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참정권 훼손, 투표시간 임의 연장 등 법적 문제도…부실 관리 반복 “선관위 전면 쇄신 필요”

특정 투표소에선 대기표를 받은 뒤 귀가한 유권자를 찾기 위해 아파트 안내방송을 동원하는 웃지 못 할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가 대기표를 받은 뒤 투표를 하지 않고 귀가한 유권자 14명을 찾는다는 소식은 실시간으로 전국민에게 방송됐다. 선관위는 오후 10시까지 투표용지 부족으로 인해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한 유권자를 기다리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1시간을 기다리다 투표를 포기하거나, 생업 등으로 인해 대기를 포기하고 투표장에서 발길을 돌린 경우 등 선관위의 선거 관리 부실로 인해 참정권을 보장받지 못한 사례들이 알려지면서 선관위를 향한 비판은 증폭됐다.
정치평론가 신율 명지대 교수는 “말이 안 되는 일이 발생했다”면서 “법적으로 위반한 일들이 한둘이 아니다”라고 했다. 신 교수는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투표한다는 부분은 법률로 정해져 있는 부분”이라면서 “그 투표시간을 법원 명령 등의 근거 없이 선관위가 임의로 10시까지 늘릴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법적으로 여론조사 블랙아웃 기간이 명시돼 있는 것은 사전투표 하는 유권자들이 여론조사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면서 “블랙아웃 기간에 여론조사 기관이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 처벌받듯,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된 뒤에 투표를 진행한 부분은 선관위가 처벌을 받아야 할 필요성이 있는 대목”이라고 했다 .
신 교수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투표를 하려고 대기하다가 집으로 간 사람들이 몇 명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점”이라고 했다. 그는 “종합적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고, 정치권에서 중앙선관위원장을 비롯한 장관급 선관위원들에 대한 탄핵 이야기가 충분히 거론될 수 있는 엄중한 사건”이라고 했다.

허 사무총장은 “선관위는 해당 사실(투표용지 부족)을 인지한 즉시 투표용지가 부족한 투표소로 투표용지를 이송했으며, 해당 투표소에서 대기 중인 유권자는 (투표) 마감 시각이 지나더라도 정상적으로 투표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안내했다”면서 “중앙선관위는 이번 사안을 엄중히 인식하고 있으며 개표가 종료되는 즉시 일부 투표소의 투표용지가 부족했던 원인과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해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했다.
허 사무총장 대국민 사과 이후 논란은 더 커졌다. 중앙선관위원장이 직접 사과를 하지 않은 것을 두고도 말이 많았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직접 사과를 하고 수습을 해도 모자랄 상황에 사무총장이 대국민 사과를 했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라면서 “대법관의 권위의식인 것인지 상황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은 선관위의 중대한 관리 부실이 발견돼 수사 및 재판을 진행하더라도 제대로 된 책임을 묻기 어려운 구조”라면서 “선관위원장이 대법관인데 제대로 된 재판이 될 리 만무하다”고 했다.
그는 “각종 선거 부실 관리 사례는 선관위에 묘하게 존재하는 특권의식과 매너리즘 때문”이라면서 “대법관이 위원장으로 앉아 있는 헌법기관 선관위는 감사원이 감사도 할 수 없는 기관이다. 삼권분립 사각지대에서 누구의 견제도 받지 않는 선관위가 사고의 체급을 선거 때마다 늘려가고 있다”고 꼬집었다.

장 대표는 “막연히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것이란 이유로 이번 사건을 덮고 갈 일이 아니”라면서 “개표가 마무리되면 어떤 진상도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당장 개표를 중단해야 하고, 필요에 따라 재선거를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승래 민주당 사무총장은 “선관위의 표 부실 관리에 대해서 강력한 유감을 표명한다”면서 “이 문제는 사과 정도로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부실한 선거 관리에 대해선 당 차원에서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했다.
장동혁 대표가 주장한 개표중단 및 재선거 주장과 관련해 조 사무총장은 “일고의 가치가 없다”면서 “그 문제와 관련 없이 많은 서울 시민이 투표를 진행했고, 투표가 마감되고 절차를 거쳐 개표소로 이동했고, 지금도 개표가 진행되고 있다. 이 문제로 서울 시민 유권자 뜻에 불복하는 행태로 가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6월 3일 오후 10시 30분 경 청와대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관련해 “선관위가 대응할 문제”라고 대응했다. 오후 11시 45분 즈음 청와대는 “일련의 상황을 엄정하게 주시 중”이라며 “선관위는 투표권 행사와 개표 관리에 차질이 없도록 책임 있는 조치를 해야 한다”는 추가 입장을 내놨다.
일부 분노한 시민들은 용지 부족사태가 발생한 잠실7동 제2투표소와 과천 중앙선관위 앞에 집결했다. 과천 중앙선관위 앞에선 ‘부정선거 타도’를 외치는 목소리가 주를 이뤘다. 잠실7동 제2투표소에 집결한 시민들은 투표함 반출 여부를 두고 선관위와 팽팽하게 대치했다.

