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공정위 십자포화…닭 모가지 비틀릴까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
그러나 하림은 대기업집단이 된 후 혹독한 ‘신고식’을 치르고 있다. 최근 불거진 편법 경영권 승계 의혹은 하림의 앞날에 먹구름을 드리운다. 지난 8일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하림이) 편법 증여로 25세 아들에게 그룹을 물려줬다”며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은 장남 김준영 씨에게 10조 원대 회사를 물려주면서 증여세로 100억 원을 납부했다. 과세표준 30억 원 이상에 대해 증여세율이 50%인 것을 고려하면 사실상 회사를 거의 그냥 넘겨준 셈이다. 이마저도 본인 돈이 아닌 회사 돈을 활용해 증여세를 대납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하림은 “증여가 이뤄졌을 당시 자산 규모가 3조 5000억 원에 불과했고, 정해진 법 절차를 지켰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김 회장은 하림의 지주사 제일홀딩스 지분 41.78%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그러나 실제 지분은 아들 준영 씨가 더 많다. 제일홀딩스의 2대 주주인 한국썸벧(37.14%)과 3대 주주(7.46%) 올품을 준영 씨가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썸벧은 올품이 지분 100%를 소유한 동물의약품 제조회사며, 같은 사업 목적을 가진 올품의 지분 100%는 준영 씨 소유다. 즉 준영 씨는 올품을 지배함으로써 제일홀딩스 지분 44.6%에 대해 의결권을 갖는 것이다.
하림은 ‘올품→한국썸벧→제일홀딩스→하림’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 또 제일홀딩스는 중간지주사인 하림홀딩스의 대주주(지분 68.09%)로서 엔에스(NS)쇼핑 등 핵심 계열사를 지배한다. 당초 80%에 이르는 자사주를 갖고 있던 제일홀딩스는 지난해 11월 보유 중인 자사주를 대량 소각하면서 254억 4300만 원이던 자본금을 50억 3300만 원으로 줄였다. 반대급부로 김 회장 일가 지분율은 90%대까지 치솟았다.
하림 논현동 신사옥. 임준선 기자.
재계 관계자는 “대기업집단에 포함되고 안 되고는 천지 차이”라며 “당장 상호출자와 계열사 간 채무보증이 제한되고, 내부거래 비율 등에 제약을 받으며 공정위에 제출하거나 외부 공개되는 서류가 배 이상 늘어나는 등 보이지 않는 규제가 많아진다”고 설명했다.
하림은 최근까지 대기업으로 분류되지 않았던 까닭에 내부거래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다. 준영 씨 소유 회사인 올품은 계열사 간 내부거래의 최대 수혜 기업으로 꼽힌다. 준영 씨가 아버지에게 회사를 물려받기 직전인 2011년, 706억 원에 불과했던 매출은 2016년 4160억 원까지 치솟았다. 2016년 올품의 당기순이익은 850억 원에 달한다. 올품의 주된 매출처는 ㈜하림, 제일사료, 팜스코 등 하림 계열사가 상당수다. 재계 다른 관계자는 “회사가 성장하려면 내부거래가 일부 필요하긴 하지만 오너 일가 개인회사에 수백억 원대 일감을 몰아주는 것은 오해받을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또 2010년 설립된 한국썸벧은 매년 300억 원 규모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데 이 회사의 누적 이익잉여금은 무려 2375억 원에 달한다. 만약 한국썸벧의 이익잉여금을 올품에 배당하고, 다시 올품이 주주 배당을 하면 준영 씨는 2000억 원이 넘는 돈을 현금화할 수 있다.
이미 준영 씨는 지난해 1월 올품 유상감자 과정에서 회사로부터 100억 원을 받았다. 표면상으로는 올품이 준영 씨 소유 주식을 매수해 소각하고 대가를 지불한 것이지만 올품의 유일한 주주가 준영 씨라는 점에서 논란을 야기했다. 또 준영 씨가 유상감자로 챙긴 100억 원이 증여세 납부에 쓰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논란은 더 가중됐다. 결과적으로 오너 일가 사익을 위해 회사 돈을 쓴 격이라 정부 당국의 조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받기 시작했다.
공정위는 신중한 입장을 보인다. 공정위 관계자는 “특정 기업에 대한 조사 착수 여부는 확인해줄 수 없으며 법 위반 혐의가 있어야 직권 조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다만 공정위는 최근 하림에서 자료를 받고, 김 회장 등이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사실이 있는지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공정위 조사가 본격화되면 상장을 추진 중인 제일홀딩스 공모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하림은 최근까지 대기업으로 분류되지 않았던 까닭에 내부거래 문제에서 자유로웠다. 준영 씨 소유 회사인 올품은 계열사 간 내부거래의 최대 수혜 기업으로 꼽힌다. 준영 씨가 아버지로부터 회사를 물려받기 직전인 2011년 706억 원에 불과했던 매출은 2016년 4160억 원까지 뛰었다. 2016년 올품의 당기순이익은 850억 원에 달한다. 하림 공장 전경. 일요신문 DB
지난 13일 첫 출근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재벌 저격수’로 불리는 것도 하림엔 부담이다. 공정위 안팎에선 최근 몇 년간 NS쇼핑이 협력업체 ‘갑질’ 논란 등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까닭에 추가적인 실태조사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 정책 기조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도 불편한 이슈다. 홈쇼핑 콜센터 상담원 상당수는 비정규직이고, 방송 제작 인력 또한 용역계약에 따른 비정규직인 경우가 많다. NS쇼핑은 하림 내 ‘자금줄’ 역할을 맡고 있는 핵심 계열사라 재정 부담이 커지면 다른 계열사가 동반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닭고기 회사로 출발한 하림은 홈쇼핑, 해운, 부동산 개발 등 문어발식 확장으로 사세를 키웠다. 최근에는 애견 산업, 태양광 산업까지 진출했다. 이 과정에서 하림은 정부의 금전적인 도움을 받았다. 올해도 정부는 하림의 요청이 들어오면 사료 및 도축사업에 대한 자금 지원을 해줄 것으로 알려졌다. 일명 ‘축산경영종합자금’이란 명목으로 하림에 융통된 돈은 알려진 것만 2000억 원이 넘는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농가의 축산 계열화 사업을 돕기 위해 자금을 융자해 준 것이지 대기업에 사업비를 직접 보조해 준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2012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하림에 대한 축산경영종합자금 특혜 의혹을 제기한 김재원 자유한국당 의원은 2013년과 2014년 김 회장으로부터 900만 원의 정치 후원금을 받았다. 또 김 회장은 김 의원의 같은 당 동료 의원인 김명연·정미경·김성태 의원에게도 수백만 원의 정치후원금을 보냈다. 이후 국회 차원의 특혜 의혹 제기는 멈췄다.
그간 하림은 정부 주도 1차 산업 육성 정책에 따라 일부 세제 혜택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은 1~3%란 낮은 금리로 하림을 지원했다. 하림은 대출받은 돈으로 축산농가를 장악했다. 하림이 만든 사료를 먹여 닭이나 돼지를 키운 뒤 다시 하림을 통해 도매나 소매로 납품하는 독점 구조가 형성됐다. 이처럼 여러 기관의 도움으로 성장한 하림이 경영권 승계 논란을 겪으면서 부정적인 여론이 점차 확산되는 분위기다. 회사 창립 이래 가장 큰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