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피우다 들켜 혼쭐 ‘그들도 보통 남자’
▲ 린든 존슨 대통령은 여성 편력으로 유명했다. 왼쪽은 부인 버드 여사. | ||
지난주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출간된 <내 사랑 대통령: 대통령과 부인의 편지>는 미국 대통령들이 부인과 주고받은 ‘연애편지’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여기에는 사랑, 그리움, 배신, 상실감, 욕정 등 대통령의 지극히 인간적인 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의회 역사 연구가인 제라드 가월트가 쓴 이 책은 대부분 의회 도서관이나 대통령 도서관, 가족들, 친척들이 보관하고 있던 1백84통의 편지와 4천~5천 통의 전보를 한데 모아 놓은 것이다.
“당신을 만져야겠어. 안 그러면 폭발해 버릴 것 같아.”
과연 누가 이토록 정열적인 연애 편지를 보냈을까. 조금은 낯 뜨거운 이 구절의 주인공은 바로 제40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다. 부인 낸시 여사에게 보낸 이 편지는 그가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취임하기 3년 전인 1963년에 보낸 것으로 결혼한 지 11년이나 지났건만 그가 당시 얼마나 부인에게 푹 빠져 있었는지를 잘 알 수 있게 해 준다.
또한 제26대 대통령인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국민들 앞에서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내뿜는 지도자였지만 사실은 로맨틱하고 감상적인 사람이었다. 대학교를 갓 졸업한 풋풋한 청년이었던 루스벨트는 결혼 5일 전 약혼녀 앨리스 리에게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당신의 몸을 만진다는 게 신성모독과 같이 느껴질 정도로 당신을 숭배합니다.”
제28대 우드로 윌슨 대통령 역시 부인 엘렌 여사에게 시적인 표현이 가득한 편지를 써서 보내곤 했다. 대학 시절 만난 부인에게 보낸 한 편지에서 그는 “이제 잠자리에 들어 당신과 꿈 속에서 키스를 나누겠소”라고 적어 보냈다.
제33대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캔자스 군사 훈련 기지로 면회를 왔던 아내 베스 여사에게 아쉬움과 그리움이 가득한 편지를 써서 보냈다. 당시 정작 베스 여사 앞에서는 남자로서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지만 그녀가 돌아가자 못다한 진심을 편지를 통해 고백한 듯 보인다. “내가 무감각한 사내 대장부처럼 행동했던 게 사실이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은 그는 “지난밤 당신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소”라면서 진심을 밝히기도 했다. 대통령직에 오르기 무려 22년 전인 1923년의 편지였다.
▲ 부시 전 대통령 부부 | ||
하지만 대통령들의 연애라고 해서 일반 사람들과 다른 것은 아니었다. 이들 역시 달콤했던 연애 시절을 뒤로 한 채 언제 그랬냐는 듯 아내에게 충실하지 않은 적도 많았기 때문이다.
여성 편력이 심했던 존슨 대통령은 “당신을 미치도록 사랑한다”는 고백이 무색할 정도로 여러 여자들과 바람을 피웠다. 이에 훗날 버드 여사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고 말하면서 넘어가곤 했다.
제34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 총사령관으로 유럽에 머물면서 운전기사 겸 비서인 케이 서머스비와 밀애를 즐겼다. 그가 바람을 피운다는 소문이 멀리 고향에 있는 아내 매미 여사의 귀에까지 들어가자 그는 뒤늦게 이런 소문을 극구 부인하는 편지를 수차례 보내기도 했다. 그저 가까운 친구일 뿐이라고 주장했던 그는 편지에서 “나는 그녀에게 아무 감정이 없소. 앞으로도 그럴 거고”라면서 아내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애썼다.
제32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과 엘리노어 여사 사이에는 다소 딱딱하고 사무적인 편지들이 오갔다. 친밀감은 있었지만 서로 사랑에 넘치거나 애틋한 면은 전혀 없었던 것.
이는 그가 대통령직에 오르기 전 15년 동안 지속되었던 여비서와의 염문 때문에 애정이 식을 대로 식었기 때문이었으며, 이런 무미건조함은 이들이 주고받은 편지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백악관에 입성한 후에도 줄곧 짧은 메모를 통해 부인과 잡다한 대화를 주고 받았던 루스벨트는 하루는 “백악관에서 나오는 식사의 양이 쓸데 없이 많은 것 같소. 조금 줄이는 게 좋을 듯하오. 가령 아침식사에 나오는 달걀은 두 개 대신 하나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소”라는 메모를 남기기도 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인 제41대 부시 대통령은 부인 바바라 여사에게 애교 섞인 당부의 편지를 보냈다. 대선 캠페인이 한창이던 지난 1988년에 쓴 이 편지에서 그는 아내에게 카메라 앞에서 조금 더 다정한 분위기를 연출해 줄 것을 부탁했다. 당시 민주당의 듀카키스 후보를 물리치고 대선에서 승리를 거두었던 데에는 혹시 그의 이런 ‘특별 주문’이 한몫했던 건 아니었을까.
“여보, 마이크와 케이티 부부의 행동을 가만히 눈여겨보아요. 카메라가 돌아가면 나에게 좀 더 가까이 붙어 서려고 해봐요. 로맨틱하면 더 좋고. 나 역시 사랑이 담긴 눈빛을 보내거나 허리를 손으로 감싸는 연습을 하고 있다오. 당신이 그렇게 하면 TV에 더 효과적인 반응이 나타날 듯하오. 나의 스위티 파이 쿠쿠.”
‘스위티 파이 쿠쿠’는 부시 대통령이 바바라 여사를 은밀하게 부르던 애칭이었다.
한편 레이건 대통령은 생전에 낸시 여사를 ‘미들 사이즈 머핀’이라고 불렀으며,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앨리스 리에게 ‘나의 공모자’라는 애칭을 달아 주기도 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