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 검사는 몰락하고 검찰개혁 칼자루 쥔 풍운아는 급부상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우병우 전 민정수석을 향해 개혁의 칼날을 겨누고 있다. 검찰 조직에 대한 대대적 개혁이 어떤 식으로 이뤄질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백성의 뜻을 살핀다’는 뜻의 ‘민정(民政)’은 말 그대로 국민의 여론을 살피는 업무를 담당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실질적으로는 청와대 직속 감찰 조직을 뜻한다. 민정수석실의 업무는 민정, 법무, 공직기강, 민원으로 나뉜다. 민정은 주로 검찰과 같은 사정 기관을, 법무는 법원·헌법재판소 등 사법부 관련 업무를 처리한다.
또한, 대통령-법무부 장관-검찰총장 사이에서 필요에 따라 대통령의 뜻을 전달하고 그 관계를 조율하는 역할도 한다. 이런 이유에서 과거 정권에선 대부분 검찰 출신이 민정수석에 임명돼 왔고, 대통령 친인척은 물론 고위 공직자 비리를 감시하는 역할 때문에 민정수석은 대통령 못지않은 권력의 상징으로 통했다.
우 전 수석은 대학 3학년 재학 중 제29회 사법시험에 최연소 나이로 합격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21세였다. 사법연수원 제19기를 차석으로 수료하고 검사가 된 그는 특수부에서 검사로 활약했다. 그렇게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검찰에서 두각을 드러낸 우 전 수석은 ‘특수통 최고 칼잡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렇게 탄탄대로를 걷던 우 전 수석은 2013년 검사장 승진에서 탈락하며 검사 생활을 마감해야만 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 출범 2년차인 2014년 5월 민정비서관으로 발탁된 뒤 1년도 채 안된 2015년 2월 민정수석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가 청와대로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권력서열 1위’로 알려진 최순실 씨 덕분인 것으로 짐작된다. 그가 민정수석으로 임명되기 직전, 최 씨와 우 전 수석의 장모가 골프 회동을 한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최 씨와의 ‘잘못된 만남’은 엘리트 검사로 승승장구했던 우 전 수석의 추락을 예고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뇌관이 터지면서 급기야 우 전 수석도 검찰과 특검의 수사를 받게 됐기 때문이다. 두 번이나 기각된 영장에서 보듯 ‘법꾸라지’의 면모를 보여줬던 그는 법적인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국정농단 사태를 방치했거나 묵인했다는 국민적 의혹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비록 구속은 면했지만 피고인 신분으로 재판정에 서야 하는 처지인 데다 새 정부가 ‘정윤회 문건’ 재수사 의지를 보이고 있어 또 다시 검찰 수사대상에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청와대의 ‘검찰 개혁’ 선언으로 검찰 안팎에는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박정훈 기자
우 전 수석이 ‘지는 별’이라면 조국 수석은 ‘뜨는 별’로 비유된다. 이명박 정부를 거친 4명의 민정수석과 박근혜 정부를 거친 6명의 민정수석 가운데 검찰 출신이 아닌 민정수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런 점에서 비법조계·학자 출신인 조 수석의 임명은 그 자체만으로도 파격적 인사로 평가받고 있다.
조 수석은 뛰어난 수재로 만 16세 나이로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에 입학했을 뿐만 아니라 26세 나이로 교수 자리에 오르며 ‘최연소’ 기록을 세운 인물이다. 2012년 대선 전부터 문 대통령 뒤에서 힘을 실어온 그는 20대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김상곤 혁신위원회’에서 활동하며 당의 혁신에 앞장섰다. 이번 19대 대선 기간에는 문재인 후보 캠프에 합류해 경제 정책 마련 등에 기여하기도 했다.
그동안 외곽에서 문 대통령을 지원사격해 온 조 수석은 오래전부터 검찰개혁을 주장해 왔다. 검찰개혁에 그 누구보다 단호한 의지를 보였으며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주장에도 적극 힘을 실고 있다. 그런 그가 대학 선배이자 민정수석 전임인 우 전 수석에게 칼날을 겨누기 시작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1일 조 수석에게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특검 수사 기간이 연장되지 못한 채 검찰 수사로 넘어간 부분을 국민이 걱정하고 그런 부분을 검찰에서 좀 제대로 수사할 수 있도록 했으면 한다”고 주문한 바 있다. 이에 조 수석은 12일 “정윤회 문건 사건에 대해 우 전 수석이 왜 그 사건을 덮었는지 조사하고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장을 불러서 누가 어떻게 세월호 특조위 조사를 방해했는지 조사할 것”이라며 재조사 의지를 피력했다.
또한, 정윤회 십상시 문건 사건에 대한 청와대와 검찰의 수사 방해 및 축소·은폐 의혹과 세월호 조사 외압 의혹에 대해서도 재조사 의지를 천명했다. 이전 정권의 수사에 미진한 점을 지적하며 주요 의혹 사건을 재조사해 남은 의혹을 불식시키겠다는 의지가 투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조 수석이 진두지휘하는 청와대발 검찰 개혁 선언으로 검찰 내부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다. 그야말로 폭풍전야다. 검찰청의 한 관계자는 “새 정부가 검찰을 개혁대상 1호로 삼고 있으니 물갈이를 하지 않겠느냐”며 ‘돈봉투 만찬’의 감찰이 조직 내 인적 청산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 검찰 관계자는 “할 말이 없다. 쓰나미가 밀려오는 것 같다”며 검찰 내 뒤숭숭한 분위기를 전했다.
‘민정수석’이란 막강한 칼날을 잘못 휘둘러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우 전 수석과 학자 출신으로 검찰개혁 칼자루를 쥐게 된 조 수석의 엇갈린 명암이 향후 전개될 검찰개혁 및 적폐 청산 과정에서 어떻게 조명될지 주목된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