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덕에 이리 기웃 저리 기웃
▲ 연예인 생활을 하고 있는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장남 고타로(왼쪽)가 총리의 퇴진 이후 그의 후계자로 정계에 입문할 수도 있다고. 로이터/뉴시스 | ||
토리노 올림픽 피겨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딴 아라카와 시즈카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노고를 치하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자신의 장남 고이즈미 고타로(27)에게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연기도 그저 그렇고 존재감도 없다. 현직 총리의 아들로 거창하게 연예계에 입문했다하더라도 실력이 없으면 밀려나는 것이 연예계의 생리다. 더구나 개성적인 배우가 대우를 받는 시대에 단지 훤칠한 청년의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고타로의 입지는 좁을 수밖에 없다. 또한 방송국에서도 총리 아들의 이미지에 누가 되면 안 되기 때문에 악역이나 버라이어티 쇼의 섭외를 꺼리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고이즈미 총리가 오는 9월 퇴진하면 더욱 존재감이 없어져 결국 아무도 찾지 않게 될 것이다.” TV 관계자의 말이다.
3대에 걸친 정치가 집안에서 태어난 고이즈미 고타로는 배우가 되기 위해 2000년 한 오디션에 참가했지만 결국 떨어진다. 그 다음해가 돼서야 할아버지의 소개로 유명 프로덕션과 계약을 한 후 화제를 모으며 연예계에 데뷔할 수 있었다.
그 후로 5년이 흘렀지만 대표작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맥주광고 정도다. 여전히 ‘배우 고이즈미 고타로’가 아닌 ‘고이즈미 총리의 아들’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이런 아들을 고이즈미 총리는 어떻게 생각할까.
정치권 관계자는 “고이즈미 총리는 고타로가 연예계에 데뷔한다고 했을 때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괜찮아. 스스로 책임을 지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 되지’라고 말했을 정도로 방임했다. 데뷔할 때에도 전화를 걸어 ‘치과에 가서 이를 손봐라’ ‘TV에 나올 거면 조금 살을 빼라’고 충고하는 것이 다였다”고 말한다.
고이즈미 총리는 전처와의 사이에 세 아들을 두었는데 1982년 이혼 후 장남과 차남은 본가가 있는 요코스카에서 할머니 손에 키워졌다. 전처가 키운 셋째 아들과는 아직 만난 적도 없는 상태. 매정하게 얼굴도 보지 않은 삼남과는 달리 고이즈미 총리는 장남이나 차남과는 사이가 좋다고 한다.
고이즈미 집안의 가정부였던 한 여성은 “국회의원 생활로 바빠서 일주일에 한 번밖에 집에 돌아오지 못 했던 시절에는 저녁 식사 전에 뜰에서 아이들과 캐치볼을 했다. 집에 오면 아이들이 보고 있던 TV 채널을 멋대로 클래식 음악 프로그램으로 바꾸곤 했지만 아이들은 오랜만에 돌아온 아버지에게 불평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고이즈미 총리의 고향에서는 차남이 그의 뒤를 이어 정치계에 입문할 것이란 소문이 돌고 있다. 지난해 9월 총선거에서 대학을 갓 졸업한 차남이 선거사무소에서 일하며 지원자들에게 인사를 하러 다녔기 때문이다. 학창시절 쭉 야구부원이었던 차남은 2001년 여름휴가 때 고이즈미 총리와 캐치볼을 하는 모습이 언론에 포착되기도 했다. 차남은 고타로에 뒤지지 않는 훤칠한 외모와 건장한 체격에 성격도 활발하다고 한다.
반면에 고타로는 아버지의 선거운동 기간에 요코스카의 번화가에서 여성과 데이트하는 모습이 목격되어 동생과 대조를 보였다. 그러나 역시 장남에 대한 애정은 각별한 것인지 고이즈미 총리는 짧게라도 매일 고타로와 전화통화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총리 관저에 드나드는 모습도 기자들에게 자주 목격됐다. 관저에는 고타로의 방이 따로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아버지 덕에 VIP 대우를 받으며 큰 노력 없이 원하는 것을 쉽게 얻어온 고타로의 인생은 아버지의 임기가 끝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자민당 관계자는 “사실은 고타로를 정계로 전향시키려는 계획이 있다”고 귀띔한다. 2년 전 고이즈미 집안의 가족회의에서 후계자 문제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고 한다. 그때 “차남은 아직 어리다. 고타로는 연예계에서 얼굴도 알려져 있으니 선거에 나가면 분명히 당선될 것”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이에 고이즈미 총리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몇년 후에는 고이즈미 고타로를 선거 유세장에서 보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래저래 고타로는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아버지의 후광 속에서 살아가야 할 듯하다.
박영경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