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자꾸 그쪽으로 시선이…
▲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6월 6일, 7일 이틀간 불교계와 기독교계 지도자들을 청와대로 잇따라 초청해 민심을 수습하고 국정을 정상화하기 위한 조언을 청취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그렇잖아도 나라 살림이 어려운 마당에 정치권의 쟁점이 종교문제로 번지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청와대와 여권은 MB 정권의 ‘종교 편향’은 오해라며 불심 달래기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불교계 내부에서는 “대통령과 청와대를 비롯한 고위공직자 사회에서의 ‘기독교 편애’가 예상보다 심각하다”며 “불교에 대해서도 기독교와 동등한 대우를 해달라”는 목소리가 빗발치고 있다.
조계종, 태고종, 천태종, 관음종 등 불교계 각 종단 대표자들은 오는 27일 서울광장에서 ‘이명박 정부의 종교차별을 규탄하기 위한 범불교도 대회’를 열 계획이다. 일각에선 불교계의 집단적인 반발로 인해 기독교계와 반기독교 간의 종교전쟁 분위기가 만들어질 가능성까지 조심스럽게 점치고 있다. 현 정권 들어 불교계가 집단적으로 반발 움직임을 보이기까지 그동안 대체 어떤 일들이 일어났던 걸까. MB 정권과 불교계 사이에서 종교 편향 시비를 둘러싸고 빚어지고 있는 갈등 사태의 막후를 들여다보았다.
애초 불교계 내에서는 ‘친기독교’ 인사인 이명박 대통령(소망교회 장로)의 대선후보 시절부터 ‘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불교계가 여러 면에서 위축될 가능성이 많을 것으로 전망했다’고 한다.
정치권 관계자들도 비슷한 예상을 했었다. 중립적 성향을 가진 한 정치 컨설턴트는 “대통령의 출신지로 인한 영·호남 갈등보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기독교적 성향이 뚜렷해 ‘기독교 VS 반기독교’ 갈등이 벌어질 가능성이 예견됐다. 이 대통령이 실질적으로 주요 고위 공직자 인사에서 기독교 출신들을 편애하면서 이와 같은 우려가 현실화되었고 불교계의 움직임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재직 당시부터 ‘서울시 봉헌 발언’ 등으로 종교계를 민감하게 반응토록 했었다. 특히나 예민한 종교문제에 대해 대선 후보 당시부터 ‘시한폭탄’을 쥐고 있었던 셈. 대통령 취임 이후 내각 인사 등에서 ‘소망교회 인맥’이 대거 발탁되면서 비기독교계 인사들의 불만은 고조되기 시작했다.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기독교 편중 인사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고 주장,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 때와는 또 다른 ‘코드인사’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불교계에서는 이후 벌어진 MB 정권의 일련의 ‘친기독교적 정치행태’가 기타 종교계의 불만을 극대화시켰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기독교계 인사들이 주요 공직자 중 상당수를 차지한 데 이어(박스 기사 참고) 정부 및 사회 각계각층의 기독교 인사들이 노골적으로 ‘친기독교적’ 발언을 해왔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 논란에 불을 당긴 단초가 된 것은 지난 3월 당시 김성이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해 5월 한 일간지에 ‘사회양극화가 신앙심 부족 탓’이라는 취지의 기고를 한 사실이 밝혀지면서였다.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재직 당시 쓴 ‘사회복지정책과 믿음’이라는 기고문에서 김 후보자는 “사회적 양극화를 이념의 수준에서만 보고 있을 뿐 신이 우리를 돌볼 것이라는 확고한 신앙심이 부족하기 때문에 적극적 실천력을 찾아볼 수 없다”며 빈부격차의 심화가 신앙심 부족 탓이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을 폈다.
비슷한 무렵 이명박 대통령이 뉴라이트 김진홍 목사와 청와대 내에서 예배를 본 사실이 전해지면서 비기독교계의 반발은 더욱 커졌다. 불교계는 “공직자로서 헌법의 정신인 국민의 종교의 자유와 정교분리를 위반했다”며 이 대통령의 친기독교 성향에 대해 비판하고 나섰다.
이어 4월에는 청와대가 정무직 공무원에 대한 종교조사를 실시해 ‘종교 코드인사’의 자료로 활용할 가능성에 대한 의혹이 제기됐다. 청와대는 당시 이 내용을 보도한 시사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정부 취임 초기이다 보니 정무직 공직자들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사항을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또 언론에서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정부라며 종교를 가지고 문제 삼으니 검증 차원에서 참고 자료를 요청한 것이다”라고 해명했으나 이에 대한 사회 각계의 비판 목소리가 높았다. 청와대는 지난 5월 15일 부처님 오신 날에는 주요 사찰에 축전을 보내는 일을 ‘깜빡’했다가 뒤늦게 해명한 바도 있다.
