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대디·마미 헌신적인 뒷바라지…대표팀에 뽑히면 환상적인 혜택도
이번 US여자오픈에 출전, 19위로 대회를 마쳤던 베테랑 크리스티 커(통산 19승)는 2015년 8월 한국 선수들을 향해 “하루에 10시간씩 훈련하는 기계들”이라고 비난한 적이 있었다. 그런 그가 이번 대회를 마치고선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에선 골프 아니면 공부”이라며 골프에 집중된 한국의 상황을 거론했고, 미국 골프가 US여자오픈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희망이 무엇이냐고 묻자, “내가 아이를 많이 낳아야 한다”는 답을 내놓기도 했다.
일본도 한국 여자골프를 향한 부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 젊은 선수들의 성장세를 주목한다. 이번 US여자오픈 10위 안에 든 8명의 한국 선수들 중 30대 이상의 선수는 한 명도 없었다. 2위인 최혜진이 만 17세의 나이였고, 8명 중 25세 이하는 4명이다.
제72회 US여자오픈 골프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박성현. 사진=LPGA 페이스북
일본의 한 언론에서는 미국뿐만 아니라 이미 일본도 이보미, 신지애, 안신애, 김하늘 등의 한국 선수들이 우승을 독식하는 상황을 주목했고, 최근 일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안신애의 뒤만 쫓지 말고 선수 육성에 더욱 힘을 써야 한다고 꼬집기도 했다. 한국은 세계 랭킹 30위 안에 13명의 선수들이 포함됐지만 일본은 노무라 하루(어머니가 한국인)가 21위를 차지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한국 여자골프는 왜 강해진 걸까. 아무리 많은 선수들이 배출된다고 해도 미국보다는 인프라 면에서 비교도 안 될 정도이다. LPGA에서도 그걸 잘 알고 있지만 해마다 우승자가 바뀌고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젊은 선수들이 LPGA로 넘어와서 곧장 우승을 차지하는(박성현의 경우처럼) 일들은 ‘도대체 한국 여자골프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 무엇인가가 있는 게 아니냐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 KLPGA의 치열한 경쟁
LPGA 투어에서 활약 중인 한국 선수들의 면면을 보면 KLPGA투어의 약진이 눈에 띈다. US여자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한 박성현을 비롯해 허미정과 유소연, 이정은6, 김세영, 이미림 등 ‘톱10’에 든 선수들은 모두 KLPGA투어를 거쳤거나 현재 뛰고 있는 선수들이다. 미국 골프장에 대한 경험과 정보가 부족하고 장거리 이동과 시차 등으로 불리한 여건에서 투어에 출전했음에도 좋은 성적을 냈다는 건 그만큼 한국 선수들의 기량이 뛰어나다는 방증인 것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참가하는 데 의의를 뒀던 선수들이 지금은 우승에 도전하는 현상도 변화된 모습이다.
LPGA에서 활약 중인 선수의 코치를 맡고 있는 A 씨는 “미국에 와 보면 한국 선수들이 얼마나 대단한 성적을 내고 있는지 확연히 느낄 수 있다”면서 “LPGA에 영어 외에 한국어도 공식 언어로 지정돼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한국 선수들의 활약이 대단하다. 그 배경은 KLPGA의 힘이다. 한국에서 열리는 대회가 워낙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LPGA 투어에 막 데뷔한 선수들도 좋은 기량을 선보이며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다. 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 안 나온다”고 설명했다.
US여자오픈에서 초반에 선두권을 형성했던 ‘이정은6’는 지난 4월 롯데렌터카여자오픈에서 프로 첫 우승을 거둔 바 있다. KLPGA에 정은이란 이름이 무려 6명이나 있어 ‘이정은6’로 불리는 그는 처음 출전한 US여자오픈에서 공동 5위에 오르며 상금을 2억 원 가까이 챙겼다. 더 이상 LPGA는 경험하는 대회가 아닌 것이다. 이번 대회에서 신데렐라로 떠오른 최혜진도 지난 2일 끝난 초정탄산수 용평리조트오픈에서 프로 대회 첫 우승을 차지한 후 바로 US여자오픈에 출전, 2위에 올랐다.
