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의 소용돌이 모양은 자연스러운 것…병 걸린 수박은 구매하기도 어려워”
사진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최근 온라인의 핫 이슈는 WMV입니다. 일부 네티즌들은 “이 바이러스에 걸린 수박을 먹고 나면 설사를 하니 조심해야 한다”, “이젠 맘 놓고 수박도 못 먹겠다”라며 배탈의 원인을 WMV로 지목했습니다. “어쩐지 이걸 먹고 나서 설사를 하더라”는 경험담부터 “이걸 마트에 다시 가져가니 환불을 해주더라”는 무용담(?)까지. 많은 네티즌들이 여름의 과일 수박에 매몰차게 등을 돌렸습니다.
기자가 농촌진흥청에 확인해본 결과, WMV 논란의 일부는 진실이고 일부는 거짓이었습니다. 농진청 원예특작환경과 정봉남 박사는 <일요신문i>와의 전화통화에서 “논쟁이 된 이 바이러스는 WMV가 아니라 오이녹반바이러스(CGMMW)”라고 말했습니다.
정 박사에 따르면, CGMMW는 국내에서 28년 전 처음 보고된 바이러스로 WMV처럼 진딧물로 감염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즉 농민의 손으로부터 옮겨지는 바이러스입니다. 기후 변화와는 관계없습니다.
사진 출처= 농촌진흥청
이 바이러스에 걸린 수박은 과육의 씨앗 주변이 적자색을 띠고 과육 곳곳에 황색 섬유상의 줄이 생기며 물러집니다. 정상적인 수박이라면 향긋한 향이나 풋풋한 냄새가 나는데, 이는 시큼한 냄새가 난다고 합니다. 그러니 맛이 있을 리도 없겠죠.
색은 전체적으로 매우 붉은끼를 띠며 노란 섬유질 부분이 대비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 부분이 네티즌들이 말하는 ‘소용돌이’ 모양입니다. 정상적인 수박은 속이 단단하지만 생육이 좋지 않은 수박은 과육이 위축되는 모습을 보이다가 점점 무르기 시작합니다. 결국 세포조직이 붕괴되고 빨리 부패합니다.
온라인에서 가장 논란이 된 부분인 소용돌이 모양은 원래 정상 수박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무늬입니다. 정식 명칭은 ‘태좌’. 수박씨가 있는 자리에서 만들어진 과육 부분으로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입니다. 박과식물의 밑씨가 착생하는 곳으로 수박에선 수박 씨가 자리잡는 과육 부분입니다.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현상이죠.
사진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CGMMV에 걸린 수박은 태좌 부분이 굉장히 도드라진 모습입니다. 하지만 태좌가 선명하다 해서 모든 수박이 CGMMV에 걸린 것도 아닙니다. 수박의 자연스러운 원래 그 모습이기도 하고, 빨리 익는 부분인 만큼 잘 익은 수박에 더 잘 보이는 법이니까요.
덩달아 도마에 오른 수박도 있습니다. ‘공동과’ 수박은 쉽게 설명하면 그냥 과숙된 수박입니다. 수확 시기를 놓치거나 크기가 너무 커진 수박인데, 바이러스와는 무관합니다. 너무 익어서 속이 ‘쪼개진’ 것이니 안심하고 드셔도 됩니다.
사진= 공동과 수박 /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바이러스에 감염된 수박을 먹으면 설사를 한다’는 말은 일부 맞는 말입니다. CGMMV 수박은 먹어서도 안 되고 먹으면 배탈이 나기도 쉽습니다. 하지만 이 바이러스는 사람에게 직접적인 해를 끼치는 동물바이러스가 아닌 식물바이러스이기 때문에 이 바이러스 자체가 복통을 직접 일으킨다는 주장은 사실과 조금 어긋납니다.
사진 출처= 트위터 캡쳐
다만 바이러스가 수박의 상태를 악화시키고, 너무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이렇게 부패된 수박을 섭취하면 배탈이 나서 설사를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게 아니라면 그냥 많이 먹어서 설사를 하는 거니 그만 먹는 것이 좋습니다)
출처= 온라인커뮤니티
이밖에도 이번 ‘수박 바이러스 사태’와 함께 이슈가 됐던 수박이 있습니다. 겉 표면에 기하학적인 무늬가 새겨진 수박 사진인데, 이 또한 네티즌들 사이에서 합성 논란이 이어졌습니다. 자연적으로 생겼다고 하기엔 너무나도 반듯반듯한 무늬 때문인 것 같은데, 이 사진도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이는 CGMMV가 아닌 WMV의 증상이며, 비슷하면서도 다른 두 바이러스 중 농가에 큰 피해를 입히는 것은 WMV입니다.
많은 네티즌들이 ‘이제 앞으로 마트에서 어떻게 맘 놓고 수박을 사냐’며 비통한 심경을 드러내기도 했는데, 걱정할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CGMMV에 걸린 수박은 육안으로 쉽게 식별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CGMMV 수박은 잎사귀부터 눈에 띄는 증상을 보입니다. 색과 모양이 변하며 정상적인 잎사귀와 다른 모습을 띠는데, 출하 전에 농가에선 이런 잎사귀를 가진 수박을 쉽게 제거할 수 있습니다.
사진= 네이버 캡쳐
만약의 경우 외형으로 판단이 안 된다 하더라도 농진청에서 각 농가에 배급한 ‘식물바이러스 진단키트’로 확인이 가능합니다. 이 키트 덕분에 농가에서는 큰 피해 방지에 큰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2013년 충북 진천군에서 CGMMV 진단 키트를 활용해 오이 시설 하우스 내 바이러스병을 조기 진단으로 예방한 결과 약 1800만 원의 피해 절감 효과를 누렸다는 농진청의 보고서도 있습니다. 이쯤 되면 CGMMV에 걸린 수박을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는 시스템에 감탄이 나옵니다.
정 박사는 “멀쩡한 수박에 너무 겁을 낼 필요는 없다”며 “수박을 잘랐을 때 핏빛이고 조직이 물컹하면 피하는 것이 좋다. 좋은 수박은 선홍색의 단단한 과육”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결국 ‘수박 바이러스’가 허무맹랑한 소설은 아니었지만, 네티즌들 사이에서 여러 번 확대 재생산되는 과정에서 이같은 괴소문이 탄생했습니다. 무더운 여름에 ‘수원한 수박’을 먹지 못한다며 슬퍼했던 네티즌들께 이 글을 바칩니다. 아울러 수박을 재배하는 농가들에 피해가 가는 안타까운 일은 없길 바랍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