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에게 묻어가는 ‘베짱이 의원’ 다수
▲ 사진=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과연 18대 국회의원들은 국민들로부터 받는 세금만큼 열심히 의정활동을 하고 있을까. 개원 이후 국회에서는 7월 10일 1차 본회의를 시작으로 9월 19일 현재 본회의와 상임위 회의 등 총 91차례의 회의가 열렸다. 이중 지난 9월 18일까지 열린 총 15차례 본회의 출석률과 의원별 발의법안 건수와 그 내용을 살펴보았다. 이 내역을 들여다보면 국회의원들이 ‘나랏일’에 어느 정도 충실하고 있는지 미뤄 짐작할 수가 있다(참여연대 국회감시전문사이트 ‘열려라 국회’(watch.peoplepower 21.org)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자료 참고).
먼저 국회의원들의 본회의 출석률을 살펴보면 전체 299명 중 126명(약 42%)이 출석률 100%를 기록해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한나라당 권경석, 이철우, 이해봉 의원, 민주당 서갑원, 안규백 의원, 자유선진당 조순형, 이회창 의원 등이 100% 출석률 리스트에 들었다.
여기에 출석률 90% 이상인 의원까지 더하면 총 201명, 전체 의원의 약 67%에 이른다. 본회의에서는 각종 의안에 대한 심의와 의결, 대통령의 예산안 시정연설, 각 교섭단체의 대표연설 및 대정부질문 등 국정전반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진다. 때문에 본회의 출석현황은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에 대한 ‘성실성’을 판단할 수 있는 주요 근거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임기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본회의 출석률이 저조한 ‘불량 의원’들도 눈에 띈다. 출석률이 50% 미만인 의원은 모두 7명. 한나라당 이혜훈 의원(출석 7회, 청가 8회, 출석률 46.67%), 친박연대 양정례 의원(출석 6회, 결석 4회, 청가 5회, 출석률 40%), 한나라당 이계진 의원(출석 6회, 결석 4회, 청가 5회, 출석률 40%),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출석 4회, 결석 11회, 출석률 26.67%) 등이다. 민주당 정국교, 창조한국당 이한정, 무소속 김일윤 의원은 범법 혐의로 구속기소돼 결석 15회로 출석률 0%인 상태다.
이밖에 한나라당 이애주 의원(출석 8회, 청가 7회, 출석률 53.33%)과 민주당 이종걸 의원(출석 8회, 결석 1회, 청가 6회, 출석률 53.33%), 친박연대 서청원 의원(출석 8회, 결석 7회, 출석률 53.33%)이 총 15회 중 8번을 출석해 출석률 하위 10위 안에 들었다.
물론 이들 의원 중에는 불가피한 사정으로 ‘청가’를 내 본회의에 참석 못한 경우도 더러 있다. 국회법상 ‘청가’는 의원이 사고로 인하여 국회에 출석하지 못하게 되거나 못한 때에 그 이유와 기간을 기재한 청가서를 서면으로 제출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청가에 대한 특별한 제재 조치가 없는 탓에 ‘불분명한’ 이유로 청가 신청이 남발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실제로 민주노동당은 지난 17대 국회에서 청가 등과 관련한 내용이 담긴 국회개혁안을 발표하기도 했으나 이후 후속조치는 마련되지 못한 상황. 당시 민주노동당은 의원들의 회의참석일수에 따라 의원 특별활동비를 지급하는 안과 함께 청가 및 결석계 제출사유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불참사유를 공개해 회의 불참에 대한 제재를 현실화하는 ‘회의불참 페널티제’를 도입하자고 주장한 바 있다.
▲ (맨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이회창, 조순형, 이계진, 이혜훈. | ||
그런가 하면 국회가 입법기관인 만큼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법률안 건수로도 그들의 의정활동 점수를 매겨볼 수 있다. 의안 발의는 대표발의와 공동발의로 구분해 볼 수 있는데 공동발의의 경우 ‘품앗이’(편의를 위해 서로 발의자로 이름을 올리는 것)로 이뤄지는 경우도 많아 명확한 기준으로 삼기 어려운 실정. 때문에 대표발의 건수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지난 19일까지 대표발의 건수 1위를 기록한 이는 민주당 강창일 의원. 강 의원은 최근 제안한 ‘도서개발촉진법 일부 개정법률안’ 외 25개를 대표 발의했다. 2위는 20건을 낸 한나라당 임두성 의원. 임 의원은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대부업 관련 법안을 일부 개정한 ‘대부업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법률안’ 등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에는 ‘채권자 등 다수인이 채무자의 거주지, 직장 등을 방문해 장시간 머무는 행위 또는 오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 채무자를 방문하거나 전화 등으로 통신하는 행위를 금지함’이라는 내용이 신설돼 있다.
