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돌아오면 한나라 두동강?
▲ 한나라당 ‘공천파동 3인방’으로 불리는 이재오 전 최고위원, 이방호 전 사무총장, 정종복 전 제1사무부총장(왼쪽부터)의 내년 재·보선 출마설이 확산되면서 친박계는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 ||
4·9 총선에서 무난히 4선을 하리라던 예상을 뒤엎고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에 패배했던 이 전 최고위원은 미국에서 사실상 정치를 재개한 상태다. 워싱턴 한국 특파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대운하의 경제성을 강조해 뉴스 메이커의 면모를 보이는가 하면 수시로 측근 의원들과 전화통화를 통해 정국에 대한 의견을 전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최고위원 측은 특히 법무부가 지난 4일 MB의 결재를 거쳐 문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를 정식으로 요청, 재·보선의 가능성이 대두되면서 바빠지기 시작했다. 문 대표가 같은 당 이한정 의원으로부터 6억 원의 공천 헌금을 받아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는 것이 체포동의 요청 이유였다.
이 전 최고위원 측은 문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가 “이재오 살리기를 위한 문국현 죽이기”라는 항간의 시각을 우려해 재·보선 출마에 대한 직접 언급은 자제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동안 나돌던 조기 귀국설에 대해서도 “내년 초까지는 국내로 귀국할 계획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기회가 주어진다면 굳이 마다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 전 최고위원과 자주 전화통화를 한다는 한 전직 의원은 “이 전 최고위원은 정국과 당내 상황에 대해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하며 MB정권의 성공을 위한 자신의 역할을 고민 중이라고 말하곤 한다”며 “연말 개각 또는 내년 4월 재·보선을 통해 정치 전면에 나서겠다는 뜻은 확고해 보였다”고 말했다.
총선 공천 작업을 사실상 ‘좌지우지’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이방호 전 사무총장도 요즘 서울과 지역구(경남 사천)를 오가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한동안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에 패배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이 전 총장은 최근엔 당 내외 인사들을 두루 접촉하며 행동반경을 넓혀가고 있다. 고교(부산고) 선·후배지간인 최병국 권경석 정의화 의원과 안경률 사무총장 등과 회동을 가지며 정계복귀 대책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미국에 체류 중인 이재오 전 최고위원과도 가끔 전화통화를 하며 의견을 나누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 전 총장은 만나는 사람들에게 총선 공천 과정에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 해명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개혁공천을 위해 주어진 여건에서 나는 최선을 다했다. 다만 박근혜 전 대표 측에 반격의 빌미를 준 것은 잘못이다. 그러나 ‘박근혜계 학살’이란 표현엔 수긍할 수 없으며 박 전 대표 쪽 사람들도 살릴 사람은 다 살려줬다”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총장은 지역구에서 재·보선이 실시되면 반드시 출마해 명예회복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경찰이 최근 강기갑 의원에 대해 선거법 위반 혐의로 출석요구서를 보낸 것으로 확인되면서 사천에 머무르는 시간을 더욱 늘리고 있다는 것이 주변 인사들의 전언이다.
공천심사위원회 간사로 공천 실무를 총괄했던 정종복 전 제1사무부총장도 출마를 위한 워밍업에 들어갔다. 정 전 부총장을 꺾고 당선된 김일윤 의원(경북 경주)은 금품살포 및 허위사실 유포 등의 혐의로 지난 6월 27일 1심에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고 구속된 상태. 법조계에 따르면 김 의원에게 2·3심에서도 금고형 이상의 형량이 내려질 것으로 보여 지금으로선 재·보선 실시가 기정사실로 여겨지고 있는 상황이다.
정 전 부총장은 당초 지난 7월 청와대 참모진 개편 당시 민정수석으로 입성하는 데 큰 기대를 걸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최대 후원자였던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이 정두언 의원과의 권력투쟁으로 도마에 오르자 정 전 부총장의 ‘청와대 행’을 만류하면서 상황이 틀어져 버렸다. 총선 당시 공심위 내에서 이 전 부의장의 ‘대리인’ 역할을 했던 정 전 부총장은 이 일로 그와 소원한 관계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전 부총장은 주변에 “재·보선이 치러지면 당연히 출마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고 있다는 게 주변의 전언. 정 전 부총장은 앞으로 김일윤 의원의 재판 상황을 지켜보며 지역구 활동을 늘려갈 계획이다. 지난 광복절 특사로 복권이 확정된 박창달 전 의원의 출마설이 나도는 것이 신경 쓰이지만 크게 변수가 되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형준 홍보기획관의 경우는 재·보선 출마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 위의 세 사람과 달리 지역구(부산 수영) 현직 의원이 같은 한나라당 소속 유재중 의원이기 때문이다. 유 의원은 지난 총선에서 친박 무소속연대 후보로 나서 당선된 후 지난 7월 중순 한나라당에 복당했다.
유 의원은 현재 총선 과정에서 사전선거운동을 한 혐의로 검찰에 입건된 상태. 그러나 의원직 상실로 이어질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 기획관은 한때 수도권 재·보선 출마설이 거론되기도 했지만 본인이 강력 부인해 수면 밑으로 가라앉은 상태. 한 측근은 “박 기획관은 어떤 일이 있어도 지역구를 옮기지 않겠다는 입장이 확고하다”며 “청와대 홍보기획관 자리에 그렇게 오래 있으려 하지는 않을 것이며 기회가 된다면 다음 개각을 통해 입각하는 것에도 생각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편 총선 공천 과정에서 이 전 최고위원과 이 전 총장, 정 전 부총장 등과 첨예하게 맞섰던 박근혜계는 이들의 ‘롤백’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박 전 대표의 한 핵심측근은 “당 지도부가 만약 재·보선에서 세 사람에게 공천을 주려 한다면 당이 다시 한 번 내홍에 휩싸일 것”이라며 “이미 당 밖 친박(친 박근혜 전 대표) 의원들의 일괄복당으로 지난 총선 공천에 문제가 있었음을 당 차원에서 인정한 마당에 공천 파동의 주역들에게 재·보선 공천을 준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제 당내에선 창조한국당 문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경우 박근혜계는 대거 ‘부’표를 던질 것이란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박근혜계로선 구원이 깊은 이 전 최고위원의 국회 재입성을 결코 바라지 않을 것이란 점에서다. 박근혜계 한 의원은 “이 전 최고위원 등 공천 파동 3인방에 대한 공천 여부가 MB와 박 전 대표의 앞으로의 관계를 가늠할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