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가다 끌려가 ‘36일간의 지옥’ 경험
▲ 여중생을 감금 성폭행한 혐의로 연행되는 마리오. 그는 전에도 옆집 소녀를 성폭행해 복역한 적이 있었다. 오른쪽은 사진은 스테파니에가 길가에 떨어뜨려 구조를 요청했던 쪽지. | ||
이번 사건으로 독일 사회에서는 아동 성범죄 처벌법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으며, 들끓는 여론을 의식한 독일 정부도 해당 법안을 수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노라고 밝혔다.
지난 2월 중순 독일 드레스덴의 한 주택가. 길을 걷던 한 남성은 길바닥에 떨어져 있는 쪽지를 발견하고는 무심코 주워 들었다. 처음에는 누군가 버린 쓰레기겠거니 생각했지만 쪽지를 읽은 그는 왠지 모르게 불쾌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손바닥만한 크기의 작은 쪽지에는 누군가 다급하게 도움을 청하는 글이 빽빽하게 적혀 있었기 때문.
“이 쪽지를 읽으시는 분은 즉시 경찰에 신고해 주세요! 농담이 아니에요!”라고 시작된 쪽지에는 정확한 주소와 함께 마리오 M.이라는 사람이 13세 소녀를 납치해서 감금하고 있다고 적혀 있었다. 이어 이 수상한 쪽지는 “빨리 서두르세요! 분초를 다투는 일이에요! 목숨이 걸려 있어요!”라는 다급한 말과 함께 “구조해주신 분께 감사드립니다”라는 말로 끝을 맺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이 남성은 즉시 경찰에 신고했고, 이어 경찰은 쪽지에 적혀 있는 마리오(35)라는 이름의 남성의 집을 수색했다.
그 결과 거짓말같이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쪽지의 내용이 모두 사실이었던 것. 마리오의 집에 감금되어 있던 소녀는 지난 1월 11일 이후 실종되었던 스테파니에라는 이름의 여중생이었으며 발견 당시 티셔츠와 팬티 차림에 양말만 신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범죄 현장이 소녀의 집에서 불과 서너 블록 정도 떨어진 아주 가까운 곳이었다는 데 있었다.
현장에서 경찰에 의해 연행된 마리오는 자신의 범행을 순순히 시인한 채 현재 법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 조사 결과 그는 이미 한 차례 아동 성범죄를 저지른 전과범이었으며, 보호 관찰이 끝난 지 불과 2주 만에 또 다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왜 한 달이 넘도록 동네 사람들은 마리오의 수상한 점을 눈치채지 못했을까. 그리고 길에 쪽지를 흘리는 소녀의 용감한 행동은 어떻게 비롯된 걸까.
▲ 스테파니에 | ||
‘백수’였던 마리오는 하루의 대부분을 어린이 방송을 보면서 집에서 보냈으며 가끔 장을 보거나 외출할 때면 소녀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는 손발을 묶은 채 상자 안에 가두어 놓고 나가곤 했다.
그렇다면 왜 이웃 사람들은 그의 범행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을까. 그의 집이 다세대 주택 1층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오가는 행인들이나 이웃에 의해 의외로 쉽게 발각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이웃들은 하나같이 “전혀 몰랐다”고 말한다. 평소 말도 없고 조용한 사람인 데다가 그런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의 집 창문에는 늘 블라인드가 내려져 있었기 때문에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는 것. 가끔 그가 어린 아이 것으로 보이는 속옷을 빨아서 널어놓는 것은 보았지만 열 살배기 딸을 둔 그였기에 별다른 의심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현재 그의 딸은 엄마와 함께 다른 도시에 살고 있다.
하지만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고 했던가. 소녀에게 ‘탈출의 기회’는 가끔 허용되곤 했던 산책 시간에 찾아왔다. 가끔씩 인적이 드문 깊은 밤을 틈타 함께 산책을 나가곤 했는데 그때를 기회 삼아 미리 준비해 둔 쪽지를 몰래 길바닥에 흘렸던 것.
모두 네 장의 쪽지를 흘린 결과 마침내 소녀는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며 5주 만에 극적으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데 성공했다.
앞서 말했듯 마리오가 아동 성범죄를 저지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1999년 이웃집에 살던 14세 소녀를 자신의 집으로 유인해 성폭행한 혐의로 체포되었던 그는 당시 징역 3년 11월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당시 초범이었던 데다가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모습이 역력했고 재발의 우려가 없다는 전문 감정가들의 판단 하에 형의 3분의 2만을 복역한 후 가석방으로 풀려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다시 범행을 저지른 데다가 납치 및 폭행죄까지 더해져 실형 선고는 물론 보안감호 처분까지 받게 될 전망이다. 독일의 보안감호는 우리의 보호감호와 비슷한 제도로 초범을 제외한 상습범들을 대상으로 실형을 마친 뒤 보안감호소에서 복역하도록 하는 제도다.
한편 이번 사건을 계기로 독일에서는 아동 성범죄 관련법을 뜯어 고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의 경우에는 초범이건 재범이건 구분하지 않고 무조건 보안감호소에 넣자는 것이다. 또한 현재 5년으로 제한되어 있는 보안감호 기간을 종신형으로 확대하자는 등 보다 강력한 법제도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독일의 성범죄 처벌은 지난 2001년 슈뢰더 전 총리의 “(성범죄자들은) 평생토록 감금해야 한다”라는 강경 발언 이후 날로 강화되고 있는 게 사실. 사실상 종신형까지 선고할 수도 있는 것이 독일의 법이다.
민감해질 대로 민감해진 독일 여론이 과연 이번 사건의 판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