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배우보다 톱스타 향기…강수연 오버랩
KBS 2TV 월화드라마 ‘쌈 마이웨이’에서 최애라-황복희 모녀로 등장한 김지원과 진희경. 방송 화면 캡처.
왜 황복희는 어린 최애라를 두고 떠나야만 했을까. 그 비밀의 정답은 바로 ‘에로배우’라는 키워드에 있었다. 황복희의 과거부터 살펴보자. 빼어난 외모로 서산에서 유명했던 황복희는 최천갑(전배수 분)을 만나 딸 애라를 낳은 뒤 배우의 꿈을 이룬다. 영화 <옥매화>에 출연하지만 노출신 때문에 에로배우라는 낙인이 찍혀 시부모의 성화로 어린 애라에게 젖도 물려보지 못한 채 쫓겨난다. 몇 년 뒤 방송국에서 황복희에게 어린 딸이 있다는 내용을 보도하자 최애라가 ‘에로배우의 딸’로 불릴까봐 아예 일본으로 떠난다.
드라마에 짧게 등장한 당시 기사에 따르면 황복희는 38회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은 재능 있는 젊은이들을 발굴하고 독창성을 격려하기 위해 만든 비경쟁 부문이다. 또한 황장호(김성오 분)가 ‘책받침 여신’이라고 부른 것을 감안하면 당시 상당한 스타였음을 알 수 있다.
진희경이 연기한 황복희 캐릭터는 영화 속 노출신 때문에 에로배우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쌈 마이웨이’ 방송 화면 캡처.
한국 영화사에서 80년대는 ‘극장용 에로 영화’ 전성기다. 정윤희 안소영 이보희 나영희 이기선 등이 대표적인 80년대 극장용 에로 영화 전성시대의 스타들이다. 이 외에도 강수연, 원미경 등 당시 충무로 스타들의 상당수가 극장용 에로 영화에 출연해 파격적인 노출을 선보였다. 그만큼 당시 충무로는 극장용 에로 영화를 많이 찍었다. 70년대까지 영화에 대한 사전 검열이 심했던 데 반해 80년대에는 전두환 정권이 ‘3S 정책’을 펼치면서 극장용 에로 영화가 전성기를 누린 것. 따라서 당시 극장용 에로 영화에 출연한 여배우들은 시대의 트렌드에 맞춰 왕성하게 활동한 톱스타들이다. 에로배우라 불리며 대중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대상은 결코 아니었다.
에로배우라 불리지도 않았다. 에로배우라는 표현은 90년대 에로비디오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등장한 용어다. 한국 16mm 에로비디오는 90년대 초중반에 제작되기 시작해 한지일이 세운 한시네마가 95년 <젖소부인 바람났네>를 내놓으면서 전성시대를 열었다. 바로 이 그 즈음 에로배우라는 용어도 생성됐다.
15회 방송에선 황복희가 방송국에 찾아가 ‘에로배우 황복희, 미혼모였나?’를 다룬 프로그램을 방영하지 말아 달라고 PD에게 사정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시점에서 최애라가 5살임을 감안하면 93년으로 이는 에로배우라는 용어가 생겨나기 전이다. 따라서 당시 신문과 방송이 ‘에로배우 황복희’라고 언급했다는 부분은 당시 상황과 조금 어긋난 것으로 보인다.
또한 황복희가 PD에게 “내가 에로배우야? 노출만 가지고 사람 난도질해서 배우 하나 죽여 놓고 평생 애미 노릇까지 못하게 만들었으면 됐지?”라고 따지는 장면도 나온다. 이 부분 역시 당시 시대상을 감안하면 이해가 쉽지 않다. 여배우의 노출이 거의 없는 시기에 그런 영화에 출연했다면 노출만 가지고 난도질이 가능했겠지만 그 당시는 여배우의 노출이 매우 흔한 ‘극장용 에로 영화 전성기’였다. 그들의 호칭 역시 ‘에로배우’가 아닌 그냥 ‘여배우’로 사실은 당대 톱스타들이었다. 게다가 황복희는 칸에서 상까지 받았다.
여주인공 강수연에게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긴 영화 ‘씨받이’ 포스터.
그렇다면 배우 프로필로 볼 때 황복희에 가장 가까운 실제 배우는 누가 있을까. 80년대 노출이 있는 영화 <옥매화>에 출연해 세계 3대 영화제인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황복희와 가장 가까운 실제 여배우는 바로 강수연이다. 강수연이 1987년 영화 <씨받이>로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의 강수연 역시 노출 연기로 상처를 받았다. 한 방송에서 강수연은 “<씨받이>가 야한 영화라고 생각지 않았는데 언론의 관심은 베드신과 노출 연기에만 초점이 맞춰져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렇다고 ‘노출만 가지고 사람 난도질해서 배우 하나 죽여 놓은’ 수준은 아니었다. 오히려 베니스 여우주연상으로 시대를 풍미한 국민 배우의 반열에 올랐다.
황복희는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여우주연상으로 경쟁부문 여우주연상의 강수연만큼은 아니지만 얼추 그에 견줄 만하다. 다만 여기에서도 다소 옥에 티가 나온다. 칸 영화제에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이 처음 생긴 것은 1989년이니 <옥매화>의 황복희가 그 상을 받았다는 설정은 가능하다. 그런데 황복희가 그 상을 받은 것은 39회 칸 영화제다. 39회 칸 영화제는 1985년에 열렸다. 최애라가 태어나기 4년 전이고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도 생기기 전이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조재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