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컬슨의 자유분방하다 못해 광적인 생활은 지난 1968년 첫 번째 부인 샌드라 나이트와 이혼한 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할리우드에 진출한 후 차츰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60년대 후반 당시 절친한 친구이자 이웃사촌이었던 말런 브랜도와 수많은 여자를 바꿔 가면서 관계를 가졌는가 하면 파티가 끝난 후에는 어김없이 하룻밤에 여러 명의 여자와 잠자리를 가지면서 지치지 않는 정력을 과시했다.
70년대 초반 <파이브 이지 피시스>의 성공 이후 점차 할리우드에서 입지를 굳혀 가던 니컬슨은 여자 문제에 있어서도 보다 자신감(?)을 얻게 됐다. “나는 세상 모든 여자를 다 품에 안았고, 모든 마약도 다 손대봤고, 또 모든 술도 다 마셔봤다”고 큰소리를 치기 시작했던 것.
이런 그의 배짱은 심지어 ‘내기’로까지 이어졌다. 당시 막역한 사이였던 배우 워런 비티와 “일정한 기간 안에 누가 더 많은 여자와 자느냐”로 시합을 했던 것.
한 측근은 “당시 그들은 만나는 여자들마다 닥치는 대로 잠자리를 가졌다”고 말했으며, 이런 소식을 들은 내로라하는 슈퍼모델들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기꺼이 날아와 그들과 관계를 가지고 돌아가곤 했다.
하지만 기고만장하던 그의 콧대도 잠시 꺾였던 때가 있었다. 감독 데뷔작이었던 <드라이브, 히 세드>가 흥행에 참패하자 잔뜩 풀이 죽었던 그는 당시 위로를 받으면서 애정이 싹텄던 가수 미셸 필립스와 진지한 교제를 갖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얼마 안 가 다시 바람기가 발동해 이번에는 감독 겸 배우인 데니스 호퍼의 전처들인 브룩 헤이워드, 다리아 핼프린 사이를 오가며 연애를 즐겼다.
그러던 중 드디어 바람둥이 니컬슨에게도 ‘운명적인 상대’가 나타났다. 유명 감독 존 휴스턴의 딸이자 배우인 안젤리카 휴스턴을 만나 사랑에 빠진 것. 당시 불과 22세였던 휴스턴과 14세라는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동거를 시작했던 니컬슨은 그후 17년 간 지속적으로 휴스턴과 관계를 맺으면서 주위를 놀라게 했다.
물론 바람을 전혀 피우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휴스턴과 공식적인 커플 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염문을 뿌리고 다니면서 가십지를 장식했던 것. 이에 휴스턴은 “내가 보지 않는 곳에서만 바람을 피우면 다 용서하겠다”면서 애써 태연한 척했다.
당시 휴스턴과 사귀면서 그가 교제를 했던 여성들에는 배우 베로니카 카트라이트를 비롯해 당시 캐나다 총리의 부인이었던 마가렛 트루드 여사도 포함되어 있었다. 카트라이트는 당시 니컬슨을 가리켜 “그는 대단한 정력의 소유자이며, 여러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섹스를 할 수 있을 정도였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또한 니컬슨은 트루드 여사와 리무진 승용차의 뒷좌석에서 첫 관계를 가진 후 다시 한 번 화장실 안에서 은밀한 시간을 보내는 등 총 두 차례에 걸쳐 관계를 가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록그룹 ‘에어로스미스’의 리드 싱어인 스티븐 타일러와의 사이에서 유명 배우 리브 타일러를 낳은 슈퍼모델 베베 뷔엘과도 은밀한 관계를 가졌던 그는 당시 임신중이었던 뷔엘에게 “난 임신한 여자가 좋다”면서 침대로 유혹하기도 했다.
하지만 제아무리 부처 같은 마음을 갖고 있다고 해도 참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 법. 마침내 당시 만나던 웨이트리스 출신의 레베카 브로사드가 니컬슨의 딸을 출산하는가 하면 영국 배우 카렌 메이요-챈들러가 니컬슨과의 섹스 스토리를 <플레이보이>에 팔아버리자 17년 동안 그의 곁을 지키던 휴스턴은 영원히 떠나고 말았다.
휴스턴이 떠나자 당시 애써 덤덤한 척했던 니컬슨은 10년이 지난 지금 뒤늦게 그녀를 놓친 것에 대해 땅을 치고 후회하고 있으며, “그녀야말로 진정한 내 인생의 반려자였다”면서 아쉬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