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몸 상처내는 고행은 작가의 오버?
▲ 영화 <다빈치코드>에서 오푸스 데이 수도승으로 등장하는 ‘사일래스’. 끔찍한 고행을 수행하고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인물로 그려져 큰 논란을 불러왔다. 오른쪽은 영화 포스터. | ||
특히 이 영화에 가장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는 곳은 <다빈치 코드>의 중심에 있는 ‘오푸스 데이’라는 가톨릭 비밀 단체다. 이유인즉슨 소설 속에서 이 비밀 단체가 살인을 서슴지 않는 광신도 집단으로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전면 부인하고 있는 ‘오푸스 데이’는 이로 인해 사람들이 오해할 것을 염려하면서 스스로 베일을 벗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과연 ‘오푸스 데이’는 어떤 단체일까. <다빈치 코드>에서 묘사된 ‘오푸스 데이’와 실존하는 ‘오푸스 데이’는 어떻게 다를까.
소설 <다빈치 코드>를 읽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아마도 ‘오푸스 데이’라는 이름부터가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아니 읽었다 하더라도 이런 단체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의구심부터 들었을 것이다.
댄 브라운은 소설의 서문에서 ‘사실’이라는 명제하에 오푸스 데이가 실존하는 독실한 가톨릭 분파이며, 세뇌와 강압, ‘육체의 고행’을 수행하는 위험한 단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오푸스 데이 측은 저자에게 이 부분, 즉 ‘사실’이라고 표시한 부분을 수정할 것을 여러 차례 권고했고, 소니 픽처스에 “이 영화는 픽션이다”라는 해명서를 공식 발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실제 존재하는 오푸스 데이란 과연 어떤 단체일까. 오푸스 데이는 ‘하느님의 사역’이라는 뜻의 라틴어로 1928년 스페인의 수도사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에 의해 창설된 가톨릭 기구다. 현재 세계 60개국에서 약 8만 7000명가량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미국에만 3000명 정도의 회원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도 들어와 있지만 정확한 회원 수는 아직 밝혀진 바 없다.
이 단체가 여타 가톨릭 단체와 다른 점은 ‘일상 생활’ 속에서 하느님을 찾고 뜻을 실천한다는 데 있다. 즉 꼭 교회에 나가야 한다기보다는 직장에서 혹은 가정에서 열심히 생활함으로써 성성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베일 속 명단
오푸스 데이의 회원은 크게 세 그룹으로 나뉜다. 먼저 오푸스 데이의 지도부인 사제들이 있으며, 이들은 전체 회원의 약 10%를 차지한다. 20%인 ‘뉴머러리’는 독신과 금욕을 실천하기로 서약한 핵심 회원들로 사제는 아니지만 오푸스 데이 센터에서 단체 생활을 하며 결혼은 하지 않는다. 또한 <다빈치 코드>에서 언급한 ‘육체적 고행’을 실제로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월급의 전부를 오푸스 데이에 헌납한다.
마지막으로 70%에 이르는 ‘슈퍼뉴머러리’라고 불리는 대다수의 회원들은 일반인들과 비슷한 생활을 하는 평신도들이다. 이들은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으며, 각자 집에서 하루에 두 시간씩 수행에 몰두해야 한다. 역시 월급의 상당 부분을 헌금으로 납부한다.
이들 회원들 중에는 정·재계 거물들도 몇몇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호기심을 유발하고 있다. 하지만 회원들이 스스로 공개하기를 꺼리고, 또 전통적으로 회원 명단을 공개하지 않는 오푸스 데이의 특성상 여태껏 명확하게 밝혀진 바는 없다. 이런 까닭에 워싱턴 정가에서는 “그는 오푸스 데이일까 아닐까”라는 일종의 알아맞히기 게임도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다.
오푸스 데이 회원인 것으로 추정되는 유명인사로는 영화배우 멜 깁슨, 안토닌 스캘리아 미 대법관, 루이스 프리 전 FBI 국장, 릭 샌토럼 상원의원 등이 있다. 하지만 오푸스 데이는 이런 사실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반면 공개적으로 오푸스 데이 회원임을 시인한 사람들도 있다. 교황청 수석 대변인인 호아킨 나바로 발스 추기경, 영국 노동당의 한 당원, 로버트 핸슨 전 FBI 요원 등이다.
▲ 허벅지에 차는 쇠사슬 ‘실리스’(위), 고행할 때 사용하는 채찍. | ||
무엇보다도 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은 관심을 끌고 있는 대목은 바로 오푸스 데이 회원들이 실시하는 ‘육체적 고행’에 있다.
