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껑 열면 너도 나도 다쳐!
검찰은 또한 강원랜드 공사를 수주한 한 건설사에서 흘러나온 비자금이 현직 국회의원 두 명과 연루된 단서를 잡고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고 한다. 검찰의 강원랜드 사건 관련 ‘비자금 X파일’을 단독 추적했다.
검찰이 케너텍을 압수수색한 것은 이 회사 회장 이 아무개 씨가 강원랜드에서 발주하는 공사를 따내기 위해 강원랜드 고위 간부를 비롯, 정·관계 유력 인사들에게 금품을 제공했다는 첩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압수수색을 통해 이 씨가 강원랜드 시설개발팀장과 짜고 공사대금을 부풀리는 수법으로 회사 돈을 빼돌려 약 70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 광범위한 로비활동을 펼친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검찰은 케너텍 관련 부분을 ‘강원랜드 비자금 사건과는 별도로 수사한다’는 방침을 세워놓은 것으로 알려진다. 막상 케너텍의 뚜껑을 열어보니 로비 금액이나 대상이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회사 재무 담당 임원 사무실을 압수수색할 때 발견한 수첩이 결정적 단서였다는 전언이다.
회장인 이 아무개 씨가 직접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이 수첩 메모에는 이 씨가 금품을 제공한 대상과 금액이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고 한다. 소위 ‘뇌물 리스트’였던 것. 이를 바탕으로 검찰은 이미 이 씨와 이 씨로부터 1억 원가량을 받은 지식경제부 소속 사무관 한 명, 8500만 원을 받은 전 강원랜드 시설개발팀장을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했다. 또한 지난 20일 김승광 전 군인공제회 이사장을 배임수재 혐의로 구속한 상태다.
검찰은 수첩에 적혀 있는 다른 인물들도 이미 소환했거나 조만간 조사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 가운데 몇몇은 공개될 경우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아 신중을 기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로비 명단에 공기업 사장 시절 수억 원가량을 받은 것으로 기록된 현직 차관급 고위공무원 A 씨의 경우 눈길을 끈다. A 씨가 현 정부 최고위층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만큼 뇌물을 받은 사실이 알려질 경우 이명박 정부에도 적잖은 부담이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찰 내부에서는 A 씨 수사가 오히려 호재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없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A 씨를 사법처리할 경우 ‘전 정권 인사에 대한 보복수사 표적사정’ 등과 같은 비난을 잠재울 수 있기 때문이다. 임채진 검찰총장이 지난 9월 9일 수원지검을 방문한 자리에서 “수사 결과로 검찰 수사에 제기되고 있는 의구심을 없앨 것”이라고 강조했던 것도 A 씨 수사에 힘을 실어줬다고 한다.
검찰에 따르면 A 씨 이외에도 전직 공기업 사장, 정부부처 공무원 등 10여 명이 수사 대상에 오른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은 적게는 수백만 원부터 많게는 수억 원의 뇌물을 받았다고 한다. 또한 검찰은 케너텍이 ESCO자금(에너지절약기업에 정부가 지원하는 돈)을 지난 정권에서 가장 많이 받으며 급성장했던 배경이나 금융권으로부터 돈을 대출받는 과정 등에 대해서도 의혹을 품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고 한다. 이와 관련, 정태근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해 케너텍이 에너지관리공단으로부터 추천을 받아 녹색성장지원자금 364억 원가량을 특혜 대출받았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편 강원랜드 비자금 의혹 수사에서는 B 건설사에서 흘러나온 자금을 집중 추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지난 9월 초 이 건설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통해 회사 대표 C 씨가 역시 공사대금을 부풀리는 수법으로 100억 원가량의 돈을 횡령한 사실을 밝혀냈다고 한다. 이 돈이 공사를 따내기 위한 로비에 사용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B 건설사는 그동안 강원랜드 인공호수 주변 시설을 비롯해 여러 공사를 수주했다고 한다. 회사 대표 C 씨는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 자문기관에 몸담기도 했던 인물로 강원랜드 비자금 연루 의혹을 받아온 D 의원과 친분이 두터운 사이라고 전해진다. 한때 D 의원의 후원회에도 가입했었다고. 이 때문에 검찰은 D 의원과 C 씨 간의 커넥션을 찾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케너텍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이미 구속된 강원랜드 시설관리팀장도 D 의원, C 씨와 밀접한 관계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검찰은 강원랜드 비자금 의혹을 풀기 위한 열쇠로 C 씨를 꼽고 있다고 한다. 또한 검찰은 B 건설사가 강원도에서 발주한 공사도 여러 차례 따냈던 사실을 밝혀내고 이 과정에서 D 의원의 압력이나 C 씨의 로비가 있었는지를 확인 중이다.
검찰은 강원랜드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었던 현역 국회의원 E 씨도 강원랜드 납품업체 등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가 포착돼 내사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은 E 의원에 대해 공사 수주나 인사 청탁 등의 명목으로 돈을 받은 혐의를 두고 있다고 한다.
D 의원과 E 의원은 모두 야당 소속. 확실한 물증이 없다면 검찰은 ‘보복·표적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D 의원은 벌써부터 공개적으로 검찰의 보복성을 거론하며 “떳떳하다”고 항변하고 있다. 그래서 검찰은 이들의 비리를 뒷받침하기 위한 증거를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강원랜드의 3∼4년 치 주요 공사 내역과 회계 자료, 공사 발주 관련 서류를 확보, 분석을 마치고 관계자들을 소환해 조사 중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