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박정희는 못 말리는 애연가였다”
▲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 ||
신 전 의원은 책을 마무리하며 “막상 펜을 들고 지난 날 겪었던 일들을 쓰다 보니 나의 지나간 언론과 정치권 생활 50여 년이 흡사 휘몰아치는 광풍 속에 정신없이 휩쓸려 갔다가 튕겨져 나온 느낌”이라는 소회를 밝혔다. 그가 회고록을 통해 밝힌 정치권의 뒷얘기들을 소개한다.
◀◀ 정일권 전 총리와의 인연
신경식 전 의원을 정계에 입문하게 했던 정일권 전 국회의장과의 첫 만남은 수위실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1964년 5월 9일 일요일 아침, 대한일보 정치부 기자이던 그가 박정희 대통령의 취임 6개월에 즈음해 개각 관련 취재를 위해 중앙청의 수위실로 들어갔다가 당시 외무부 장관을 맡고 있던 정일권 전 총리의 전화통화를 엿듣게 된 것. (당시 전화는 수위실 전화기를 들면 통화내용이 들렸다고 한다.)
신 전 의원은 당시 정일권 장관이 “형님이 꼭 외무부 장관을 맡아주셔야겠습니다”라고 하는 말을 듣게 되었고 이어 “외국에서도 해군제독이 외무부 장관을 맡는 일은 아주 많아요. 형님이 외무부 장관 안 맡으시면 저도 총리(로 가는 것) 그만 두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신문에 이름이 오르내리던 손원일 제독이 외무부 장관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한 신 전 의원은 ‘국무총리 정일권, 외무부 장관 손원일’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내 특종을 할 수 있었다. 얼마 뒤 총리에 취임한 정 전 의장은 신 전 의원에게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단둘이만 알고 있었던, ‘손원일 제독을 외무부 장관으로 정했던 사실’이 새어나간 것을 알고 정신이 아찔했다고 밝혔다고 한다. 정 전 의장은 이날 만남에서 신 전 의원에게 “앞으로 가끔 만나 식사라도 하면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자”고 제안해 두 사람의 인연이 깊어졌다고. 이후 정 총리가 국회의장이 되자 신 전 의원은 비서실로 들어가 수석 비서관과 비서실장으로 6년 동안 보필하게 된다.
◀◀ 담배 좋아하던 박정희 생도
정일권 전 총리는 가까이 지내던 신 전 의원에게 자신의 가정사나 활동상, 주변 인물들에 대해 스스럼없이 얘기해주며 언젠가는 자신의 기록을 정리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한다. 다음은 신 전 의원이 들은 정일권 전 총리가 과거 만주에 주둔하고 있던 관동군 사령부에서 근무하던 시절의 이야기.
만주군관학교를 졸업하고 관동군 사령부의 사령관 부관으로 있던 정일권 중위는 주말에 자주 후배들을 찾아갔다고 한다. 이때 키가 작고 까만 얼굴의 야무져 보이는 낯선 생도가 있었는데 바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다. 당시 박정희 생도는 특히 담배를 좋아해 매주 정일권 부관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고 한다. 정 부관은 일주일치 배급 담배를 모았다가 박정희 생도에게 모두 주었다고. 박정희 생도는 고향에서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선생으로 있다가 입교해서 동기생들보다 나이가 많았다. 정일권 부관은 자기와 동갑이지만 계급 차이가 큰 박정희 생도를 남달리 챙겼다고 한다.
▲ ① 미군 측과 작전계획을 수립하고 있는 정일권 총리(왼쪽). ② 민병도 전 한은 총재(가운데)가 필자에게 포커할 때 과도한 베팅을 나무라고 있다. ③ 김영삼 대표와 김대중 총재는 사소한 일에도 서로 신경을 곤두세웠다. | ||
정일권 전 의장은 술을 들지 않았다. 젊어서는 술이 셌지만 폭음을 한 장군들이 중년 이후 술 때문에 고생하는 것을 보고 금주를 단행했다고 한다.
