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자들 때려잡자” 콩가루 집회 전락
지난 5월 13일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서 태극기 집회가 개최된 가운데 일부 참가자들이 새누리당 지도부의 사퇴를 요구하며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고성준 기자 joonko1@ilyo.co.kr
13일 일부 참가자들은 행사 시작 전부터 ‘배신자는 물러나라!’ ‘대통령을 돈벌이로 이용한 배신자들을 때려잡자’ 등이 적힌 피켓을 흔들며 항의했다. 이들은 행사가 시작되자 “정광용(박사모 회장·새누리당 사무총장), 권영해(전 새누리당 대표) 등이 박 전 대통령을 이용해 사익을 취했다”고 주장하며 몸싸움까지 벌였다. 정 회장을 비롯한 국민저항본부 지도부는 현재 40억 원대 기부금법 위반 및 사기·배임 혐의로 고발당한 상태다.
새누리당 지도부 사퇴를 요구하고 있는 정광용 반대파들은 조원진 새누리당 대선후보를 지지하기 위해 모은 후원금을 지도부가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를 위해 사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한 반대파 인사는 “정광용 회장은 대선 기간 동안 유세에 잘 나타나지도 않았다. 돈줄을 쥐고 있는 사무총장이 적극적으로 선거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조원진 후보 측은 유니폼조차 구할 수 없어 애를 먹었고 일부 선거운동원들은 지방 유세를 할 때 자비로 비용을 충당하기도 했다. 후원금을 전부 어디에 썼는지 알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대선이 끝난 후 정광용 회장 측이 권영해 전 대표를 다시 영입하려 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반대파 분노는 극에 달했다. 권 전 대표는 대선기간 홍 후보로 보수후보 단일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새누리당을 탈당했던 인사다. 이를 두고 반대파들은 정 회장도 홍 후보 지지파가 아니냐며 문제를 삼는 모습이다. 반대파는 이에 항의하기 위해 지난 5월 14일 새누리당 당사를 찾았지만 문이 잠겨 있었다. 건물 외벽에는 임대 현수막이 붙었다. 정 회장이 당사를 정리하고 도주했다는 소문이 퍼진 이유다.
새누리당 측은 전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일요신문>이 평일 오후 찾은 당사도 정상 운영 중이었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그 사람들이 찾아온 것이 하필 일요일이었다. 대선이 끝났기 때문에 우리도 일요일에는 쉰다. 건물 외벽에 임대라는 문구가 써있던 것은 다른 사무실인데 사람들이 오해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 회장이 조원진 후보를 적극적으로 돕지 않았고 후원금 일부가 홍 후보 선거운동에 쓰였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정 회장이 선거기간 조 후보를 위해 열심히 뛰었다. 유세에 자주 참여하지 못한 것은 건강상 이유였다. 후원금 일부가 홍 후보를 위해 쓰였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면서 “선거 때 사용한 돈은 선관위에 모두 보고를 하게 되어 있다. 그런 돈을 함부로 다른 후보 선거활동에 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지난 대선 때 선거자금으로 16억 원을 썼다. 다른 정당들에 비해 선거자금이 턱없이 부족했다. 당의 지원이 미흡하다고 느꼈을 수 있다”면서 “당 지도부에서 홍 후보와 단일화 논의가 있었던 것은 맞다. 하지만 권 전 대표는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홍 후보를 도운 것이고 정 회장은 당에 남아 조 후보를 도왔다. 권 전 대표 등이 홍 후보를 도운 것도 박 전 대통령에게 더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지 배신을 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반대파들이 정 회장이 당을 장악하고 사당화하려고 한다고 주장하면서 끊임없이 흔들고 있는데 의도가 무엇인지 의심스럽다. 정 회장이 ‘선동이 무섭다’면서 ‘박 전 대통령이 탄핵 당했을 때 느낌을 알겠다’고 하더라. 