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지르고 본다?’ … 혈세만 줄줄~
자기 돈을 쓴다고 한다면 이런 정책 집행이 과연 가능할까. 국감장에서 드러나고 있는 정부기관들의 예산 낭비 사례를 살펴보면 세금을 내고 있는 국민 입장에서 분노가 치미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가장 많은 사례는 무분별한 예산 집행이 이뤄지는 경우다. 예산정책에 대한 철저한 기획 없이 세금을 적당히 배분해 곳곳에서 낭비되는 세금이 어마어마하다.
우선 정부산하기관의 방만한 경영. 한나라당 권택기 의원은 ‘국민고충처리위원회’와 ‘국가청렴위원회’ ‘국무총리행정심판위원회’가 통합돼 만들어진 ‘국민권익위원회’의 홍보비 집행 낭비실태를 지적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이곳의 콜센터와 국민신문고제도 홍보비로 지난 2007년~2008년 각각 9억 7800만 원, 1억 8600만 원 등 총 11억 5900만 원을 사용했다. 하지만 한나라당 조사결과 대학생 47.6%가 ‘국민권익위원회의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다’고 응답할 정도로 인지도가 낮았다는 것. 국민권익위원회 전신 기관 중 하나인 ‘국민고충처리위원회’의 자체 인지도 조사에서도 지난 2005년부터 3년 연속 50%를 넘지 못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운영하고 있는 국민신문고 제도는 범정부 차원의 민원제안 창구임에도 이용경험이 있는 이가 설문응답자의 고작 0.4%에 이르는 수준이고, 홈페이지 방문 경험이 있는 경우도 12.2%밖에 되지 않아 홍보비가 과연 제대로 쓰였는지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국민권익위원회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니 민원신청 게시판에는 민원이 한 건도 올라오지 않는 날도 수두룩했다.
그런가 하면 농협임원들의 해외출장비 낭비 실태도 드러났다. 한나라당 김학용 의원은 “농협중앙회 규정에 회장뿐 아니라 임원들도 해외출장시 일등석을 이용하도록 되어 있다”며 이 규정을 바꿀 것을 요구했다. 김 의원은 “일등석 요금은 일반석의 네 배로 최근 유가급등으로 뉴욕까지의 일등석 왕복요금이 900만 원가량 한다”며 “농민들은 고유가와 비료, 사료값 폭등으로 생존의 위협을 겪고 있는데 농협 임원들이 일등석 타고 해외출장을 다닌다면 용납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김 의원은 농협 임원들에게 지급되는 국외여비 준비금이 대통령에게 지급되는 금액(최대 280달러)보다 두 배 이상 많은 600달러라는 점도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중앙부처 공무원들은 출장지역이 4개 지역으로 구분돼 차등지급 되는 데 반해 농협에서는 두 가지로만 구분해 놓고 있어 이 과정에서도 예산낭비 가능성이 큰 실정이라고 한다. 김 의원실에서는 이에 대한 보다 상세한 파악을 위해 농협 측에 지난 2006년부터 3년간 농협의 상임이사, 비상임이사, 집행간부에 대한 비행기 이용실적을 포함한 해외출장에 대한 상세 내역, 해당 여행기간 중 법인카드 사용과 관련된 상세내역 제출을 요구해둔 상태다.
국민연금공단 역시 직원들을 위한다는 명분의 예산집행이지만 국민들의 거부감을 살 만한 내용이 지적됐다.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국민연금공단은 지난 2006년 12월부터 노조와 임금협약을 맺으면서 임신 여직원에게 매월 35만 원씩의 출산 장려수당을 지급하는 조항을 신설했다. 2007년에는 70명(총 2억 3675만 원)이 출산장려수당을 받았고 2008년 9월 말까지 역시 70명(1억 7308만 원)이 수령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공단 측은 이와는 별도로 출산장려금을 지급하고 있어 이중으로 사원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했다는 지적이다.
막대한 예산이 사전조사도 없이 집행된 황당한 경우도 적발됐다. 보건복지가족부가 총사업비 규모 5500억 원에 이르는 ‘공공의료기관 정보화사업’을 추진하면서 타당성 조사도 않은채 예산부터 우선 집행한 것으로 드러난 것. 예산집행은 2007년에 한 뒤 이 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는 오히려 뒤늦은 2008년에 신청한 것으로 나타나 국가재정법을 위반한 경우로 적발됐다. 또 이미 2007년 예산 중 집행된 45억 원(업무프로세스 재설계 및 병원정보시스템 분석)가량은 적법 절차를 무시한 채 ‘지역보건의료분야 통합정보시스템 구축’ 예산에서 지출된 사실도 밝혀졌다.
이처럼 예산이 밑 빠진 독에 담긴 물처럼 새어나가는 반면, 정작 중요한 정책에는 예산이 모자라 집행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최근 멜라민 파동으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던 식품의약품안전청(식약청)은 의료기기 검사장비 부족으로 품질검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 예산부족을 이유로 의료기기 검사장비 시설을 자체적으로 갖추고 있지 않은 식약청은 대부분 외부 민관기관에 검사를 의탁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나라당 윤석용 의원은 “더구나 검사기관이 식약청으로부터 받는 품질검사 수수료가 민간업체가 의뢰했을 경우 지불하는 수수료의 20% 정도에 이르는 상황이어서 검사결과의 신뢰성에 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식약청은 이마저도 예산이 모자란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수수료를 제때에 지불하지 못하는 일도 적지 않다는 것. 실제로 검사수수료는 지난 2006년 3560만 원에서 2007년 6320만 원가량으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음에도 이에 대한 예산편성은 두 해 모두 3000만 원에 그쳤다.
또한 이 건의 경우 지난 2005년부터 매해 국감에서 같은 내용이 지적되었음에도 상황이 별반 달라지지 않아 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 국회 관계자는 “국감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된 사안에 대해 관련 처벌·강제 규정이 없어서 그 상태로 방치되는 일이 적지 않다. 문제에 대한 대책마련보다는 문제 자체를 이용한 정치적 논쟁이 우선되는 국감을 보면 씁쓸할 때가 많다”고 털어놨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