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가게 단골은 남대문시장”
“나는 그동안 한복을 많이 입지 못했다. 신식 집안에서 성장한 활동적인 사람이기도 했지만 결혼 후에도 역시 안방마님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궁여지책으로 통치마 한복도 입어 보았다. 그러나 그건 더 흉했다. 남편도 긴 치마를 입는 것이 더 좋아 보인다고 했다. 이도 저도 만족스럽지 않아서 (한복을) 자주 입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자 한복 업계에서 원성이 들려왔다. 영부인이 한복을 안 입어 장사가 안 된다는 것이다. 영부인을 따라 고관 부인들도 안 입는다고 했다. 공교롭게 앞서 손명순 여사도 한복을 즐기지 않아서 생긴 누적된 불만이다.
군인 출신 대통령이 있던 시절 고관의 부인들은 영부인보다 돋보이지 않도록 조심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간혹 제2부속실을 통해 내가 어떤 옷을 입고 행사에 참여하는지 묻는 참석자가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나의 옷차림에 신경 쓰지 말고 자유롭게 좋은 대로 입으라고 권했다.
1999년엔 양장이 큰 문제를 일으켰다. 이른바 ‘옷로비 사건’이다. 나는 원래 사치와 거리가 먼 사람이다. 우선 유폐, 연금, 투옥으로 길고 험난한 세월을 보낸 사람의 배우자로서 그럴 만한 경제적,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 내가 오랫동안 단골로 삼은 곳은 남대문시장이다. 시장 옷을 구입해서 내게 맞도록 그럴듯하게 고쳐 입었다. 나는 재봉과 수예 등 손재주가 좀 있는 편이다. 그러다가 야당 총재의 부인으로 옷차림에 다소 신경을 써야 할 때부터 라스포사를 이용했다. 나에게는 30% 이상 싸게 주었다.
장관 부인들이 라스포사 옷가게에서 옷을 사고 재벌 부인에게 대납을 요구했다는 이 사건은 국회 사상 첫 특별검사제 도입을 거쳤다. IMF 경제 위기로 고통을 겪는 국민들은 언론의 대대적인 보도로 인해 사건의 진실과 관계없이 격하게 분노했다. …나는 어떤 로비도 받아본 일이 없다. 이 사건은 국민들이 IMF 사태로 큰 고통을 당할 때 고위 공직자 부인들이 떼를 지어 옷가게를 다닌 처신이 문제였다. 교훈을 얻은 것에 비해 그 대가는 너무 컸다. 초기 ‘국민의 정부’의 도덕성에 큰 흠결을 남겼으며 우리 부부의 행보에도 큰 타격을 주었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