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깐한 근혜씨’ 대권 오디션 통과?
▲ 국정감사서 한나라당 내 차기 대권주자들의 행보가 눈에 띄고 있다. 사진은 박근혜 전 대표가 보건복지부 감사에서 동료 의원과 의견을 나누는 모습.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묘하게도 이들 ‘4룡’은 의원으로서 해당 기관의 문제점을 추궁하는 경우(박근혜 전 대표,정몽준 최고위원)와 피감기관장으로서 의원들의 공세를 ‘방어’해야 하는 편(오세훈 서울시장,김문수 경기도지사)으로 나눠졌다. 국감장에서도 언론의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여권 차기 주자들의 ‘국감 기상도’를 들여다봤다.
박 전 대표는 국감 시작 전 상임위 선택 단계에서부터 주목을 받았다. 15대 때 산업자원위원회를 시작으로 16대 통일외교통상·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17대엔 국방·행정자치·환경노동위원회를 거친 박 전 대표가 이번엔 비인기 상임위이자 초선들이 주류를 이루는 보건복지가족위원회(복지위)를 택했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의 선택은 다양한 상임위 경험을 통해 ‘대권 수업’을 받기 위해서란 분석이 적지 않았다.
상임위 내 최다선이면서 동시에 ‘초보’인 박 전 대표는 국감을 통해 의사 약사 간호사 등 전문가 출신들이 즐비한 복지위에서 이들에 결코 뒤지지 않는 ‘내공’을 보여줬다는 게 정가의 대체적인 평가다. 국감 첫날(6일) 실시된 보건복지가족부 감사에서 그는 정부에 ‘먹거리 파동’을 줄일 수 있는 제안을 내놓아 호평을 받았다.
박 전 대표는 “멜라민 사건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이 가시지 않고 있다. 식품 위해 발생시 신속한 회수를 위해 영세 수입업체나 소형 판매점에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나 빠른우편 등으로 공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해 전재희 복지부 장관으로부터 “그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적극 검토해 시행하겠다”는 답변을 끌어냈다.
이명박(MB) 정부 복지정책의 문제점도 날카롭게 추궁했다. 박 전 대표는 “‘작은 정부’를 복지를 줄이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살을 빼야 할 곳이나 혈세가 줄줄 새는 부분은 줄여야 하지만 사회복지 공무원같이 꼭 필요한 인원은 더 늘려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해 복지부 관계자들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복지위의 한나라당 한 의원은 “박 전 대표가 최다선임에도 질의나 감사 태도에서 모범을 보여 여야를 막론하고 인기가 높다. 특히 동료 의원들은 물론 피감기관 관계자들과도 격식 따지지 않고 대화를 잘 나눠 대권주자 티를 전혀 내지 않는 것도 호감을 사고 있다”고 말했다.
정몽준 최고위원은 거물들이 몰려 ‘상원’으로 불리는 외교통일통상위에서 국감을 치르고 있다. 이 위원회엔 6선인 정 최고위원 외에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6선), 안상수·정의화·남경필 의원(4선·한나라당)과 민주당 정세균 대표(4선), 박상천 의원(5선), 이미경 사무총장(4선) 등 중진들의 집합소다. 그리고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3선),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초선) 등도 포진해 있다.
정 최고위원은 국감 질의에선 특별히 눈에 띄는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오히려 ‘국감 외’ 활동이 관심을 모았다. 정 최고위원은 지난 8일 주미대사관 국정감사를 위해 미국 워싱턴으로 날아갔다. 워싱턴에서 그는 존스홉킨스대 교환교수로 머물고 있는 MB계의 ‘좌장’ 이재오 전 최고위원을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7·3 전당대회를 통해 지도부에 입성한 이후 ‘비주류’를 자처해온 정 최고위원이었기에 이 전 최고위원과의 회동은 여러모로 상징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 (왼쪽부터) 정몽준 최고위원, 오세훈 서울시장, 김문수 경기지사. | ||
한때 ‘독불장군’이란 비판을 받으면서까지 정부·여당의 정책에 반기를 들고 나섰던 것과 달리 최근엔 MB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있는 것도 눈길을 끈다. 지난 2일 최고위원회의에선 “대통령이 러시아 방문을 통해 많은 업적을 내서 국민들이 기뻐하고 있다”며 “북한에 가스 파이프를 설치해 직접 수송하는 사업이 성사되면 그 효과는 이루 말할 수 없다”고 극찬해 이전과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오세훈 시장은 국감을 통해 녹록치 않은 상황대처 능력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행정안전위(8일),국토해양위 감사(14일)에서 뉴타운과 제2롯데월드 건립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해 야당 의원들의 십자포화가 이어졌지만 특유의 물 흐르는 듯한 답변 태도로 큰 충돌 없이 넘어가는 능력을 보여줬다.
오 시장은 특히 “서울시 뉴타운에서 임대주택 비율이 너무 낮다”(민주당 김성곤 의원), “제2롯데월드에 대한 서울시의 입장이 뭐냐”(한나라당 김정권 의원)는 질의에 각각 “서울시로서도 고민”, “속마음으로는 하고 싶지만 국토해양부와 총리실, 국방부의 협의결과에 따를 것”이라며 솔직하게 답변해 추가 공세를 차단하는 소득을 거두기도 했다.
행정안전위의 한 한나라당 3선 의원은 “이번에 보니 오 시장이 ‘초보 시장’의 티를 완전히 벗었더라. 방송 시사프로그램을 오래 진행한 덕택인지 질의한 의원의 체면을 세워주면서도 할 말을 하는 답변 태도가 돋보였다. 실제적인 능력이나 콘텐츠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외형적으로 보기엔 차기 대권주자로 손색이 없어 보였다”고 평가했다.
반면 광역지방자치단체장 중 또 다른 차기 주자로 꼽히는 김문수 지사는 시종 공격적인 태도로 국감에 임해 ‘득’보다 ‘실’이 컸다는 분석이다. 행정안전위 감사(14일)에서 비수도권 의원들 중심으로 자신이 주창한 ‘수도권 규제 완화론’에 대한 비판이 쇄도하자 김 지사는 상대방을 무안하게 할 만큼 직설적으로 대응했다.
김 지사는 한나라당 간사인 권경석 의원이 “수도권은 비만이라 다이어트가, 비수도권은 영양실조라 영양공급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자 “만약 (경남) 산청군에서 ‘창원은 잘 사는데 왜 우리는 못 사냐. 도청을 산청으로 옮기자’고 나온다면 다 망하는 것”이라고 받아쳤다. 권 의원의 고향이 산청군이고 현 지역구가 창원임을 염두에 두고 쏘아붙인 것.
김 지사는 또 “(MB정부가) 공산당이나 히틀러보다도 못하다는 식의 정제되지 못한 발언들이 정부 신뢰를 떨어뜨린다”(한나라당 안경률 사무총장)는 비판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공산당은 수도권 규제가 없다. 경기도 규제는 공산당보다 못한 점이 많이 있다. 지금도 국가가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반박해 국감장을 술렁이게 만들었다. ‘소신파’다운 김 지사의 발언이었다.
이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