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 최종변론 때도 “박근혜 대통령 석방을”
지난 25일 탄핵 반대 집회 사망사건 피의자 정 씨의 국민참여재판은 박근혜 전 대통령 뇌물죄 공판과 같은 시각 진행됐다.
정 씨는 경찰버스를 운행해 차벽을 50여 차례 들이받았고, 차벽 너머에 있던 소음관리차 지붕에 설치돼 있던 100kg 상당의 스피커가 떨어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스피커는 집회에 참가한 또 다른 남성 김 아무개 씨의 머리를 강타하며 떨어졌고, 김 씨는 응급실에 실려 가던 도중 두개골 골절 등으로 사망했다. 정 씨의 돌발행동으로 경찰버스의 앞 범퍼 교환 등 수리비로 850만 원이 발생하기도 했다.
검찰은 정 씨에게 특수폭행치사, 특수공무집행방해, 공용물건손상 및 자동차 불법사용 등의 혐의로 징역 3년을 구형했다. 정 씨는 “30여 년 간 운전기사로 근무했던 경력이 있었고 집회 참가자들이 헌법재판소로 가고 싶어 하자 길을 터주기 위해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며 자백했다. 그러나 피해자 김 씨를 폭행한 적은 없고 피해자가 사망할 것을 예견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재판부는 “이번 재판은 유사한 사례가 없었던 만큼 매우 이례적”이라며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직접적으로 폭행을 가한 것은 아니지만 김 씨 사망의 원인을 제공했다. 행동과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와, 이 같은 행동을 함으로써 김 씨가 피해를 입을 것을 예측했을 가능성이 성립돼야 특수폭행치사가 인정된다. 이 두 가지 사항을 잘 판단해야 한다”고 배심원들에게 설명했다.
검찰과 변호인은 각자의 사례를 들어 법정공방을 벌였다. 검찰 측에서는 묻지마폭행을 예로 들어 “묻지마폭행은 특정 사람을 때려야겠다는 생각으로 폭행을 가하는 게 아니다. 불특정다수에게 폭행을 가했을 때 폭행을 당하는 피해자가 생기는 것이다”라며 “피고인이 경찰버스를 탈취해 50여 번 전진과 후진을 반복해 방호차벽을 들이받을 때 차벽 너머에 있던 소음차가 육안으로 봐도 심하게 흔들렸고 이미 주변 경찰관과 시위참가자들에게 위험한 물건인 경찰버스로 폭행을 가한 것이다. 이후 스피커가 떨어지며 김 씨라는 피해자가 발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변호인 측에서는 “공사장이 움푹 파인 채 방치됐는데 밤에 전복사고가 나서 사람이 죽었다면 이는 운전자의 과실도 있지만 공사장 사후 관리를 제대로 안한 책임도 크다”며 “경찰 버스 관리를 제대로 안한 경찰에게도 책임이 있다. 경찰버스는 집회 참가자들 방향으로 주차가 돼 있었고 차키도 꽂혀 있어 누구라도 들어갈 수 있었다. 피고인의 폭행과 피해자 사망 사이에 경찰의 과실이 있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정 씨가 경찰버스를 탈취해 운전했을 당시 이후 상황을 예측했을 가능성에 대해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정 씨 변호인 측에서는 “피고인이 차벽을 충돌하고 나서 12분이 지나서야 스피커가 떨어졌고 우연히 지나가던 피해자가 맞았다”며 “참가자들과 정 씨가 차벽이 무너진 후 지나간 자리에 스피커가 떨어진 것인데 정 씨가 스피커가 떨어질 것을 알았다면 지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피해자는 폭행의 대상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정 씨가 버스에 타기 전에 차벽 너머에 소음차와 스피커를 충분히 봤을 것이다”라며 “집회는 폭력집회로 보도된 만큼 참가자들이 신체적 피해를 입을 위험성이 충분히 있었다. 정 씨가 스피커가 떨어질 줄 몰랐다고 말하는 것은 개인의 입장일 뿐 예견가능성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되고 신중하고 사려 깊은 일반인의 수준에서 판단 기준이 성립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인용 판결이 내려진 지난 3월 10일 헌법재판소 인근 사거리에서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 회원들이 격렬하게 탄핵 반대 시위를 벌였다.
증인으로 나온 경찰관들은 “집회 도중 차벽이 흔들려 신변의 위협을 느꼈고, 경찰 차량을 탈취하는 것은 유례 없던 일”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또 ‘차벽 충돌이 있었던 이후 왜 사고 원인이었던 스피커와 소음관리차를 치우지 않았냐’는 변호인의 질문에 “소음관리차는 방송을 위한 차이며 시위가 상당히 폭력적이었기 때문에 위험하니까 접근하지 말라는 방송을 하기 위해 스피커를 내려놓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또 경찰버스를 집회 방향으로 주차했으며 차키를 꽂아놓고 문을 잠그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서는 “집회 방향으로 주차하라는 지시를 받았고 지시대로 움직일 뿐이며 집회 방향대로 주차를 하고 말고의 매뉴얼 자체가 없다”며 “다른 차량도 모두 예상치 못한 상황을 위해 차키를 꽂아뒀으며 일부 경찰들이 버스 안에 들어와서 쉬기 때문에 문을 잠그지 않았다”고 답했다.
정 씨는 “대통령 탄핵 기각이나 각하가 될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인용이라는 결정이 들었을 당시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본의 아니게 사고 당한 분에 대해서는 슬프게 생각하고 우발적으로 저지른 죄에 대해서는 달게 벌을 받겠다”면서도 “지금 흘리는 눈물에는 형을 낮게 해준 검사에 대한 감사와 박근혜 대통령의 석방을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고 말을 이었다.
재판부는 정 씨의 특수폭행치사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결정했고, 나머지 혐의는 모두 인정해 정 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특수폭행치사 혐의가 적용되려면 특수폭행 자체가 성립돼야 하는데 이 사안에서는 성립되기 어렵다”며 “또 경찰버스 충돌 이후 스피커가 바로 떨어진 게 아니고 12분 있다가 균형을 잃고 떨어진 것이기 때문에 충돌행위까지만 피고인이 지배한 행위이지 이후 떨어진 것까지 사망을 인식하고 지배한 행위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배심원단 역시 특수폭행치사 혐의에 대해서는 만장일치로 무죄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재판부는 애초에 검찰에게 특수폭행치사에서 과실치사로 공소장을 변경할 것을 권유했지만 검찰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공판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중앙지법 관계자는 “사실관계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에 항소심이 진행될 경우 혐의를 과실치사로 변경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적용법령만 바꾸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변호사들은 “과실치사 혐의를 인정할 때도 예견가능성 여부가 중요한데 이번 경우에 과실치사가 인정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