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매수권 부활’ 노림수 vs “경영권 박탈 검토” 초강수
금호타이어의 채권단인 산업은행이 박삼구 회장 측의 상표권 사용 조건 제시를 매각 방해 행위로 보고 제재를 검토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지난 9일 박삼구 회장은 금호타이어 매각의 핵심 변수로 떠오른 ‘금호’ 상표권 사용에 대해 “적극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채권단에 전달했다. 겉으로만 봐서는 난제였던 상표권 문제가 돌파구를 찾으며 매각작업에 속도를 내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박 회장이 함께 제시한 ‘수정 조건’을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박 회장은 이날 ▲20년 사용 ▲해지 불가 ▲사용 요율 연결 매출액의 0.5%를 수정 조건으로 제시했다. 금호타이어 인수 후보인 중국 더블스타가 당초 받은 조건은 ▲5년 사용 후 15년 추가 사용 ▲자유로운 해지 ▲사용 요율 매출액의 0.2%였다.
기존에 고려하던 조건보다 2.5배에 달하는 사용료를 내야 할 입장이 된 더블스타 측은 즉각 반발했다. 더블스타는 지난 12일 채권단에 “박삼구 회장이 제안한 상표권 사용 조건은 수용하기 힘들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박삼구 회장이 이 같은 수정 조건을 내세운 이유는 무엇일까. 기업 인수합병(M&A)에 정통한 투자은행(IB)업계 등 금융권은 여기에 박 회장의 노림수가 숨어 있다고 풀이한다.
상표권 사용 요율 0.5%를 제시한 것은 금호타이어 인수 가격 인하를 유도하기 위한 일종의 미끼라는 이야기다. 이는 더블스타의 입찰 가격과 최종 인수 가격이 달라질 경우 박 회장의 우선매수권이 부활할 수 있다는 계산과 맞닿아 있다.
박 회장은 채권단이 제3자에 금호타이어를 매각하기 전에 같은 조건으로 인수할 수 있는 우선매수권을 갖고 있었다. 박 회장은 2010년 금호타이어 워크아웃을 신청하면서 최대주주 자리를 채권단에 넘겼고, 대신 금호타이어에 대한 우선매수권을 받았다. 박 회장은 금호타이어 매각 초반 우선매수권 행사 의지를 밝혔으나 더블스타가 입찰한 가격을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해 우선매수권을 포기한 상태다.
문제는 우선매수권 약정상 제3자의 인수가격이 입찰가보다 낮아질 경우 매각이 무산된다는 조항이 있다는 것이다. 더블스타가 제시한 금호타이어 인수 가격은 9950억 원. 이 가격에는 ‘금호’ 상표권을 사용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따라서 더블스타가 상표권료 인하를 요구할 경우 인수 가격 자체가 내려가는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인수 가격 인하는 곧 매각 무산을 의미하며, 이 경우 박 회장이 포기한 우선매수권이 부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연합뉴스
다만 박 회장의 노림수를 모를 리 없는 더블스타는 “상표권료를 내려달라”거나 “인수를 재검토하겠다”는 등의 ‘결정적’인 표현은 일체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상표권료는 채권단이 결정할 문제”라며 공을 다시 넘겼다.
IB업계 관계자는 “더블스타가 사용요율 인하를 요구하면 결과적으로 인수 가격이 내려가는데, 박 회장이 포기한 우선매수권은 9950억 원에 대한 것이므로 가격이 달라지면 우선매수권을 다시 주장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더블스타도 이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사용요율 0.5%를 거부한다는 입장만 밝혔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머리가 아파진 쪽은 산업은행이다. 채권단은 박 회장이 제안한 상표권료 인상이 본입찰 조건의 중대한 변경 사유에 해당하는지 논의하는 중이다. 더블스타가 써낸 인수 가격과 상표권료가 연동하는 문제라면 상표권료 인상이 본입찰의 중대한 변경 사유에 해당하고, 더블스타는 인수 가격 인하를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채권단이 상표권 사용 조건을 기존대로 수용하라며 박 회장 측을 압박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선매수권 부활 논란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지다.
금융권에서는 채권단이 박 회장의 수정안 제시를 매각 방해행위로 보고 이를 제재하는 방안을 논의할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는다. 박 회장이 애초에 더블스타가 수용하기 어려운 내용을 제안함으로써 사실상 매각을 방해했다고 본다는 것이다. 채권단은 이를 통해 박 회장의 우선매수권을 무효화하고, 나아가 금호타이어 경영권까지 박탈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2010년 박 회장이 산업은행과 체결한 우선매수권 약정서 상에는 박 회장이 금호타이어의 매각을 방해할 경우 우선매수권을 박탈할 수 있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
실제로 채권단은 사실상 박 회장 해임 수순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채권단은 최근 금호타이어의 2016년 경영평가 결과를 ‘D’로 결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D는 ‘부진’에 해당하는 등급으로, 2년 연속 경영평가 D를 받은 회사는 경영진을 교체하거나 해임 권고할 수 있다. 금호타이어는 2015년에 D를 받은 만큼 이번에도 D를 받으면 경영진 교체가 가능하다.
여기에 더해 채권단이 금호타이어의 대출채권 만기 연장을 거부해 자금줄을 죌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금호타이어의 대출채권 만기가 연장되지 않으면 상환 능력이 없는 금호타이어는 부도가 불가피해진다. 이 경우 채권단이 담보로 잡고 있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지주회사 금호홀딩스 지분 40%가 넘어간다. 금호홀딩스는 또 다른 지주사인 금호산업의 지분 46%를 보유하고 있다. 결국 박 회장의 그룹 경영권 전체를 뺏겠다는 계산인 셈이다.
이에 대해 박 회장 측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 관계자는 “수정된 상표권 조건을 제시한 주체는 박 회장이 아니라 금호산업”이라며 “박 회장이 금호타이어 매각을 방해하는 것처럼 언급하는 것은 언론 플레이”이라고 말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