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하늘소, 최근 고온다습한 기후 탓...도심지 나무, 네온사인 영향도 ”
사진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지난 21일부터 온라인의 키워드는 ‘도봉구’ ‘강북구’ ‘벌레’ ‘하늘소’였습니다. 포털사이트의 지식검색과 온라인 커뮤니티,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는 “벌레가 도시를 습격하고 있다”는 내용의 글들이 올라왔습니다. 글에 따르면 하늘에서 벌레가 비처럼 떨어지고 우산을 쓰고다녀야할 정도라고 합니다.
네티즌들은 이 벌레를 ‘미끈이하늘소’라고 불렀습니다. 글에 따르면 시민들의 불청객 취급을 받는 이 곤충은 서울 도봉구와 강북구를 중심으로 활개를 치고 다녔습니다. 하늘을 날라다니고, 죽어있고 기어다니고 짝짓기도 하고…. 크기는 성인 주먹만한데 수백마리가 출몰해 까치발을 들고 피해다녀야 할 정도라는 글이 많았습니다.
사진 출처= 트위터
네티즌들은 이에 “바퀴벌레 닮았다” “찍찍 소리도 낸다”며 불쾌감을 드러냈고, “소나무와 잣나무에 전염병을 옮긴다”며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 끔찍한 참사의 원인을 ‘지구 온난화’ ‘이상기온’으로 돌렸습니다.
이 생물의 이름은 ‘하늘소’입니다. 하늘에서 떨어져서 하늘소일까요? 미끈이하늘소는 예전에 불리던 이름이고 지금 정식 명칭은 하늘소입니다. 김태우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 연구원은 하늘소가 참나무 속을 파 먹는 산림해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도봉구에는 도봉산이 있고, 강북구에는 북한산이 있는데, 하늘소는 도봉산과 북한산에서 넘어왔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북한산국립공원에 위치한 성불사와 지하철 수유역까지의 직선 거리는 총 3.79km입니다. 건장한 성인이 걸어도 1시간이 걸리는 이 곳을 하늘소들은 어떤 이유에서 날아갔을까요.
홍성철 환경부 국립과학연구원 지구환경연구과 연구원은 하늘소의 ‘도시 내 먹이와 서식지의 최적화’를 이유로 꼽았습니다. 홍 연구원에 따르면 천공성 해충으로 분류되는 하늘소는 느티나무, 단풍나무, 참나무 등에 구멍을 내고 당분을 빨아먹으며 기생합니다. 그리고 이 나무들은 도심 가로수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또, 올해 유달리 폭염이 빨리 찾아왔고 이례적인 다습 현상으로 하늘소의 번식 조건이 잘 맞춰졌습니다. 결국 먹이가 풍부하고 화끈한 도심은 하늘소가 자리잡고 성장할 수 있는 최적의 ‘핫플레이스’가 된 셈이죠. 게다가 벌레들이 좋아하는 ‘불빛’과 ‘네온사인’이 화려한 도시는 그야말로 벌레들의 천국입니다.
홍 연구원에 따르면 하늘소의 주요 활동시기는 6~8월입니다. 덥고 습한 여름에 주로 번식활동을 하는 셈인데, 이런 반갑지 않은 현상이 짧게는 2년에서 길게는 3~4년 주기로 반복됩니다. 하늘소는 알을 낳고, 그 알은 2년 후 성충이 되는데 성충이 된 하늘소가 도시에 또 찾아오지 않으리란 법은 없습니다.
도시로 출몰한 하늘소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안타깝게도(?) 하늘소들은 나무가 없으면 살기 어렵습니다. 도시에서 가로수를 만난 운 좋은 하늘소들이라면 모르겠지만, 위 사진에서 보다시피 도로나 인형뽑기집으로 들어간 하늘소들은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됩니다.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사진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일부 네티즌들은 이 하늘소들이 ‘전염병을 옮긴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질병의 매개체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친하게(?) 지내서도 안 됩니다. 크기가 크고 흉측하게 생긴 모습은 차치하더라도, 강한 턱으로 사람의 손을 물어 해를 입힐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자동차 바퀴가 밟고 지나간 하늘소 몸에서 연가시(기생충의 한 종류)가 발견됐다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앞서의 김 연구관은 “연가시인지 다른 기생충인지 구분하기 어렵다”며 “곤충이니 기생충이 있을 수도 있지만 내장일 수도 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했습니다. (또, 연가시가 나왔다고 해도 인간은 연가시의 숙주가 될 수 없으니 무시해도 됩니다)
‘따뜻한 곳 찾아 번식하겠다는데 왜 유난이냐’라는 입장도 곤란합니다. 홍 연구관에 따르면 ‘소나무 재선충’은 ‘솔수염하늘소’에 의해서, ‘참나무시들음병’은 ‘광릉긴나무좀’에 따른 대표적인 산림 피해입니다. 결국 기온상승에 의해 천공성해충들이 산림에 기생해 병을 만들고 수목 스트레스로 이어지게되는 셈이죠.
홍 연구관은 “결국 천공성해충류는 나무의 수액을 빨아먹어 목재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영양분을 빨아먹는다”며 “(이를 방치하면) 나무가 고사할 수 있다. 방제작업이 필요하다”라고 해결책을 제시했습니다. 강북구청 공원녹지과도 서둘러 가로수와 공원을 중심으로 방역작업에 나섰다고 밝혔습니다.
천연기념물도 아니고 멸종위기종도 아니고 사람들에게 병을 옮기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만약 채집(?)했다면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집에서 사육하는 것보단 인근 산에 방생하는 방법을 추천합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