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후보시절 중국업체에 매각 반대…일각 ‘새 정권 눈치보기’ 분석
산업은행은 더블스타와 협상을 진행하면서 향후 5년간 금호 상표를 사용하고 이후 15년간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산업은행은 상표권자인 금호산업이 5년의 상표권 사용을 허락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금호산업은 “조건이 합리적인 수준이면 합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을 뿐”이라고 말해 양측 주장이 엇갈린다.
산업은행은 지난 4월 금호타이어에 원만한 합의가 도출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내면서 금호산업을 설득할 뜻을 보였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난 현재까지 금호산업과 협상은커녕 의견 교환조차 하지 않았다. 금호아시아나 관계자는 “지금도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의 상표권 계약은 1년 단위인데 향후 20년간 같은 금액의 계약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산업은행으로부터 협의 요청을 비롯한 어떤 연락도 받은 사실이 없다”고 전했다.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산업은행 본점.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산업은행은 채권 기간 연장문제에서도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더블스타는 오는 6월 만기인 금호타이어 채권 1조 3000억 원의 5년 연장을 요청했지만 일부 채권단이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은행은 “금호타이어의 일부 채권단으로부터 만기연장 거부 의사와 관련한 어떠한 의견도 전달받은 사실이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해명자료만 낼 뿐 채권단에 사실 확인을 하거나 채무 연장에 대해 설득하는 일은 없었다. 채권단 한 관계자는 “윗선에서 채권과 관련해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확인하기 어렵지만 산업은행으로부터 관련 내용을 공식적으로 전달받은 건 없다”며 “더블스타에든 박삼구 회장에든 부실자산인 금호타이어를 빨리 매각하고 싶은데 산업은행이 입장을 밝히지 않아 어떻게 일을 진행하고 있는지 우리로서는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결정은 은행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며 “조만간 채권단 회의를 통해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전했다.
산업은행의 최근 행보는 불과 한 달 전까지 금호타이어 매각에 적극적이었던 모습과 다르게 비친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더블스타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직후 회사에 박삼구 회장과 소송을 대비하라고 실무진에 당부하는 등 매각 의지를 강하게 보였다. 일부에서는 산업은행이 갑자기 더디게 행동하는 까닭은 새 정부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중국 업체에 금호타이어를 매각하는 걸 반대해왔기 때문이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게다가 이동걸 회장은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금융인 모임을 이끈 전력이 있어 친박계 인사로 분류된다. 산업은행을 관리·감독하는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최근 사퇴하면서 이 회장의 퇴진설에 무게가 실리는 상황이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이동걸 회장은 대우조선 사태에 대한 책임도 있다”며 “새 정부가 들어선 이상 누구보다 먼저 책임을 지고 본인의 거취를 표명해야 할 인사”라고 비판했다.
대우조선해양 문제, 금호타이어 매각 등 진행 중인 현안을 두고 산업은행 수장을 교체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또 이 회장의 임기는 2019년 2월까지로 1년 6개월 이상 남아 있고 문 대통령이 대탕평 인사를 추구하고 있어 이 회장의 퇴진 가능성을 낮게 보는 의견도 적지 않다. 퇴진설이 따라다니는 이 회장 입장에서 문 대통령의 뜻을 거스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교체든 아니든 산업은행 회장자리가 확고하게 결론이 나야 할 것 같다”며 “그 전까지 금호타이어 매각 문제는 올스톱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산업은행은 이 회장의 불안한 입지와 금호타이어 매각은 전혀 상관없다고 주장한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할 일을 순서에 맞게 하고 있을 뿐”이라며 “정권이 바뀌었다고 협상을 미루면 중국에서 분명히 문제 삼을 텐데 그걸 어떻게 감당하겠나”라고 반박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