정 회장이 직접 나서서 해명할 수도 있지만 지금처럼 사람들이 화가 난 상태에서는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다면서 당분간 아무 말도 안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일요신문>은 정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전화를 해봤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정 회장이 태극기집회를 주도하면서 기부금법 위반 및 사기·배임 혐의로 고발당한 것도 논란거리다. 국민저항본부 내부 관계자는 “지역 본부에서 관광버스 50대 정도를 동원하겠다며 중앙에서 지원비를 받아 놓고 실제로는 10대만 빌리는 등 회계가 불투명했다”면서 “중앙에서 지원비를 받고도 회비를 별도로 징수하는 경우도 있었다. 경남에선 이런 일들이 문제가 돼 돈을 일부 돌려준 적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국민저항본부 후원금 입출금 내역에 따르면 2016년 11월부터 2017년 2월까지 약 40억 3000만 원의 후원금을 모금했다. 그런데 이 중 신문광고비로 사용된 5억 2300만 원이 석연치 않다는 주장이 나왔다. 정 회장 등을 고발한 정영모 정의로운시민행동 대표는 “40억 원을 모금해 그 중 5억 원을 신문광고비로 사용한 것은 누가 봐도 과도한 비용지출”이라면서 “이 부분은 추후 별도로 고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후원금 입출금 내용을 보면 국민저항본부는 특정 언론사에 광고할 때 회당 850만 원을 지급했다. 이 액수는 다른 매체에 집행한 회당 100만~400만 원보다 두 배 이상 높다. 국민저항본부가 이 언론사에 지급한 광고비는 4억 원에 달한다. 국민저항본부 관계자는 “같은 언론사라도 이 매체는 발행부수가 월등히 많아 광고비가 비싸다고 했다. 광고효과도 더 좋았다”면서 “후원금 모금 계좌를 광고 하단에 게재했는데 광고가 나가면 광고비보다 더 많은 후원금이 들어왔다. 광고 효과가 있다고 판단해 광고를 계속 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관광버스와 관련한 의혹에 대해서는 “일부 지역에서 그런 일이 있었는지 중앙에서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중앙에서 지원비가 지급되어도 식비 등 모자란 부분은 자체 회비를 걷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영모 대표는 “정 회장을 고발한 이후 여러 제보들이 들어오고 있다. 국민저항본부가 대량 구매한 태극기 배지와 음향시설 등도 과다 계상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운 부분”이라면서 “철저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저항본부는 태극기 배지 구입에 2억 원가량을 지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
정광용 박사모 회장은? 정작 그녀와 불편한 관계 ‘희한하네’ 태극기 집회를 주도해온 정광용 박사모 회장. 고성준 기자 과거 키스콤이라는 광고제작사를 운영했던 정 회장은 지난 2004년 인터넷 포털에 박사모 카페를 개설하고 박근혜 전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지지해왔다. 이후 박사모 회원 수는 크게 늘어나 박 전 대통령 최대 팬클럽으로 성장했다. 정 회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과거에 대해 “특별하게 말할 것이 없다. 광고제작사를 하다가 음성인식 어학학습기 사업을 했었는데, 동업자 한 명이 수십억 원 떼먹고 필리핀으로 도망가는 바람에 결국 접었다. 아직도 안 돌아왔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박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한 후 4년 동안은 모 회사에서 월급쟁이 생활도 했다고 밝혔다. 경북 포항이 고향인 정 회장은 경영학을 전공했다. 정 회장은 인터뷰에서 영상소설 <쿠>(키스콤, 2000년), 수필집 <독도의 진실>(동강출판사, 2008년), 예수의 실존을 부정한 <예수는 없었다>(후아이엠, 2010년) 등 책도 몇 권 썼다고 밝혔다. 박사모는 막강한 조직력으로 박 전 대통령 당선에 크게 기여했지만 정작 박 전 대통령과 정 회장은 불편한 사이다. 정 회장은 지난 2007년 박 전 대통령이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선후보와의 경선에서 패배한 후 이 후보에 대한 지지유세에 나서겠다고 하자 이에 반발,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선 후보 캠프에 합류했었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호박가족을 공식 팬클럽으로 지정했다. [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