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부 기자 과반수 “가능성 있다”…‘위안부 강제연행’ 부인한 극우 행보 우려감
7월 2일 도쿄도의회 선거에서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가 이끄는 도민퍼스트회가 자민당을 누르고 제1당을 차지했다. EPA/연합뉴스
‘포스트 아베’로 급부상한 고이케 유리코는 1952년 일본 효고현에서 태어났다. 무역업을 하던 부친을 따라 이집트로 유학을 떠났고 카이로에서 대학을 졸업했다. 당시 “유엔 공용어에 아랍어가 추가될 것”이라는 신문기사를 보고 내린 결정이라고 한다. 대학시절에는 일본인 유학생을 만나 21세에 결혼했지만, 곧 이혼한 것으로 전해진다. 졸업 후 아랍어 통역사를 거쳐 니혼TV와 TV도쿄에서 유명 방송인으로 활약한 이색 경력도 갖고 있다.
고이케가 정계에 입문한 것은 1992년이다. 뉴스 앵커로 차곡차곡 인지도를 쌓은 고이케는 일본신당의 비례대표 참의원에 당선돼 정계에 진출했다. 이후 중의원에서 8선을 거두며 중견 정치인으로 떠올랐다. 특히 고이즈미 총리 내각 때는 환경상을 역임하며 두각을 드러냈다. 아베 총리의 1차 집권 시기에는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방위상을 맡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신당, 신진당, 자유당, 보수당을 거쳐 2002년 자민당에 입당할 때까지 무려 다섯 차례나 정당을 바꿨다. 호소카와 모리히로, 오자와 이치로, 니카이 도시히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아베 신조 등 정계 실력자에 따라 당을 옮겨 다녀 ‘기회주의자’ 혹은 ‘철새 정치인’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정치적으로는 아베 총리와 마찬가지로 우파 성향이 강하다. 일본인들에게도 고이케는 ‘보수계 정치인’으로 통한다. 이와 관련 <동양경제온라인>은 “고이케가 이번 선거에서 내세운 기치는 정보 공개와 투명성, 행정 개혁 등이었으나 사실상 도민퍼스트회와 자민당의 공약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고 분석했다. 바꿔 말하면, 자민당과 정책면에서 결정적 차이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보수층의 유권자들도 고이케가 이끄는 도민퍼스트회의 후보자에게 투표한 것이다.
최근 도쿄도 유권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고이케 지사의 지지율은 70%에 달했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정치인으로는 드물게 사진집을 발매했다.
그렇다면 해외에서의 평가는 어떨까. 중국 경제신문 <제일재경일보>는 고이케 지사의 정책에 대해 “환경 보호주의와 우익 사상이라는 두 가지 핵심어로 집약할 수 있다”고 전했다. 신문은 “과거 환경상 시절 고이케 지사가 선진국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규정한 ‘교토의정서’ 준수와 ‘쿨비즈 운동(여름철 복장 간소화에 의한 냉방 절약)’을 추진해 큰 성과를 냈으며, 도지사 취임 후에도 강력한 금연 정책을 추진해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아베 총리를 뛰어넘을 만한 우파적 성향을 지녔다”는 점에서는 우려를 나타냈다. 신문은 “고이케 지사가 일본 최대 극우단체인 ‘일본회의’의 핵심 멤버로 활동했으며, 일부 과격한 우익단체들 역시 그녀에게 지지를 표명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과거 인터뷰에서도 ‘위안부 강제 연행은 없었다’고 발언하는 등 극우 행보를 보여 왔다”면서 “일본의 대표적인 강경파 정치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평했다.
사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아베 총리의 독주가 2021년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계속되는 스캔들과 자만심으로 인해 아베 총리의 지지율은 30%대까지 곤두박질치며 끝없이 추락 중이다. 현재 아베 총리의 최대 경쟁자는 고이케 유리코다. 당초 아베 총리는 ‘내년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3선을 성취해 2021년 9월까지 연임, 역대 최장수 총리 기록을 경신하겠다’는 야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대로 가다간 그 꿈은 산산조각 날 가능성이 크다.
<주간겐다이>에 따르면 “고이케가 도쿄도지사에 취임한 직후부터 ‘도쿄올림픽이 끝나면 국정에 진출하겠다’는 구상을 측근들에게 털어놓았다”고 한다. 아울러 매체는 “이번 도의원 선거에서 압승을 거둠으로써 계획이 앞당겨질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고이케 지사는 정계에 입문하기 전 뉴스 앵커로 차곡차곡 인지도를 쌓았다. TV도쿄 앵커 시절의 모습.
60명의 정치부 기자들을 대상으로 이 매체가 실시한 앙케트 결과도 흥미롭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고이케가 총리가 될 가능성이 있는가”를 묻자 “그렇다”고 답한 기자는 31명으로 과반수를 차지했다. 이와 관련, 한 기자는 “고이케가 중의원 선거에 출마해 총리 자리를 노릴 듯하다. 외교에 대한 의욕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국정 복귀는 기정 노선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다른 기자는 “올해 64세인 고이케가 마냥 태평스럽게 앉아 있을 리 없다. 늦어도 2019년 여름 참의원 선거 직전에 지사를 사직하고 출마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종합해보면 고이케가 최단기 총리로 이어지는 시나리오는 2018년 중의원 선거에 출마하는 것이다. 승부사 기질이 있는 고이케다. 적의 힘이 쇠약해졌을 때, 기회를 놓치지 않고 중의원 선거에 참전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후 자민당과 연합한다면 총리 취임도 불가능한 건 아니다.
다만 도쿄도지사의 임기는 2020년 4월까지. 만일 도쿄올림픽을 앞둔 상황에서 지사를 사임하고 선거에 나설 경우 ‘무책임한 행정’ 논란을 피해갈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도쿄올림픽을 마친 2021년 총선에 출마하는 시나리오가 가장 현실적”이라고 전망하는 기자도 있었다.
한편, 지난 2일 도쿄도 의회 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고이케 지사는 다음날 “도민퍼스트회 당 대표직을 사임한다”고 밝혔다. 그는 “지사와 당 대표 겸직에 대한 우려가 있는 것을 감안해 지사직에 전념하겠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국정 진출 여부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다”며 즉답을 피했다.
이를 두고 일본 언론들은 “집권 자민당과의 갈등에 전면 나서지 않으려는 노림수로 보인다”는 평가가 많다. “조용히 수면 아래에서 국정 진출 구상을 가다듬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쪽에서는 “고이케가 자민당과 야당의 탈당파를 모아 연내 신당 창당에 나선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2017년 여름, 일본 정치계에 치열한 물밑 다툼이 벌어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