정 의장은 술 대신 포커를 좋아했다. 정 전 의장은 총리 시절 포커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지금 신문로 성곡미술관 자리가 바로 공화당 재정위원장이었던 성곡 김성곤 의원 자택이다. 이 집에서 포커를 자주 했는데 하루는 정 당시 의장, 김성곤 위원장, 이후락 청와대 비서실장, 허정구 (남서울CC) 회장, 민병도 회장(전 한은 총재), 장상태 (동국제강) 회장 등이 모였다.
당시에는 높은 끝수만 보는 ‘세븐 오디’를 할 때였다. 김성곤 위원장이 ‘킹 오브 투 페어’를 펴놓고 세게 베팅을 하는데 장상태 회장이 조그만 ‘원 페어’를 까놓고 따라오면서, 김 위원장이 베팅하면 거기다가 몇 배씩 ‘킥백’(레이즈)을 해댔다. 마지막 카드를 다 돌린 뒤 김 위원장이 조심스럽게 베팅을 하자 장 회장이 킥백을 하면서 있는 돈을 다 털어넣었다. 김 위원장이 ‘킹 투 페어’를 펴놓고 고민고민하다가 카드를 접고 들어가면서 엎어놓은 장 회장 히든 카드를 잽싸게 펴보니 겉에 나와 있는 ‘세븐 페어’뿐이더라는 것이다.
분노가 치민 김 위원장은 “야, 이놈아, 너는 부모도 없냐?” 소리를 버럭 지르면서 장 회장 따귀를 올려붙였다고 한다. 그때 두 사람의 연령은 15년 차이였다.
국회가 폐회 중일 때 여의도 의장 공관에서 저녁에 가끔 포커판이 벌어졌다. 한번은 정 의장이 청와대에 들어갔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포커라는 게 그렇게 재미있는 겁니까? 아무개, 아무개 등이 의장 공관에 모여 밤늦게까지 그걸 한다면서요?” 했다. 놀라운 일이었다. 당황한 정 의장이 “시간 보내기 위해서 가끔 모인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속으로는 진땀이 나더라고 했다.
주변을 수소문해보니 경찰에서 파견 나온 의장 공관 경비대가 치안본부(현 경찰청)에 매일 보고서를 올린다는 것을 알았다. 당일 공관 출입자 명단이 보고 1순위라는 것이다. 경비실은 외부 인사들이 들어오는 시간과 나가는 시간을 정확하게 기록해서 상부에 보고했다. 밤늦게까지 공관에 머물다 돌아가는 인사들이 무엇을 하는지 그것도 체크했고 이 사실을 차지철 경호실장이 박 대통령에게 보고했던 것이다.
육영수 여사 시해 후 청와대 경호실장직을 내놓고 한가하게 지내던 박종규 전 실장도 단골손님으로 포커판에 자주 참석했었는데 박 전 실장 이름은 참석자 명단에서 빠져 있었다. 박 전 실장과 차 실장은 각별히 밀착된 사이였다.
◀◀ YS가 들려준 유머
김영삼 전 대통령(YS)의 비서실장을 두 번이나 지내며 겪은 에피소드도 많다. 신 전 의원은 가까이서 YS가 겉으로 보이는 강성 이미지와는 달리 개인적으로는 소박한 인정미가 넘치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한번은 자동차로 이동하며 신 전 의원이 <정치인이 유머가 없으면 인기가 없다>는 책을 보았다고 했더니 YS가 젊은 시절 일화를 들려주었다고 한다.
‘8·15 해방 무렵 거제도에 살 때 집에 지능이 좀 모자라는 범이라는 총각이 일꾼으로 있었다. 하루는 아버지 김홍조 옹이 “범이야, 너 내일 아침 일찍 읍내 좀 갔다 와야겠다”고 말했다. 읍내까지는 왕복 30~40리는 족히 되는 길이었다. 다음날 아침 읍내로 심부름을 보내려고 범이를 찾는데 온 동네를 다 찾아보아도 없었다. 끝내 못 찾고 걱정을 하고 있는데 해가 중천에 왔을 때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은 범이가 들어섰다. 식구들이 모두 쫓아나와 “도대체 어딜 갔다 오는 거야”라고 물었더니 “할아버지가 오늘 아침 일찍 읍내 갔다 오라고 해서 지금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YS는 이 이야기를 하며 어린아이처럼 천진스럽게 허리를 잡고 웃었다고 한다.
