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선수들 열악한 환경 안타까워 지원 결심”
윤수로 대한가라테연맹 회장. 윤 회장은 사진을 찍기에 앞서 “단복을 입어야 한다”며 흰 재킷을 꺼내 들었다.
[일요신문] 공수도라고도 불리는 무술 가라테는 우리나라에서 입지가 좁다. 전통 무술인 태권도는 물론 유도, 합기도, 우슈 등 해외에서 넘어온 무술과도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저변이 넓지 않다. 이에 더해 대한공수도연맹은 수년간 표류를 거듭해왔다. 전직 회장의 횡령 혐의로 대한체육회 관리 단체로 지정됐고, 지난해 9월에는 결국 체육회에서 제명되기에 이르렀다. 가라테가 2020 도쿄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상황에서 컨트롤 타워의 부재는 많은 이들의 우려를 낳았다.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대한민국 가라테는 재기를 노리고 있다. 기업인 윤수로 아비콘헬스케어 회장을 중심으로 대한가라테연맹을 새롭게 결성해 희망의 싹을 틔우고 있다. <일요신문>은 윤 회장을 만나 가라테와의 인연, 앞으로의 계획 등을 들어봤다.
가라테연맹 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오랫동안 바둑계에 몸담아왔다. 과거 <바둑신문>을 운영하며 바둑에 발을 들인 그는 경기도바둑협회장 등을 거쳐 현재까지도 대한바둑협회 운영위원장을 역임하고 있다. 윤 회장은 “원래는 아마 5단인데 바둑계 공로를 인정받아 명예 7단 단증도 받았다”며 겸연쩍게 웃었다.
그렇다면 윤 회장은 어떻게 가라테와 인연을 맺게 됐을까. “바둑계를 돕다가 경기도협회장까지 맡게 되니 체육계 인사들을 만날 일이 많았다. 그러던 중 힘든 상황인 공수도연맹 사연을 듣게 됐다. 회장을 맡아달라는 제안도 받았다. 올림픽 메달이 걸려있는 종목인데 대회 참가조차 어려운 상황이라 안타까운 마음에 나서게 됐다. 명색이 국가대표인데 훈련도 못하고 있는 선수들이 안타까웠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의 존재도 그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윤 회장은 “여러 종목을 이끌며 체육 발전에 기여한 이 회장님을 존경한다. 나도 체육 발전을 위해 봉사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카누, 수영 등 다양한 종목을 이끈 경험이 있다.
그는 “처음엔 가라테라는 종목을 잘 몰랐고 좀 꺼려지는 마음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일본 무술’이라는 선입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은 곧 달라졌다. “가라테는 발상지가 일본 오키나와다. 그곳에 있던 류큐왕국 사람들이 본토로부터 침략에 대응하려고 익힌 무술이다. 일종의 한의 정서가 서려있다. 역사를 들여다보니 가라테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동아시아가라테선수권에서 찍은 북한선수들과의 기념사진. 두 번째 줄 왼쪽에서 네 번째가 윤수로 회장. 사진=대한가라테연맹
가라테연맹은 새 출발을 알리며 대한체육회에 준회원으로 가입도 했다. 체육회 회원 인정 여부는 체육단체에서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금전적 지원이 달려있기 때문이다. 결성 이후 현재까지 윤 회장이 홀로 연맹을 이끌어오다시피 했다. 인터뷰 자리에 동석한 이근수 연맹 사무총장은 “회장님의 지원으로 국제 대회에도 다녀오고 대표 선수들이 훈련을 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대한민국 가라테의 수장이 된 윤 회장은 요즘 ‘가라테 알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윤 회장은 “어느 자리를 가도 가라테팀 단복을 입고 다닌다. 가슴의 태극기를 보고 사람들이 ‘무슨 옷이냐’고 물으면 가라테 대표팀 단복이라고 설명해준다”며 웃었다.
가장 좋은 홍보 수단은 스타 탄생이다. 윤 회장도 이를 잘 인지하고 있다. 그는 “내년 아시안게임이나 2020 도쿄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이 나온다면 자연스레 홍보가 될 수 있다”며 “가능성이 보이는 선수가 있다. 나도 적극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우슈는 지난 2014 인천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며 국내에서 인기를 끌었다. 윤 회장도 우슈의 상황을 잘 인지하고 있다.
국가대표팀만을 바라보고 연맹을 운영할 수 없다. 가라테의 기반을 다지는 것도 중요하다. 윤 회장은 “사람들에게 가라테를 알리고 가라테 인구를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며 “어린 선수도 육성해야 한다. 학교 운동부를 만들고 전국체전 종목에 들어가는 것도 목표다. 그러면 실업팀도 생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윤 회장은 상황이 어렵지만 가라테연맹을 이끌며 보람도 느끼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는 지난 5월 마카오에서 열린 동아시아 대회를 꼽았다. “해외에 나가면 다들 애국자가 된다고 하지 않나. 충분히 지원을 해주지 못했는데도 선수들이 메달을 따내는 걸 보고 울컥했다. 또 북한 선수들과도 어울리는 모습을 보며 스포츠의 힘을 새삼 느끼기도 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