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 ‘피아노맨’을 모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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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아노맨’이라는 별명이 붙은 남자 | ||
때는 지난 4월7일. 영국 남해안 켄트주 시에니스의 해변을 거닐고 있던 수상한 차림새의 한 남자가 영국경찰에 의해 발견됐다. 값비싼 검은 야회복을 차려 입은 이 남자의 옷은 지난 밤 내린 비 때문인지 흠뻑 젖어 있었다. 하지만 더욱 이상한 것은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그의 태도와 그가 경찰을 보고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입을 다물고 있다는 것이었다.
경찰서에 도착한 후에도 이상한 점은 계속 발견됐다.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요, 그의 몸에서는 신원을 나타내는 어떠한 신분증이나 소지품도 발견되지 않았으며 옷의 라벨들도 모두 잘려나가 있었다.
결국 경찰은 그를 정신병원으로 이송했으며, 그 후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병실에서 지내고 있다.
처음 경찰은 그가 동유럽 출신의 정치적 망명자라는 가정하에 수사를 펼쳤다. 하지만 폴란드, 리투아니아 등의 통역사를 대질해 보았으나 그는 아무 말도 알아듣지 못하는 듯 여전히 입을 열지 않았으며, 사람들이 그의 주변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서면 흠칫 놀란 채 극도의 경계심을 나타내곤 했다.
그러던 중 병원 직원들이 혹시 이름이나 쓸 수 있을까 생각하고 펜과 종이를 건네주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말 한마디 하지 않던 그가 갑자기 세밀한 솜씨로 그랜드 피아노를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한 사회복지사가 혹시나 하는 생각에 그를 병원 내 예배당에 있는 피아노로 데려갔고, 이윽고 믿을 수 없는 일이 눈 앞에 펼쳐졌다. 그가 피아노 앞에 앉더니 안정된 자세로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무려 4시간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백조의 호수’ 비틀즈 등의 곡을 쉼 없이 연주하던 그는 사뭇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잠시 피아노 삼매경에 빠져 들었다.
이로부터 ‘피아노맨’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그가 곧 전 세계의 매스컴을 타게 된 것은 물론이었다. ‘의문의 피아노 천재’ ‘기억상실증에 걸린 피아노 대가’라는 등 언론들은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으며, 그의 정체에 대한 이러저러한 소문들도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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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신병원 관계자들이 준 종이 위에 그린 그랜드 피아노. | ||
현재까지 영국국립 실종자도움전화(NMPH)에 걸려온 제보전화는 무려 1천 통이 넘는 상태. 하지만 이렇다 할 실마리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지난 5월에는 폴란드의 한 거리 마임 연기자가 신문에 실린 그의 사진을 보고 “그를 알고 있다”는 제보를 해왔다. 그는 “‘피아노맨’은 스테벵 빌라 마송이라는 이름의 프랑스 출신 거리 악사다”고 밝히면서 프랑스 니스의 거리에서 그와 함께 일을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얼마 후 이는 잘못된 제보였음이 밝혀졌다.
그 후 이탈리아의 한 TV방송도 ‘피아노맨’과 닮은 사람이 촬영된 장면을 내보내면서 “이 사람을 찾습니다”는 ‘사람 찾기’ 방송을 하기 시작했다. 이 화면은 5년 전 리미니에서 열렸던 ‘악기 페어’에서 촬영된 것이었으며, 이탈리아 방송국은 화면 속의 남성이 비록 머리 모양은 다르지만 얼굴형이나 코모양이 ‘피아노맨’과 매우 흡사하다며 제보자의 연락을 기다린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역시 오보이긴 마찬가지였다. 닮긴 했지만 화면 속의 인물은 다른 사람으로 판명됐던 것.
이와 비슷한 경우는 최근 한 번 더 있었다. 이번엔 거의 확실한 듯 동일인을 지목한 여러 명의 제보자가 나타났으며, 이로 인해 한때 “드디어 ‘피아노맨’의 신원이 밝혀졌다”는 기대감이 증폭되기도 했었다.
제보를 한 사람은 체코의 재즈밴드 드러머인 클라우디스 크리스핀과 미하엘 코캡이었으며,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그는 체코 출신의 피아노 연주가로 이름은 토마스 스트르나드였다.
신문에서 ‘피아노맨’의 사진을 본 코캡은 “스트르나드가 맞다”고 확신했으며 “비록 머리 색은 다르지만 모든 얼굴 특징이나 생김새가 내가 아는 사람이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그가 스트르나드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지난 4월 프라하 외곽의 한 술집에서였다. 당시 상당히 혼란스러운 모습이었던 그는 코캡에게 “외국으로 나가서 경력을 쌓고 싶다. 여기서는 아무도 내 음악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며 절망스러워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또 한 명의 제보자인 크리스핀도 이런 주장을 뒷받침했다. <더 타임스> 인터넷판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10대 시절 ‘로포타모’ 밴드에서 그와 함께 연주한 적이 있다”고 밝히면서 “9년 전에 그를 본 것이 마지막이었지만 그의 얼굴을 알아볼 수는 있다”면서 자신의 제보가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스트르나드가 늘 쇼팽과 리스트를 즐겨 연주했으며, 언제나 말이 없고 수줍음을 많이 타는 편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며칠 후 진짜 스트르나드가 모습을 드러내면서 이 역시 사실이 아니었음이 밝혀졌다. “나는 ‘피아노맨’이 아니다”면서 체코 TV에 모습을 드러낸 스트르나드는 현재 프라하에 머물고 있다. 결국 수사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그렇다면 ‘피아노맨’은 도대체 누구일까. 현재 병원에 수감된 채 묵묵히 피아노만 연주하고 있는 그를 아는 사람은 정말 아무도 없는 걸까. 그는 정말 신경쇠약에 걸린 ‘피아노 대가’일까 아니면 세계를 상대로 장난을 치고 있는 사기꾼일까. 어쩌면 그 답은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을지도 모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