에 고정하지 않았을까? 이에 대해 추신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지난 시즌 여러 차례 부상을 당하면서 올 시즌은 캠프 때부터 천천히 출발하는 걸 목표로 세웠다. 그런데 너무 천천히 몸을 만들어서 그런지 시즌 들어갔는데 타격감이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컨디션은 전혀 이상 없었다. 몸도 완전히 정상이었고. 그런데도 타격감이 떨어지는 걸 느꼈다. 나 혼자만이 아닌 팀 전체가 부진하니까 마음만 조급해지고, 그게 또 악순환으로 반복되고. 한마디로 총체적인 난국이었던 것 같다.”
추신수가 힘들어했던 부분 중에는 수비에 나가지 못하는 부분도 포함된다. 스프링캠프 때만 해도 배니스터 감독은 추신수에게 이틀 지명타자로 나가면 하루는 수비에 내보내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런 내용은 추신수와 사적인 식사 자리에서 거듭 강조했던 내용이다. 그러나 막상 시즌이 시작되고 보니 배니스터 감독은 추신수를 대부분 수비에서 제외시켰다. 계속 벤치에서 공격 기회만 기다리는 지명타자로 머물게 했다. 수비를 하며 뛰고 달려야 타격감도 좋아지는 추신수의 스타일과 거의 매일 지명타자로 경기를 치르는 상황은 추신수에게 혼란스러움을 안겨줬다. 감독은 왜 선수에게 했던 약속을 지키지 않는 걸까.
추신수는 감독이 마음을 바꾼 배경을 궁금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걸 직접 물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다음은 추신수의 얘기다.
“내가 감독에게 신뢰를 주지 못한 것 같다. 모든 건 감독의 권한이다. 선수는 그에 맞춰갈 수밖에 없다. 물론 수비만큼은 나도 자신 있다. 그런 자신감이 선수의 생각과 감독의 생각에 차이가 있다면 감독이 결정하는 대로 따라야 한다. 팀워크가 강조되는 상황에서 선수가 개인적인 목소리를 내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설령 자존심이 상한다고 해도 참고 가는 게 맞다.”
이번엔 텍사스 레인저스 전담 기자들에게 배니스터 감독의 선수단 운영에 대해 물었다. 지역 언론인 <댈러스모닝뉴스>의 텍사스 담당기자 에반 그랜트는 텍사스의 시즌 초반 부진에 대해 부상으로 전력에서 제외된 아드리안 벨트레의 부재를 꼽았다.
“텍사스 레인저스는 벨트레가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팀이다. 그가 부상으로 나가 있으면서 구심점 역할을 하는 선수가 없게 됐고, 팀이 어려움에 빠졌을 때 앞에서 리드하며 선수들을 끌고 가는 베테랑이 눈에 띄지 않는다. 벨트레가 3, 4, 5번에서 활약을 해야 상대팀 투수도 부담을 안고 가는데 중심타선이 매일 뒤바뀌다보니 전혀 효율적인 공격력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불펜도 예상과 달리 부진하다. 텍사스 선수들의 수비 능력에 대해 작년부터 계속 문제 제기가 됐었는데 올해도 이전에 비해 크게 나아진 점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지금 이 팀은 방향을 잃고 흔들리는 배처럼 보인다.”
에반 그랜트 기자는 추신수의 타순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추신수는 어떤 타순에 넣어도 충분히 제 몫을 해낼 선수이다. 그를 하위 타순에 배치하는 건 하위 타순에서 시작해 상위 타순으로 연결시키는 역할을 기대하지만 내가 보기엔 추신수한테 가장 적합한 타순은 2번이다. 1번 딜라이노 드쉴즈가 치고 나간 후 추신수가 진루타를 만들어주는 역할이 가장 이상적이었다고 본다.”
MLB.com의 텍사스 담당 T.R. 설리번 기자의 벨트레의 공백이 주는 영향에 대해 언급하면서 추신수의 타순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추신수는 어떤 투수가 나오든, 어떤 상황에 놓이든 상위 타순에 어울리는 타자이다. 물론 감독은 타순을 조정하면서 선수의 타격감을 끌어올리려 노력하지만 너무 잦은 타순 변경은 선수한테 혼란만 불러일으킬 뿐이다. 고정 타순을 두고 두세 개 정도의 타순을 변경하는 게 가장 바람직한 라인업이라고 생각한다.”
배니스터 감독은 그동안 추신수를 하위 타순에 배치한 데 대해 이런 설명을 곁들였다.