이어 청와대가 촛불집회 주도자들을 체포하기 위한 과정에서 서울 조계사와 조계종 총무원 주변을 경계하던 중 또 다시 불교계를 자극하는 사건이 터지게 된다. 7월 29일 불교계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조계종 총무원장인 지관스님이 경찰에 검문검색을 당해 불교계의 반발이 최고조에 이른 것. 이후 이와 같은 분위기를 의식한 어청수 청장이 지관스님을 찾아가 사과의 뜻을 전했지만 지관 스님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6월 국토해양부가 제작한 대중교통안내시스템 ‘알고가’에는 작은 교회까지 표시하면서 사찰은 모두 누락시켰고, 8월에 교육화학기술부가 내놓은 교육지리정보서비스 학교현황 서비스에도 조계사는 물론 봉은사 등 전통사찰과 대형사찰들의 정보가 모두 누락된 것으로 전해졌다. 뿐만 아니라 서울시가 제공하는 어린이교육용 지도만들기 프로그램인 ‘내지도만들기’에서도 ‘사찰’이 배제돼 있어 파문이 예상된다. 이와 같은 정황으로 인해 불교계에서는 정부 기관 및 공직자 사회에서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불교계를 ‘배제’하는 정책이 펼쳐지고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또한 밖으로 드러난 큰 사건 외에도 공직자 사회 내에서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불교 배타적’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게 불교계의 주장이다. 한 정부기관 근무자는 “불교 모임 활동이 위축되는 분위기가 있는 게 사실이다. 실제로 기독교 출신 인사들이 주로 고위직에 발탁되다 보니 불교 신자들은 자신이 불교를 믿는다고 대놓고 얘기하지 않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 문제를 오랫동안 취재해온 <법보신문>의 권오영 차장은 “고위 공직자 사회에서 친기독교적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하위 공무원 조직에도 자연스레 영향이 미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불교계의 반발을 잠재우지 못한다면 사태가 좀 더 심각하게 확전될 가능성도 엿보인다. 조계종단에서는 지난 8월 11일 ‘종교차별 신고센터’를 개설하고 불자 및 국민들의 종교 편향 및 차별에 대한 사례접수에 나서고 있다. 이곳에서 제보 받은 민원에 대해서는 ‘대한불교조계종 종교평화위원회’에서 절차를 밟아 대처해 나갈 예정이라고 한다.
또한 ‘헌법파괴, 종교차별 이명박 정부 규탄 범불교도 대회 실천행동단’에서는 지난 11일부터 종교차별 규탄 릴레이 단식에 들어간 상태다. 오는 27일 범불교대회 이후에도 이들이 요구하는 대통령의 공식사과와 공직자종교편향 금지법이 만들어지지 않을 경우 전국 수만 명의 승려가 한자리에 모이는 전국승려대회를 열 계획이라고. 뿐만 아니라 ‘최후의 수단’으로 ‘산문폐쇄’까지 고려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산문폐쇄’란 전국의 사찰에 국민들의 출입을 금지하는 것으로 과거 전두환 정권 시절 군부대가 사찰에 진입한 일이 있었을 때 부분적으로 실시했던 적이 있었다. ‘산문폐쇄’를 하게 되면 승려들이 국민들에 대한 일체의 종교 서비스를 중단하고 수행에만 전념하게 된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고 있지만 정작 청와대는 마땅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최근 청와대 내에서는 맹형규 정무수석과 청와대 내 불교모임 ‘청불회’ 회장을 맡고 있는 강윤구 사회정책수석을 중심으로 불심 달래기 행보에 나서고 있으나 현재로선 역부족이다. 여권 핵심부에선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하는 것 아니냐’며 대책 마련에 고심 중이라는 후문이다.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이 최근 주요 사찰을 방문하며 유감 의사를 밝히긴 했으나 불교계의 반응은 곱지 않다.
종교편향 시비로 빚어진 MB 정부와 불교계의 갈등을 봉합할 만한 묘책은 없는 걸까. 한 종교문제 전문가는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절대적인 믿음이 작용하는 종교문제에 관해선 지도자로서 매우 신중한 처신이 필요할 것”이라는 조언을 건넸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