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레 고발자 사생활 때리기’ 정권 부역 언론 여기도…
그리고 의혹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아베 총리의 친구가 이사장으로 있는 사학재단이 수의학부 신설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놀랍게도 이를 폭로한 것은 전(前) 문부성 사무차관이다. 야당은 연일 국회에서 이 문제를 추궁하며, 아베 총리를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 철옹성 같던 아베 총리의 지지율도 한풀 꺾이는 모양새다.
부인 아키에에 이어 이번엔 아베 신조 총리 본인이 연루된 학원 스캔들이 터지면서 일본 정가가 시끌시끌하다. 사진은 5월 29일 북한 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아베 총리. 연합뉴스
이번 스캔들은 ‘작년 11월 일본 문부성이 아베 총리의 친구가 운영하는 사학재단, 가케 학원에 수의학부 신설 허가를 내준 게’ 발단이다. 일본 정부는 수의사의 과도한 증가를 우려해 지난 52년간 수의학과 신설을 허용하지 않았지만, 이례적으로 이 대학에 수의학부를 신설하도록 허용했다. 해당 지역에 수의대학이 없다는 명분에서였다.
그런데 지난 5월 17일 <아사히신문>이 ‘이번 건은 총리의 의향’이라고 적힌 문부성 내부 문서를 특종 보도했다. 가케 학원의 수의학부 허가와 관련해 “내각부가 문부성에 압력을 가했다”는 것이다. 당시 총리 관저는 “출처 모를 괴문서”라고 관련성을 부인했지만, 8일 뒤인 25일 마에카와 기헤이 전 문부성 사무차관이 “문부성 문서가 맞다”고 폭로하면서 의혹이 일파만파 확산됐다.
이처럼 논란이 거센 이유는 “가케 학원의 가케 고타로 이사장과 아베 총리가 아주 가까운 친구 사이”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아베 총리가 미국 유학하던 시절에 만나 ‘30년 지기’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따라서 민진당과 공산당 등 야당은 “총리의 친구에게 특별한 혜택이 주어진 게 아니냐”며 행정의 공정성 훼손을 의심하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아베 총리는 “이른바 ‘암반규제’라고 불리는 고질적 규제에 대한 개혁의 일환이었다”고 주장한다. 총리는 “만일 친분관계로 부적절하게 압력을 행사한 사실이 밝혀지면 책임을 지겠다”며 의혹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그동안 일본 정부는 “수의사 인력이 충분하다”는 이유로 수의학과 신설을 억제해왔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배경에 “인력 과잉 공급을 싫어하는 수의사회의 개입이 있는 것 같다”는 관측도 없진 않다. 특히 문제가 된 수의학부의 신설 예정지인 에히메현은 과거 15번이나 수의학부 신설을 신청했다가 퇴짜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관련, 야마모토 고조 지방창생상은 기자회견에서 “해당 학교가 들어서는 에히메현 이마바리시의 특구 지정은 옛 민주당 정권 때부터 전향적으로 검토했던 사안”이라며 “신설 경위는 매우 투명성이 높다. 정치적 압력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담당 부처였던 문부성의 전직 차관, 마에카와가 폭로한 내용은 전혀 다르다. 그는 “지난해 9~10월 아베 총리 관저에서 이즈미 히로토 총리 보좌관과 여러 차례 면담을 가졌다. 그때 이즈미 보좌관이 ‘총리가 자신의 입으로 말할 수는 없으니, 내가 대신 말한다’면서 ‘수의학부 신설을 빨리 승인하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고 밝혔다. 덧붙여 그는 <아사히신문>을 통해 “압력을 느끼지 못했다면 거짓말”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사태는 아베 정권의 도덕성 문제로 번지는 양상이다. 한데 흥미로운 것은 마에카와 전 차관에 대한 일본 언론들의 보도가 엇갈린다는 점이다. 먼저 <주간겐다이>는 “도쿄대학 법학부 출신 엘리트다. 산업용 냉동기를 만드는 ‘마에카와제작소’ 창업자의 손자로, 문부성 후배들 사이에서 가장 명망 있는 관료로 꼽힌다”고 평가했다.
<주간신조>는 마에카와 전 차관에 대해 “2010년 민주당 정권 때 조선학교에도 고교무상화를 적용해야 한다고 앞장섰던 인물로 본래 아베 총리와는 사상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전했다. 또한 “문부성이 퇴직간부의 낙하산 취업을 조직적으로 알선한다는 의혹이 제기돼 올해 1월 마에카와 전 차관이 책임지고 사임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문제가 있을 당시엔 아무 말 없다가 낙하산 문제로 사임되자, 아베 총리에게 분풀이를 하는 것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례적으로 <요미우리신문>는 마에카와 전 차관의 사생활을 문제 삼기도 했다. 신문에 따르면 “마에카와 전 차관은 재직 중 원조교제, 성매매 온상지로 불리는 가부키초의 만남계 바에 자주 드나들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마에카와는 “빈곤 여성의 성매매를 다룬 프로그램을 보고 실태를 알고 싶었다. 함께 밥을 먹고 용돈을 주긴 했지만, 부적절한 행위는 절대 하지 않았다”고 기자회견에서 반박했다.
뉴스가 아닌 인신공격성 가십이 일간지 사회면을 장식한 건 매우 드문 일이다. 더욱이 <요미우리신문>은 일본 신문업계 1위로, 우익 성향의 매체로 유명하다. 때문에 일본 네티즌들은 “아베 정권이 스캔들 추궁을 피하기 위해 ‘고발자’ 마에카와의 사생활을 언론에 흘린 것 같다”고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다. 이들은 “거듭되는 나라 망신이다. 국민의 관심은 만남 바가 아니다” “수의학부 신설에 총리의 의향이 있었는지 없었는지가 궁금한 것”이라면서 논점을 바꿔치기하는 언론을 비판했다.
계속되는 추문과 논란 탓인지 지난 5일 JNN방송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아베 총리의 지지율은 전달보다 8.9%포인트 하락한 54.4%”로 조사됐다. 아베 총리 지지율이 55%에 미치지 못한 것은 작년 5월 이후 1년 1개월 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과반수의 일본인이 아베 총리를 지지하고 있다”는 얘기도 된다.
이와 관련, <주간포스트>는 “지금 일본 사회에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장관들이 실언을 해도, 모리토모 학원 스캔들과 가케 학원 스캔들이 동시에 터져도, 웬일인지 아베 내각 지지율은 생각보다 떨어지지 않는다. 거꾸로 ‘고발자’인 마에카와 전 차관, 문부성 직원들을 이상한 사람인 양 취급한다. 아무래도 아베 총리가 ‘분위기를 조성하는 요괴’를 잘 포섭하고 있는 듯하다”고 지적했다.
아베 총리는 일본 역대 최장수 총리를 노리고 있다. 그러나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 여전히 아베 1강 독주체제이긴 하지만, 최근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가 이끄는 신당 도민퍼스트회가 무섭게 존재감을 키워나가고 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지난 3~4일 도쿄 유권자 957명을 대상으로 ‘도의원 선거에서 어느 당 후보에게 투표하겠는가?’라는 질문에 도민퍼스트회와 자민당이 나란히 27%를 기록했다. 지난 4월 조사에선 아베 총리의 자민당이 31%로 선두를 달렸고, 도민퍼스트회는 20%에 그친 바 있다. 이에 비교하면 놀라운 상승세다. 아베 총리가 사학 스캔들로 발목이 잡힌 가운데, 과연 고이케 지사가 본격 대항마로 떠오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