3위는 15건을 낸 한나라당 김소남 의원과 김충환 의원. 김소남 의원은 청소년대상 성범죄자 신상정보 열람기간을 현행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하는 내용 등을 담은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법률안’을 최근 발의했다. 이어 한나라당 이주영·한선교 의원이 각각 14건을 대표 발의해 상위에 랭크됐다. 이밖에 한나라당 김태원 의원(13건), 한나라당 신상진·윤두환 의원·민주당 양승조 의원(12건)이 상위 10명 안에 들었다.
하지만 대표발의 법안이 단 한 건도 없는 의원도 무려 80명이나 된다. 특히 각 당의 리더나 대권 잠룡들 중 대다수가 여기에 해당됐는데 ‘입법’보다는 ‘정치’에 너무 치중한 탓이 아닌가 싶다.
한나라당에선 강용석·김무성·남경필·박근혜·유승민·이상득·정몽준·주호영·진수희 의원 등 46명이 대표법안 발의를 한 차례도 하지 않았고, 민주당도 김부겸·김충조·이석현·정세균·최규성·추미애 의원 등 17명이 있었다. 자유선진당 이회창·조순형·이용희 의원 등 5명, 창조한국당 이용경·이한정 의원, 친박연대 김노식·양정례 의원, 이밖에 무소속 김일윤·김형오·유성엽·이무영·이인제·최연희 의원 역시 대표발의 법안 ‘0건’을 기록했다.
단 1건을 대표발의한 의원은 한나라당 강길부·고흥길·김태환 의원 등 37명, 민주당 강기정·문희상·원혜영 의원 등 20명, 자유선진당 권선택·김용구 의원 등 3명, 친박연대 김을동·정영희 의원, 무소속 송훈석 의원 등 총 63명이나 됐다.
그런데 의원들 중에는 대표발의는 하지 않으면서 공동발의자 명단에는 여러 건 이름을 올린 이도 있다. 대표적으로 무소속 유성엽 의원은 대표발의 법안은 한 건도 없으나 공동발의는 무려 224건이나 했고, 민주당 김충조 의원 역시 공동발의만 119건을 했다. 친박연대 양정례 의원과 한나라당 이해봉 의원도 공동발의 건수만 각각 198건, 85건이었다.
하지만 공동발의 건수가 많다고 해서 의정활동을 열심히 했다고 볼 수만은 없다는 것이 국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국회법상 의안이 되기 위해선 의원 10인 이상의 공동발의가 필요하므로 동료의원별로 ‘품앗이 법안’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 또 법안발의 건수가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 평가지수로 알려지는 일이 많아 의원들이 공동발의 건수를 높이기 위해 애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일부 의원들 중에는 공동발의 법안 내용도 제대로 모르는 채 발의자 명단에 도장을 찍는 일도 간혹 있다는 것. 또 기존 법률안 중 일부 내용만 바꾸어 개정안을 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지난 9월 19일 현재까지 18대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 건수는 총 820건. 이 가운데 807건(98.4%)이 미처리 상태이고 가결된 것은 단 4건에 불과하다. 참고로 17대 국회에서는 의원발의 법안 총 6387개 중 1350건(21.1%)이 가결된 바 있다. 아직 18대 국회 초반임을 감안하면 의원들의 발의 건수는 높은 편이지만 이런 추세라면 이들 법률안 중 상당수는 제때 처리되지 못하게 될 듯하다. 신중을 기해 개정안을 만드는 것은 물론 중요하지만 시급한 ‘민생법안’의 처리를 외면한 채 ‘법안 건수’만을 늘리는 행태도 문제일 수 있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