<다빈치 코드>에서 묘사된 바에 따르면 이들은 매일 2시간씩 ‘실리스’라고 하는 못이 박힌 쇠사슬을 허벅지에 차며, 새끼줄을 꼬아 만든 것처럼 생긴 채찍으로 엉덩이나 등을 때리는 자학 행위를 실시한다. 소설 속에서는 피가 바닥에 흥건해질 때까지 고행을 실시한다고 묘사돼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하지만 오푸스 데이는 “터무니 없이 과장되었다”며 반박하고 있다. 예수의 수난을 몸소 체험하기 위한 이 고행은 실제 회원들 사이에서 역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고 판단해 현재는 원하는 회원들만 실시하도록 하고 있다. 오푸스 데이의 정신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 ‘뉴머러리’들에게는 매일 두 시간씩 실리스를 착용하도록 그저 ‘권장’만 하고 있을 뿐이며, 허벅지에 살짝 자국은 남을지 몰라도 피가 날 정도로 심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한 오푸스 데이 관계자는 “이런 고행은 단식처럼 가톨릭 교회에서 내려오는 오랜 전통 같은 것”이라고 말하면서 “테레사 수녀도 실리스를 착용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채찍을 이용한 고행은 일주일에 한 번만 실시하도록 되어 있으며, 더 원하는 회원들은 반드시 상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실제 자발적으로 육체적 고행을 실천하는 회원들도 많다. 20년 동안 오푸스 데이에 몸담고 있다는 익명의 한 방송사 기자는 “이런 육체적 고행을 즐겨 하고 있다. 약간의 통증은 느껴지지만 예수의 고난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어 오히려 기쁘다”고 말한다.
이밖에도 오푸스 데이 회원은 매일 찬물로 샤워를 해야 하며, 매 식사 때마다 간단한 고행을 실시해야 한다. 토스트에 버터 바르지 않기, 커피에 설탕이나 우유 넣지 않기, 디저트 먹지 않기, 한 그릇만 먹기, 식간에 간식 먹지 않기 등 극히 간단한 것들이다.
또한 매일 밤 성찰의 시간을 가진 후 다음날 오전 예배를 드리기 전까지는 한마디도 해서는 안되며, 일요일에는 일체의 음악도 들어서는 안 된다.
또한 여성의 경우에는 바닥에 깔린 매트리스에서 자야 하며, 일주일에 한 번은 베개를 베지 않고 자야 한다. 또한 흡연이나 술집 출입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이에 반해 남성의 경우에는 조금 관대한 고행이 실시된다. 일주일에 한 번만 맨 바닥에서 자면 되며, 담배는 피워도 되고, 신입 회원들을 모집할 목적이라면 술집도 허용된다.
#철저한 회원 모집
여기서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신입 회원들을 모집하는 방법이다. “다분히 공격적”이라고 말하는 한 탈퇴 회원은 “대부분 대학생이나 고등학생, 청소년 가톨릭 단체를 타깃으로 삼으며, 사전에 치밀한 계획을 짠다”고 말한다. 가령 잠재적인 신입회원이 스키광이라면 ‘뉴머러리’들이 미리 주말에 함께 스키 여행을 계획한 후 접근하는 방식이다.
또한 일단 오푸스 데이의 ‘뉴머러리’가 되면 가족과의 관계가 소원해진다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가족을 떠나 센터에서 생활하는 회원들은 가족들에게 오푸스 데이에 대해서 언급해서는 안 되며, 휴일에도 가족들을 만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다분히 개인 생활을 침해한다.” 2년 반 동안 오푸스 데이의 ‘뉴머러리’로 활동한 경험이 있는 타미 니콜라(38)가 미 주간지 <피플>에 털어놓은 내용이다. 현재 탈퇴한 후 세 아들을 둔 평범한(?) 가톨릭 신자인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일종의 ‘안티 오푸스 데이’ 단체인 ‘오푸스 데이 바로알기’를 운영하고 있다.
그녀가 가장 힘들었던 점은 ‘육체적 고행’보다도 늘 감시당하고 있다는 불쾌한 느낌이었다. 그녀는 오푸스 데이가 심지어 그녀가 읽는 책이나 TV 프로그램, 이메일, 만나는 친구들까지 제한을 두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역시 오푸스 데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회원들을 감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보다 친밀하게 지도하기 위해 가깝게 다가가는 것뿐이라는 것이다.
오푸스 데이의 대변인인 브라이언 피네티는 “<다빈치 코드>를 읽은 독자들이 무엇이 사실이고 거짓인지를 헷갈릴까봐 심히 걱정된다”고 염려하고 있다. 또한 <내셔널 가톨릭 리포터>의 바티칸 통신원이자 <오푸스 데이:객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본 허구의 이면과 현실>의 저자인 존 앨런 역시 “오푸스 데이를 면밀히 취재한 결과 소설이 상당 부분 과장되어 있다고 결론지었다”고 말했다.
이런 오해와 불신을 깨끗이 씻어내기 위해서 현재 오푸스 데이는 여러 방면에서 노력을 하고 있다. 우선 홈페이지에 일반인들이 오푸스 데이를 정확히 알 수 있도록 구체적인 설명과 함께 활동 내용을 알려주고 있으며, 농부, 소방수, 사업가, 대학생 등으로 이루어진 세계 각국 회원들의 인터뷰 동영상을 올려 놓고 있다.
이처럼 오푸스 데이의 실상은 지금껏 베일에 가려 있던 것과 달리 현재 다양한 매체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고 있다. 얼마전에는 시사주간지 <타임>과 인터뷰를 했는가 하면 여러 권의 책을 출간함으로써 오푸스 데이를 올바로 알리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노력으로 과연 오푸스 데이가 “음흉하고 비밀스럽다”는 편견을 어떻게 불식시킬 수 있을지, 그리고 공개적인 활동을 함으로써 얼마나 일반인들에게 가까이 다가설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