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일요신문] ‘兵者 國之大事 死生之地 存亡之道 不可不察也’ 손자병법 첫 구절이다. 이는 병서 전체를 꿰는 맥이요, 병서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밝히는 지침과도 같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를 뺀 채 승리를 위한 전쟁 기술과 전략만 읽고 또 읽는다. 1차 대전에서의 패배 이후에 이 책을 진작 읽지 못했음을 안타까워 한 빌헬름 2세처럼 말이다. 이게 장미대선과 무슨 상관이냐고들 하겠다. 이유는 간단하다. ‘병자’ 대신에 ‘선거’를 넣어보면 된다. 다시 말해 선거는 또 다른 전쟁이라는 얘기다. 전쟁을 신중히 고려해야 하는 까닭은 나라의 미래와 백성의 삶 때문이다. 선거도 매한가지다. 때문에 선거에 나서는 정당과 후보들은 국가의 현실과 국민의 삶을 살피고 또 살펴야 한다.
필자는 지난 대선을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라 평한 바 있다. 좀 더 정확히 성공과 실패가 뒤섞여 있다. 이 평가는 여전히 진행형이지 완결은 아니다. ‘선거 이후’ 상황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더 확연해지거나 뒤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 한 가지를 빼놓을 뻔했다. 바로 글 전체의 중심이자 필자의 생각줄기다. 성공과 실패는 이상과 현실이다. 필자는 장미대선을 지켜보면서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을 꿈꾸었다. 확장성과 개방성, 합리성과 포용성으로 진정 통합과 개혁을 실현할 세력이다. 그리고 때 묻지 않은 정치세력이다. 분단국이라 하지만 좌우이데올로기에 목을 맨 ‘좌빨’과 ‘수구꼴통’에 신물이 난 탓이다.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하고 물과 기름처럼 따로 돌면서 무슨 수로 통합을 이룬단 말인가. 국민의 눈엔 이것도 적폐다. 대한민국 정치의 진화와 발전을 가로막는 골칫덩이니 사라지게 해야 한다. 이 둘을 통합으로 승화시키는 것, 그게 우리 정치의 또 다른 의무다.
이제 왜 그런 평가를 했는지 이야기할 순서다. 대선 당시의 시점으로 돌아가 네 명의 후보들을 차례로 살펴볼 텐데,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다루지 않는다. 글 쓰는 이의 지식이 미치지 못한 탓이니 달리 오해는 없었으면 한다. 이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가슴으로 손자병법의 첫 구절을 읽은 후보도 만나고, 그렇지 않은 후보도 만나게 된다. 손무의 얘기대로 기왕 시작한 전쟁이라면 이겨야 한다. 그렇듯이 선거의 현실적인 목적도 당선이다. 다만 그것은 더 나은 목적을 위한 수단이 돼야 한다. 한 가지 더, 필자가 말하는 성패는 당락이 아니라 선거전체와 그 이후를 두고 하는 말이다. 따라서 단순히 성패 요인이나 선거 전략을 분석하려 애쓰지는 않는다. 물론 그 내용을 완전히 비켜갈 수는 없으니 읽는 재미를 위해 곁들여 볼까 한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홍준표 후보에 의해 종북좌파로 몰린 후보다. 지금도 국민 중에는 종북세력 아니냐는 소리들을 한다. 필자는 이렇게 답한다. “내가 김정은이면 대선이 끝날 때까지 가만히 있겠다”고. 정말 종북좌파라면 대통령을 만들어야 하는데, 떠들어서 좋을 건 없지 않은가 말이다. 문 후보에게서 기억에 남는 건 적폐청산이다. 그 적폐가 뭔지 다 알 수는 없지만 가장 현실적인 문제제기를 한 셈이다. 물론 적폐청산이 개혁을 위한 것이겠지만, 개혁의 목적성, 방향성, 주체성, 대상성 등을 명확히 했다면 더 좋았을 듯하다.
당시 문 후보를 두고 다들 대세론을 얘기했다. 분명히 말하지만 대세가 아니었다. 탄핵과 보수세력의 분열에 의한 착시현상이었다. 탄핵정국에 따른 플러스 효과가 절대적이지는 않았다. 18대 대선 때의 득표율(48%)을 보더라도 문 후보에게는 최소 30%라는 고정 지지층이 있었다. 이런 문 후보의 지지율은 99% 물로 채워진 풍선이었다. 찔러봐야 새어나올 공기는 1%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문 후보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비문·반문연대를 주장했고, 타 후보들은 이념으로 맹공을 퍼부었다. 아무런 효과도 없이 문 후보만 이롭게 할 뿐인데 말이다. 이런 점에서 문 후보 역시 어부지리 효과를 부인할 수는 없어 보인다. 문 후보 입장에서야 보수의 실패만 집중 공격해도 중도 성향 국민 층의 결집을 차단하고, 중도와 보수의 연결고리를 끊을 수 있었다. 또 진보에 가까운 중도세력의 일부(대략 10%)를 흡수할 수 있었다. 아마도 수성(守城)전략이 아니었을까 한다. 마키아밸리는 성벽을 허물라고 했지만, 어쨌든 그게 효과를 톡톡히 본 셈이다.