# 부모의 헌신과 노력
‘골프 대디’ ‘골프 마미’는 한국 여자골프를 대변하는 수식어이다. 투어를 뛰는 대부분의 선수들이 부모의 헌신적인 뒷바라지와 물심양면의 지원 끝에 스타플레이어로 탄생했다.
부모들이 골프에 소질을 보이는 자식에게 ‘올인’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가능성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다. 박세리, 김미현, 박지은 세대를 넘어 신지애, 유소연, 김효주, 전인지 등이 모두 부모의 열정 끝에 세계무대에서 재능을 드러냈다. 한국계 리디아 고나 미셸 위도 골프를 배운 환경은 한국과 다르지만 부모한테 물려받은 유전적인 요소가 중요했다. 그건 한국인이란 사실이다.
최혜진과 아버지 최길호 씨
이런 부모들의 적극적인 뒷바라지는 10~16세 사이의 주니어 선수들이 해마다 20개 대회를 소화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고, 프로 데뷔 후에도 국제 경쟁력을 갖춘 유망주들이 쉼 없이 배출되고 있다. 전 세계에서 3부 투어를 운영하는 나라는 한국 여자골프밖에 없다.
# 전폭적인 지원, 대표팀 시스템
골프 국가대표 시스템은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만들어졌다. 박세리, 김미현, 한희원, 장정, 신지애, 장하나, 김세영, 이미림, 최나연, 전인지, 김효주 등 LPGA 투어에서 눈부신 성과를 올린 선수들은 모두 국가대표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대한골프협회가 운영하는 대표팀 시스템은 한국 여자골프를 세계 최강으로 이끈 숨은 주역이다. 현재 대표팀과 상비군, 주니어 상비군으로 운영 중인 대표팀에는 2명, 상비군에는 5명의 코치가 선수들을 지도한다. US여자오픈에서 2위에 오른 최혜진은 현역 국가대표 신분으로 출전한 터라 대회 내내 ‘KOREA’가 새겨진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뛰었다.
대표팀 선수들은 협회로부터 장비와 의류, 용품을 지원받고 훈련 기간 동안의 숙식비, 골프장 그린피도 무료다. 대표팀 훈련 동안에는 수당도 지급하기 때문에 부모 입장에선 경제적 부담 없이 혜택을 누리게 된다. 무엇보다 최고 수준의 코치들로부터 지도를 받는다는 사실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4년 동안 국가대표로 활약한 최혜진은 해마다 1, 2월이면 해외 전지훈련을 떠났고, 호주여자오픈, 뉴질랜드여자오픈 등 오픈 대회와 지역 대회에 출전하면서 경험을 쌓았다. 국가대표는 포인트 순위에 따라 우선 선발하고 남은 자리는 선발전을 통해 보충한다. 많은 혜택이 주어지기 때문에 대표팀 선발전도 치열한 경쟁이 펼쳐진다.