“모두가 좋은 타격감을 나타냈다면 선수들을 한 자리에 고정시키고 그 방식대로 팀을 운영해나갔을 것이다. 나도 매 경기마다 라인업을 짜느라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팀 전체가 부진한 상황에선 다양한 방법으로 선수들에게 자극을 줄 필요가 있다. 추신수의 타순 변경도 그 중 하나일 뿐이다. 성적인 안 좋다고 해서 하위 타순에 배치하는 건 절대 아니다. 하위 타순에서 상위 타순으로 연결하는 브리지 역할을 추신수에게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동안 하위 타순 출전이 잦았다. 이 부분은 향후 팀 성적이 어떤 방향으로 가는지에 따라 얼마든지 변경될 수 있다. 좀 더 지켜봐주길 바란다.”
미국 시애틀=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이번엔 마에다 휴식…LA 다저스 로버츠 감독의 10일 DL 활용법 며칠 전 LA 다저스타디움에서 구단의 한 관계자와 얘기를 나누던 중 기자의 귀를 의심할 만한 내용이 흘러나왔다. “마에다 겐타가 11일에 마지막 홈경기를 치른다”라는 스토리였다. 이게 무슨 소리일까. 몸에 전혀 이상이 없어 보이는 마에다가 홈에서 마지막 경기를 치르다니. 이 의문은 12일 풀렸다. 다저스 구단은 전날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와의 경기에서 선발로 나가 8⅓이닝 5피안타(1피홈런) 2실점 호투로 팀 승리를 이끈 마에다를 왼쪽 허벅지 근육통을 이유로 10일짜리 부상자명단(DL)에 올렸다. 류현진이 10일 DL에서 돌아오고, 손가락 물집 부상을 극복하고 곧 선발진에 복귀하는 리치 힐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마에다를 DL로 내려 보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지난 9일 또 다른 선발투수인 브랜든 맥카시가 10일 DL로 내려갔을 때 현장에선 로버츠 감독과 기자의 설전이 벌어졌었다. 구단에선 맥카시가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다가 왼쪽 어깨에 경미한 부상을 당했다고 발표했지만 정작 맥카시는 자신을 찾아온 기자에게 아픈 데가 전혀 없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맥카시로선 부상이 잦은 선수로 내몰리는 시선이 싫어서인지 모르겠지만 맥카시와 구단, 로버츠 감독 사이의 소통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이날 경기 전 진행된 감독 인터뷰에서 로버츠 감독은 기자들로부터 맹공격을 당했다. 그 내용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A 기자: 브랜든 맥카시가 왜 10일 DL에 올라간 건가. 감독: 예방 차원이다. 물론 맥카시가 지금도 공을 던질 수 있다는 건 알고 있다. 그러나 며칠 더 휴식을 주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한 번 선발을 거르기로 한 것이다. 맥카시로선 짜증이 날 것이다. 충분히 이해하지만 팀으로선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B 기자: 베터랑 선수들에게 이런 상황을 이해시킬 때 감독은 어떤 방법으로 선수에게 다가가나. 감독: 베테랑이건 어린 선수들이건 메시지는 확실히 전해져야 한다. 그들이 공감을 하든 안하든 내 입장에선 팀을 위한 선택이라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A 기자: 맥카시는 아프지 않다고 하던데. 감독: 무슨 오해가 있는 건지는 몰라도 난 그가 아프다고 들었다. 지금 상황에선 맥카시가 좀 더 휴식을 갖는 게 맞다. C 기자: 혹시 남아도는 선발투수들 때문에 10일짜리 DL을 이용하는 게 아닌가. 감독: (얼굴을 붉히며) 지금 우리 팀에는 7명의 경쟁력 있는 선발 투수가 있다. 이들이 시즌 끝날 때까지 모두 건강할 거라곤 생각지 않는다. 남들은 내게 행복한 고민이라고 말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선수 입장에선 불만이 생길 수도 있다. 감독으로선 어쩔 수 없는 결정을 내려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10일 DL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 그런 제도가 있기 때문에 선수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다고 본다. 난 선수들이 불만을 갖는다는 말이 고맙게만 들린다. 그만큼 건강하게 공을 던질 수 있다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닌가. 9일 로버츠 감독의 인터뷰가 있은 지 3일 후 기자가 들은 대로 마에다 겐타가 10일 DL로 내려갔고 한 매체에선 이를 두고 ‘다저스의 창의적인 DL 활용법, 이번 순서는 마에다’란 제목을 달았다. 이런 복잡한 팀 상황에서 12일 콜로라도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한 류현진이 10실점을 기록하며 시즌 5패(1승)를 떠안은 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류현진으로선 그날이야말로 뭘 해도 안 되는 날이었다.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