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한다면서 신사옥 건설이 웬말
두산그룹이 신사옥 설립에 시동을 걸고 있다. 박정원 두산그룹 신임 회장이 2016년 서울 강동구 DLI연강원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두산그룹이 주식 담보대출,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 등을 통해 재무구조 개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5월 두산중공업은 가스터빈 사업과 관련한 연구개발(R&D)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5000억 원 규모 BW 발행을, 지난 12일에는 두산인프라코어가 단기 차입 구조를 장기 차입 구조로 전환하기 위해 5000억 원 규모의 BW 발행을 결정했다. 두산그룹은 올 상반기에만 1조 2000억 원이 넘는 자금을 조달했는데 이는 결국 그룹 차원의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작업이다.
재계에서는 여전히 두산그룹에 대해 우려의 시선을 보낸다. 두산그룹의 주력 계열사의 불안한 재무구조가 다른 계열사로 전이된다는 점에서다. 한국신용평가는 지난 12일 ㈜두산·두산중공업·두산인프라코어·두산엔진, 4개 계열사의 신용등급을 평가한 결과 ‘부정적’으로 유지한다고 밝혔다.
두산인프라코어·두산건설·두산엔진 등은 두산그룹 연결기준 매출의 56%를 차지하는 주력 계열사다. 또 두산중공업은 이 3개 사의 최대주주이자 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인 중간지주회사 격이다. 한국신용평가는 “주력 계열사 지원을 두산중공업이 맡아 왔으나 두산중공업 재무 여력이 약화되며 그룹 지배구조 최상단인 ㈜두산에 그 부담이 전이되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두산그룹은 경기도 분당 정자동 161번지를 기반으로 신사옥 착공에 들어간다. 신사옥 설립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두산·두산중공업·두산인프라코어·두산건설·두산엔진 등은 두산그룹이 시행사로 설립한 종속법인 ‘디비씨㈜’에 지난 5월 말 263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두산그룹의 신사옥 ‘두산분당센터’(가칭)는 당초 두산건설이 병원 부지로 20년 넘게 보유하고 있던 토지가 용도 변경되면서 건설할 수 있게 됐다. 신사옥에는 두산중공업·두산인프라코어·두산건설·오리콤·㈜두산·두산매거진·두산엔진 등 계열사가 입주할 예정이다. 각 계열사는 신사옥에 대한 예상 사용면적 등을 고려해 출자하고, 배정 주식을 갖는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현재 흩어져 있는 계열사들의 효율성 제고나 임차료 비용을 줄이기 위해 신사옥 입주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재무구조 개선이 시급한 두산그룹이 수천억 원이 드는 신사옥을 설립하는 것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기업이 사옥을 건립하는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며 “하지만 그룹 재무상태가 나쁜 만큼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두산그룹이 재무상태가 나빠진 지 좀 됐는데 해소하기엔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두산타워에는 두산면세점, (주)두산 등이 입주해 있다. 동대문 두산타워. 연합뉴스
현재 두산그룹은 서울 동대문 두산타워와 종로5가에 연강타워를 소유하고 있다. 여기에 입주해 있는 ㈜두산, 두타면세점, 두산인프라코어 등을 제외한 나머지 계열사들은 산발적으로 건물을 임차해 사용하고 있다. 주력 계열사인 두산중공업은 서울사무소 개념으로 교보타워 전체의 절반을 임차해 사용하고 있다. 임차료만 한 달에 10억 원 이상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산건설·두산엔진·두산매거진·오리콤 등도 서울 논현동 사무실을 임차해 이용하고 있다. 본래 논현동 사무실은 두산 소유였지만 2013년 두산건설이 유동성 문제를 겪으며 하나자산운용의 부동산 펀드로 넘어갔다. 당시 두산건설은 구조조정 차원에서 세일즈앤리스 방식(급하게 자금이 필요한 기업이 소유한 건물을 비교적 높은 가격에 매각하고 대신 조금 더 임차료를 많이 지불하는 방식)으로 1400억 원에 소유권을 넘기고 임차료를 지불하며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두산건설이 향후 두산분당센터에 입주할 경우 논현동 사무실에서 나오는 것도 문제로 전해진다. 하나자산운용과 두산건설 간 임대차 계약 만기는 2028년까지다. 게다가 중도 해지조항이 없어 두산건설이 논현동 사무실을 떠나 신사옥에 입주하더라도 논현동 사무실에 대한 임차료는 남은 계약 기간에도 계속 지불해야 한다. 두산분당센터가 완공되더라도 두산건설이 입주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두산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다 밝힐 수는 없지만 다양한 조항들이 있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두산분당센터에 대한 성남 시민과 환경단체의 반발도 두산그룹으로서는 부담이다. 성남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이미 상권이 활성화되고 인구가 밀집된 지역에 또 오피스가 들어오면 교통 혼잡이 심각해질 것”이라며 “성남시에서 병원부지를 상업부지로 용도변경해 줄 때 이미 용적률이 큰 폭으로 늘어나 특혜 의혹이 일었다”고 말했다.
지난 1월 열린 제225회 성남시의회 본회의에서 어지영 성남시의원은 “두산 신사옥 주차장 면수가 법정요건 920대에서 겨우 1.5% 많은 934대로 인허가가 나갔는데 앞으로 이 지역에서 주차대란이 발생할 것”이라며 “성남시가 앞으로 있을 굴착 허가 등에 있어 관련 절차를 틀어쥐고 대기업의 편에 서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성남시는 당초 병원 부지였던 곳을 업무시설로 변경해주고 용적률을 250%에서 670%로 상향 조정해줬다. 대신 기부채납 형식으로 두산건설이 성남시에 토지의 10%를 기부하도록 했다. 현행법상 기부채납은 신사옥 전체 건물의 10~15%에 해당하는 수준까지 이뤄질 수 있다. 그런데 성남시는 기부채납의 최저 수준인 10%만 두산에서 받기로 해 특혜 시비가 불거졌다. 게다가 두산그룹이 건물을 지어 기부채납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 토지를 기부하기로 해 성남시의회로부터 강한 비난도 받았다.
두산그룹이 신사옥 건설을 밀어붙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두산그룹은 2020년까지 신사옥을 완공하고 4400명 수준의 임직원을 분당센터에 유치하겠다고 성남시와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또 ‘신사옥 이전 약속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해당 부지에 대한 용도변경 원상 복구에도 이의제기를 하지 않겠다’고 공증을 했다.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 어렵게 용도변경한 분당 토지가 다시 병원 용도로 되돌아가는 것.
두산그룹의 분당 토지는 1990년 대 초 박용현 전 두산그룹 회장이 병원을 세우기 위해 매입한 것이다. 그 후 분당서울대병원 등 대형 병원이 분당에 들어서면서 수익성 문제로 사업이 중단됐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분당 토지 용도변경 특혜 의혹은 이미 해소된 문제”라며 “신사옥 설립은 장기적으로 그룹의 경영 효율화를 위해 결정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