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안겨줘 등돌린 ‘박’ 달랜다
▲ 차기 원내대표에 친박계 인사들이 거론되고 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
‘친박(친 박근혜 전 대표) 원내대표론’은 지금의 홍준표 원내대표가 연말까지 2009년 예산안과 ‘MB(이명박 대통령)표 개혁법안’ 국회 처리를 매듭지은 후 용퇴할 것이란 예상을 전제로 나오고 있다. 홍 원내대표의 임기는 내년 5월 중순까지. 그러나 여권 내 돌아가는 분위기는 그가 ‘자의 반,타의 반’으로 임기를 채우지 못할 것이란 것이 정설로 굳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홍 원내대표는 지난 5월 말 임기를 시작한 이후 여러모로 172석 ‘공룡 여당’의 원내 사령탑으론 한계를 드러냈다는 당내의 평가를 받아 왔다. “정치권에 들어와서 12년 동안 ‘비정규직’으로만 있다가 처음 ‘정규직’이 됐다”며 감회에 젖었던 것도 잠시,18대 국회 원 구성 협상과 9월 중순 추경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판단 착오와 ‘어이없는 실수’로 사퇴를 요구받는 등 가시밭길을 걸어 왔던 그다.
홍 원내대표가 MB의 의중은 아랑곳하지 않고 틈만 나면 ‘여권 대개편’을 주장해 왔던 것도 그의 향후 거취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당장 그가 다음 개각에서 법무부 장관으로 입각하고 싶어 한다는 분석이 나돌았는가 하면 “본인의 주장대로 개편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라도 홍 원내대표가 여당 원내사령탑 자리를 내놔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관심을 모으는 것은 이처럼 홍 원내대표의 용퇴를 바탕으로 한 ‘친박 원내대표론’에 주류인 MB계가 적극적이란 점이다. 특히 박희태 대표와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 등 당내 온건파를 중심으로 이들과 비슷한 ‘코드’인 정정길 대통령실장과 맹형규 정무수석,박형준 홍보기획관 등 청와대 핵심인사들이 여기에 가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표와 이 의원은 일찍부터 박근혜계를 실질적으로 포용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 온 인물들이다. 실제 박 대표의 경우 지난 7월 중순 당직 인선에서 박근혜계인 J 의원을 사무총장에 임명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했다가 이재오계의 반발로 실패한 전력이 있다.
이 의원도 최근 박근혜계와의 협력관계 구축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주변에선 그가 박근혜계 좌장인 김무성 의원과 지난 10월 말 회동한 것을 출발점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 의원은 특히 MB정권 핵심 중 유일하게 박근혜 전 대표와 ‘말이 통하는 사이’로 알려져 있어 막후에서 ‘친박 포용론’에 힘을 실어줄 적임자로 평가받고 있다.
청와대 핵심인사들이 최근 박근혜계 의원들과 잦은 회동을 갖고 있는 것도 ‘박근혜계 중용’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정 실장과 맹 수석, 박 기획관 등은 이달 들어 유기준 한선교 현기환 이정현 이진복 의원 등 박근혜계 초·재선들과 만찬을 함께했다. 당사자들은 대화내용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고 있지만 최근 상황을 감안할 때 여권 개편의 방향에 대한 박근혜계의 희망이 전달됐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포스트 홍준표’를 박근혜계가 맡아야 한다는 주장의 배경에 대해 MB계 한 재선 의원은 “내년은 선거에 신경 쓰지 않고 MB가 국정에 전념할 수 있는 유일한 해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당이 안정돼야 하고, 특히 박근혜계의 협력이 관건적 중요성을 갖는다”며 “만약 지금처럼 서로 등 돌린 상태가 계속되다가 내년 4월 재·보선에서 참패하면 MB 정권은 치명타를 입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차기 원내대표를 놓고 MB계와 박근혜계가 격돌하는 상황을 상상해보라. 그러면 당이 완전히 결딴나게 된다.(MB계 내에서) ‘친박 원내대표론’이 나오는 것은 이러한 이유다”라고 밝혔다.
▲ 김무성 의원. | ||
문제는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이재오계가 반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향후 여권 개편의 방향을 ‘MB 친정체제’ 구축으로 설정한 이재오계로서는 박근혜계에 원내사령탑을 맡기겠다는 구상을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 특히 이재오 전 최고위원과 가까운 4선의 정의화 의원이 이미 차기 원내대표를 염두에 두고 의욕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박근혜계는 ‘친박 원내대표론’에 대해 언급은 자제하고 있지만 긍정적인 반응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한 핵심 중진은 “계파 갈등 해소는 ‘탕평 인사’로 푸는 것이 정도다. 박 전 대표도 줄곧 그런 생각을 직·간접적으로 밝히지 않았느냐”며 “지금처럼 대표와 원내대표, 정책위 의장, 사무총장을 MB계가 독식하고 있는 구조에선 역할을 하려야 할 공간이 없다.MB계의 움직임을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그쪽에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 자체로도 바람직한 현상으로 본다”고 말했다.
다른 중진도 “어차피 ‘박근혜 총리론’이 ‘구두선’으로 끝날 것이라면 핵심 당직부터 하나둘 확보해 가는 것이 필요하다”며 “원내대표 문제가 잘 풀리면 다음 개각에서도 충분히 기대할 수 있는 것 아니냐.그렇게 나가다 보면 MB와 박 전 대표 간에 신뢰도 생길 것이고 나중엔 박 전 대표가 (총리로) 전면에 나서 MB를 도와줄 때가 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박근혜계에선 3선의 서병수 국회 기획재정위원장, 최경환 당 수석정조위원장(재선) 등의 경제부처 입각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다른 한편으론 비중이나 선수, 정치력을 기준으로 차기 원내대표 후보군이 이미 물밑에서 거론되고 있다. 가장 유력한 후보론 김무성 의원이 꼽힌다.4선에 계파의 좌장급 중진인 데다 과거 원내수석부총무를 지낸 경험도 있어 여야 관계를 조율하기에도 적임이란 평가가 나온다.2006년 1월엔 이재오 전 최고위원과,7월엔 김형오 현 국회의장과 원내대표 경선에서 맞붙어 패배한 전력도 이번에는 도움이 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김 의원은 이재오계의 ‘기피대상 1호’인 데다 18대 총선 직전 탈당했다 복당한 전력이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 다만 MB계 내에서 “박근혜계에 원내대표를 넘겨 줄 것이라면 장악력이 있는 사람이 맡는 것이 낫다”는 여론도 있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박근혜계 내의 사정도 김 의원 이외의 대안을 찾기가 어렵다. 같은 선수(4선)에 박종근 이경재 이해봉 의원이 있긴 하지만 모두 60대 후반 또는 70대의 연령적 핸디캡이 있는 데다 김 의원만큼 계파를 대표할 만한 역량이 없기 때문이다.
이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