▲ ④ 파리 몽마르트 언덕에서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 정주일 의원(오른쪽). ⑤ 신한국당 의총에서 강삼재 사무총장(오른쪽)과 김대중 후보 비자금 문제를 협의하고 있다. ⑥ 이회창 총재와 귓속말로 대선 득표전략을 협의하고 있다. | ||
신 전 의원은 14대 국회 시절 함께 활동했던 연예인 출신 정주일(이주일), 이순재 전 의원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에 대한 일화도 소개했다. 1994년 가을 국정감사에서 경주박물관에 대한 현지 감사를 내려갔을 당시의 일. 박물관 감사를 마친 일행은 불국사로 갔는데 수학여행 온 수백 명의 학생들이 정주일, 이순재 의원을 둘러쌌다는 것. 학생들은 정주일 의원의 오리걸음을 흉내 내는가 하면 “대발이 아버지(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에서 이순재가 맡았던 역)”라고 외치며 이순재 의원을 잡아당기기도 했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는 대통령이 나타나도 두 의원의 인기를 당할 수가 없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월드컵유치를 위해 1995년 특위를 구성해 유럽 순방에 나섰을 때에도 동행한 정주일 의원의 인기는 대단했다고 한다. 파리에서 물랑루즈 쇼를 보고 있는데 앞쪽에 있던 한국 관광객들이 쇼는 제쳐놓고 20여 명이나 한꺼번에 몰려오는 소란이 있기도 했다. 또 몽마르트 언덕에서 정주일 의원과 같이 초상화를 그리려고 앉아있는데 어디선가 수십 명의 아주머니들이 우르르 달려와 야단이 났다. 깜짝 놀란 화가가 “당신은 누구냐”고 물어 신 전 의원이 옆에서 “이 분은 황제다”라는 농담을 했다는 것. 화가는 깜짝 놀라 일어나 공손히 허리를 굽혔는데 이때 신 전 의원이 다시 “한국의 코미디 황제”라고 덧붙여 같이 웃었다고 한다.
◀◀ 비자금의 추억
신 전 의원은 1997년 10월 대선을 2개월여 앞두고 강삼재 신한국당 사무총장이 김대중 당시 민주당 후보의 비자금 파일을 폭로했던 사건에 대한 소회를 털어놓기도 했다.
당시 신한국당은 김대중 후보가 365개의 가·차명 또는 도명 계좌로 동화은행 등에 670억 원의 정치자금을 관리했다고 주장하고 ‘뇌물 수수 및 조세 포탈, 무고혐의’ 등으로 김 후보를 검찰에 고발했다. 비자금 의혹 발표 후 신한국당은 모처럼 활기를 띠었다. 하지만 2주일 후 나온 검찰 발표는 ‘대선을 불과 2개월 앞둔 시점에서 김대중 후보의 비자금을 수사할 경우 국론 분열과 경제 마비 등 대혼란이 예상되므로 수사를 유보한다’는 것이었다.
이후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고 취임식 이틀 전인 1998년 2월 23일 비자금에 대한 검찰의 발표가 다시 나왔다. 신 전 의원은 “검찰은 김 후보의 비자금 은닉은 전부 55억 원뿐이고 이 돈을 처조카인 동화은행 이 아무개 씨가 관리해 왔다고 발표했다. 검찰 발표는 YS 집권 당시 사정비서관으로 있던 B 씨가 비자금 내역을 조사했고 이 조사 서류를 당시 정형근 의원이 입수해 강삼재 총장에게 전달했다는, 입수 경위를 밝히는 데 초점을 둔 느낌이었다”며 “DJ 비자금 의혹은 DJ의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안개 속으로 사라져버렸다”고 덧붙였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