정치권에선 정원오 후보가 이겼다면, 투표용지 부족이 더욱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번졌을 것으로 본다. 국민의힘과 오 후보 측이 선거 결과를 수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서울시 자치구 대부분 개표가 대부분 마무리된 가운데, 송파구 당일투표 분이 가장 저조한 개표 진행률을 보였다. 잠실7동에서 선관위와 시위대가 대치하는 상황의 여파였다. 시위대는 재선거 필요성을 외치며 투표소를 막아섰고, 선관위는 선뜻 투표함을 반출하지 못했다. 투표함 반출 여부와 관련 없이 서울시장 선거는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 승리로 막을 내렸다.
6월 4일 오전 9시가 넘어 정원오 민주당 후보가 선거 패배를 인정했다. 개표가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은 시점에 오세훈 서울시장도 당선 소감을 밝혔다.

오 시장은 선관위에 대해 “제가 아는 공조직 중에 가장 긴장감이 떨어지는 조직”이라면서 “무엇이 문제였는지 철저히 규명하고 그에 상응하는 엄중한 책임과 근본적인 개선책이 반드시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비판 수위를 높였다.
오 시장은 6월 5일 법적으로 당선인 신분이 됐다. 6월 5일 오전 8시 50분 경찰기동대가 잠실7동 제2투표소 앞에 집결한 시위대를 강제해산시켰다. 8시 55분엔 투표함 2개가 개표소로 이동됐다. 잠실7동 당일투표함에서 나온 유효표 4132표 가운데 81%에 해당하는 3358표가 오 시장을 찍은 표였다. 잠실7동 당일투표함 개표를 완료한 뒤 6·3 지방선거 개표는 완전히 마무리됐다.
국민의힘 서울시당은 서울 강남구, 광진구, 동작구, 서초구, 송파구 등 5개구 14개 투표소에서 용지부족 사태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국민의힘 서울시당에 따르면, 인천 연수구 2개 투표소와, 경기 화성시 동탄구 한 투표소에서도 투표용지가 부족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관련해 선관위는 예년보다 높은 투표율로 일부 투표소에서 준비된 투표용지 수량보다 더 많은 유권자가 왔다고 해명했다. 선관위 내부적으론 이번 지방선거부터 최소 선거인수의 50%에 해당하는 물량 투표용지를 인쇄하라는 새로운 지침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투표용지가 부족했던 투표소들은 공통적으로 당일투표율이 높은 곳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오세훈 캠프 대변인 박용찬 국민의힘 영등포을 당협위원장은 “당일투표율이 높은 투표소를 중심으로 투표용지가 모자랐던 이유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는 상황”이라면서 “사안의 중대성으로 보면 ‘투표용지 부족 사태’라는 네이밍이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박 위원장은 “이 사건은 특정 투표소에서 유권자에게 배부해야 할 투표용지가 증발한 사건”이라면서 “이런 중대한 사건이야말로 특검 대상이라고 보고 있다”고 했다.

2025년 대선에선 신촌 한 사전투표소에서 관외선거 대기자들이 투표용지를 미리 받은 뒤 식사를 하고 와 투표를 하는 ‘용지 사전배부 논란’이 불거지며 선관위가 사과하는 일이 발생했다. 국민의힘은 이번 선거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소쿠리 투표나 용지 사전배부 논란보다 훨씬 사안의 심각성이 중대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선관위가 지속적으로 부실하게 선거를 관리를 한 소쿠리 투표나 용지 사전배부 논란 사례들은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장하는 연료로 쓰여 왔다”면서 “이번에 선관위가 저지른 더 큰 대형 사고를 치면서, 부정선거 음모론에 장작을 부어주는 모양새가 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관계자는 “선관위의 부실한 선거관리 행태에 대해 여야 할 것 없이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논의할 필요가 있다”면서 “선관위에 대한 전면 쇄신 방안도 논의돼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노태악 중앙선관위원장은 6월 5일 대국민 사과를 통해 “변명의 여지가 없다. 진상규명위원회를 설치, 근본적 원인을 파악하고 모든 결과를 소상히 밝히겠다. 또한 국회 국정조사 등 모든 절차에 성실히 임하겠다. 그 결과에 따라 책임져야 할 일이 있다면 회피하지 않겠다”면서 “이 모든 사태에 통감하며 직에서 물러나겠다.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쳐드린 점 다시 한 번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