대회가 끝나면 곧장 다음 대회장으로 이동하거나 대회가 없을 때도 골프채를 손에 놓지 않고 사는 한국 선수들은 여유 있게 투어 생활을 즐기는 외국 선수들의 생활 패턴과 차이가 있다. 행여 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도 그조차 훈련으로 채우는 게 한국 선수들. 어릴 때부터 그런 시스템에서 골프를 해왔기 때문에 습관처럼 훈련을 이어가는 것이다. 한국 선수들의 빼어난 성적을 두고 “골프하는 기계”로 폄하한 LPGA 선수의 지적이 귓가에 맴돌지만 한국 선수들은 기계가 아닌 인간으로 골프를 친다. 엄청난 경쟁과 그걸 이겨내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말이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여고생 골퍼’ 최혜진 주가 급등…벌써 롯데서 러브콜 소문 US여자오픈은 박성현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는데 인기는 최혜진(18·부산 학산여고 3)이 온전히 누리고 있다. 18일 새벽 귀국한 최혜진의 모습은 말 그대로 ‘금의환향’이었다. 모든 방송과 언론에서 최혜진의 일거수일투족을 좇았고, 9월 프로 전향을 앞둔 그에게 롯데그룹이 메인 스폰서로 나설 계획이란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최혜진의 매니지먼트를 맡고 있는 곳은 김효주, 이보미, 이소영, 이다연, 김지은 등이 소속 선수로 뛰고 있는 YG스포츠다. 최혜진의 메인 스폰서로 롯데가 거론된 배경에는 김효주의 영향이 크다. YG스포츠는 5년 전 김효주를 영입한 후 2014년 LPGA 투어 진출을 앞두고 롯데와 5년간 65억 원의 초대형 계약을 성사시켰다. 롯데는 최근 골프대회 및 여자선수 후원에 적극적이다. 롯데는 LPGA투어 롯데챔피언십을 비롯해 KLPGA투어 롯데렌터카여자오픈, 롯데 칸타타여자오픈을 개최하면서 김효주를 포함해 6명의 여자선수를 후원하고 있다. ‘여고생 골퍼’ 최혜진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가운데, 9월 프로 전향을 앞둔 그에게 롯데그룹이 메인 스폰서로 나설 계획이란 얘기가 나오고 있다. 최혜진은 US여자오픈 이전부터 골프계의 ‘블루칩’으로 관심을 모았다. 기업마다 최혜진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계산기를 두드리다 KLPGA 첫 우승에 이어 US여자오픈 준우승을 거두는 모습에 모두 최혜진 잡기에 불이 붙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골프 매니지먼트사로 유명한 B 사의 한 관계자는 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매니지먼트사들도 최혜진을 잡으려고 혈안이 됐었다”면서 “김효주, 박성현을 능가하는 유망주의 탄생을 앞두고 저마다 최혜진과 계약하려고 아버지에게 연락을 취한 것으로 알고 있다. 결국 최혜진은 YG스포츠와 손을 잡았지만 지금도 최혜진을 잡지 못해 가슴을 치고 후회하는 회사들이 굉장히 많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YG스포츠의 한 관계자는 전화통화에서 최혜진과 계약을 맺은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최혜진을 잡기 어려웠던 건 사실이다. 고위층에서 움직였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잘 모르지만 누구나 최혜진을 탐냈고, 계약을 맺기 원했기에 굉장히 어려운 과정을 통해 우리 회사와 사인한 것으로 알고 있다. 김효주가 대표 선수로 자리 잡고 있고, 향후 스폰서 부분에서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인연을 맺을 수 있었다고 본다.” 그는 골프계의 소문처럼 나돌고 있는 최혜진과 롯데기업과의 계약에 “50 대 50의 상황”이라고 말했다. “US여자오픈 이후 최혜진의 주가가 하늘 높이 치솟는 중이다. 이전에는 우리가 기업에 부탁하는 입장이었다면 지금은 선택해서 결정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롯데그룹과의 계약 여부는 50 대 50이다. 중요한 문제라 우리도, 또 회사도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하려 노력 중이다. 현재 금융권, 통신사 등에서도 접촉을 해왔는데 최혜진 측과도 상의한 다음 정리를 할 것으로 보인다.” 김효주를 지원하고 있는 그는 최혜진의 장점을 묻자, “과감함, 침착함, 그리고 김효주보다 더 거리가 나가는 장타력”이라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최혜진이 2014년 김효주급의 계약을 맺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나 또 다른 매니지먼트사 관계자는 “최혜진의 인기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프로 데뷔도 하지 않은 아마추어 선수에게 이토록 뜨거운 관심을 보인다는 게 이례적인데 이런 상황들이 최혜진의 몸값을 올리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1999년 8월 23일생인 최혜진은 오는 9월 프로 전향을 앞두고 있다.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