이제 문재인 대통령. 필자를 놀라게 한 한마디를 했다. 임기 내 노 전 대통령 추모식 참석은 마지막이란 말이다. 이 얘기는 박 전 대통령이 몰랐던 대통령직의 의미를 안다는 뜻이 아닐까. 첫 출발은 신선하고 좋다. 게다가 NSC 첫 회의에서 강력한 대북규탄 메시지를 전달해 종북좌파니 안보불안세력이니 하는 비판을 무색케 했다. 그리고 필자가 늘 강조해 온 두 가지를 천명했다. 개혁과 통합. 물론 필자는 통합을 넘어 공유를 기대했지만. 어쨌든 이 두 가지만 성공한다면 문 대통령의 말대로 역사는 그를 성공한 대통령으로 기록할 것이다.
그러자면 넘어야 할 산도 많다. 탄핵효과의 한계도 있고, 청와대 자리싸움이나 하는 집권여당의 모습도 그렇다. 이전의 대통령들과는 다름을 보여주기엔 5년이 짧을 수도 있다. 이왕에 적폐청산의 칼을 빼들었다면 새 시대를 여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혹여 정치보복을 하거나 또 다른 블랙리스트를 만든다면, 또 스스로를 이념의 틀에 가둔다면 19대 대선은 실패일 수밖에 없다. 4대강도, 박 전 대통령 재수사도, 검찰개혁이나 삼성도 원칙에 따라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 본질이 뭐든 보복으로 비춰지기에 충분하니까 말이다. 부디 문 대통령의 성공이 국민과 함께 이룬 성공이기를, 국민의 기대가 물거품처럼 사라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모두의 대통령이 되어 달라는 당시 유승민 후보의 조언을 가슴에 깊이 새겼으면 한다. 국민이 두 눈 뜨고 지켜본다는 것을 한 순간도 잊지 말아야 한다.
국민의 당 안철수 후보. 안타까운 후보다. 3등이란 성적 때문이 아니다. 안 후보가 내건 가치와 비전이 자의반 타의반 빛바랜 울림이 된 탓이다. 미래와 국민이란 두 개의 키워드를 던지고도 말이다. 선거를 흔히 프레임 싸움이라고 한다. 필자는 대선 프레임이 ‘과거와 미래’여야 한다고 줄곧 얘기했었다. 안 후보는 이 프레임을 내걸었지만 용두사미가 되고 말았다. 그뿐인가. 국민이 이긴다는 슬로건을 내걸었으나 민심을 얻기엔 역부족이었다. 왜 그랬을까? 한 때 안 후보는 급부상론의 중심이었다. 앞서가는 문 후보를 꺾을 유일한 후보처럼 보였다.
그러다 얼마 못가 지지율이 곤두박질 쳤다. 이는 후보 개인보다는 민심의 흐름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다. 이념에 지쳐 은둔해 있던 중도성향의 국민(대략 40%쯤 된다. 그 분포를 보면 중심에 20%,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10%가 있다)이 ‘나 여기 있소’를 외치며 수면 위로 머리를 내밀었다. 지난 70년간 좌와 우에 시달리다 못해 이제는 먹고사는 문제를 고민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눈에 안 후보가 보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안 후보의 중도는 확장성을 가졌어야 한다. 중도·보수 통합을 내세웠지만 말뿐이었다. 대선판을 뒤흔들던 이념논쟁의 벽에 가로막혔다. 그 사이 가는 실타래로 엮어놓았던 양쪽의 지지세를 문 후보와 홍 후보에게 내어주고 말았다. 안철수의 실험이 실패한 이유는 이처럼 프레임 싸움에서 밀렸기 때문이다. 좌우를 통합하는 중도세력의 확장을 통해 대선이 이념대결구도로 전개되는 것을 막았어야 한다.
또 하나 자력으로 물풍선을 넘어서려 한 탓이다. 급부상론에 때 아닌 자신감이 솟구쳤던 게 문제다. TV토론을 지켜본 대다수의 국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것도 모자라 홍준표 후보로부터 안초딩이란 비아냥거림까지 받았다. 역설이지만 이 때문에 급격한 하락의 길로 접어든 게 아니다. 선거에서 이미지 만큼 중요한 건 없다. 그렇다고 이미지가 전부는 아니다. 의외로 그 효과는 크지 않다. 다른 까닭이 있다. 안 후보가 말한 미래와 국민이 뭘 뜻하는지를 분명히 하지 못했다. 특히, 그가 내세운 중도가 어떤 것인지조차 불분명했다. 그 얘기는 중도성향의 국민을 제대로 끌어안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도·보수 통합을 이루지도 못했다. 이탈보수세력(10%)은 언제든 보수 쪽으로 다시 기울 가능성이 있었는데도 이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대선연대전략도 흐지부지됐다. 유 후보를 선택해 보수·중도 통합을 완성했다면 어땠을까. 종북만 외치던 홍 후보를 공격해 이탈보수층이 유 후보로 기울게 해 연대의 명분을 줄 수도 있었다. 앞으로의 선택과 행보에 달렸다. 어쩌면 다음이 마지막 기회가 될 지도 모른다.
글이 길어 유승민 후보와 홍준표 후보 얘기는 다음 편에서 이어가야겠다.
* 이지상 / 연세대 정치학 석사
경북대 정치학 박사과정 수료
전 국회의원 보좌관
현 경북대 사회과학연구원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