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아, 이제 좀 비켜주소…’
▲ 이명박 대통령은 그동안 국정에서 소외됐던 소장파들을 적극 등용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지난 3월 새만금 방조제를 방문할 당시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 ||
이러한 이 대통령의 위기의식은 여권의 대대적 쇄신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그가 준비하는 특단 카드의 핵심은 ‘올드 패션’에서 ‘뉴 앤 영 패션’으로 국정 운영 주체의 핵심을 바꾸는 것이다. 여권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최근 일련의 ‘노건평 이펙트’로 여권 내부의 권력 운용 구도가 ‘형님’ 이상득 의원을 중심으로 한 원로들의 ‘관리형’에서 이제는 대선 캠프의 최전선에서 맹활약했던 젊은 소장파들을 중심으로 한 ‘정면 돌파형’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냐는 게 핵심이다. 이 대통령은 건국 사상 최악의 경제위기가 닥칠 것으로 전망되는 내년 초 일생일대의 전투에서 과연 어떤 칼을 뽑게 될까.
최근 청와대는 경제위기 상황을 감안해 공무원들에게 ‘골프 및 해외출장 자제’에 관한 특별 지시를 내린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청와대 민정팀은 수도권 인근을 중심으로 공무원들의 골프 단속을 위한 감찰활동을 강화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청와대는 환율 상승에 따른 출장비 상승 압박으로 불요불급한 사안이 아니면 해외출장을 자제하라는 지시도 내렸다고 한다. 최근에는 청와대의 출장 자제령에 보조를 맞춰 국정원이 직접 공무원들의 해외출장을 모니터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에 공기업 일각에서는 “눈치가 너무 보여서 업무적으로 나가야 할 일도 편하게 못 나가는 경우가 많다”는 불만의 목소리는 들린다. 이런 골프·해외출장 자제령은 이 대통령이 G20(주요 20개국) 및 APEC 정상회의 참석차 해외를 순방하는 사이 발동이 됐지만, 최근의 경제위기 심화에 따라 내년 초까지 계속될 것으로 전해져 관가가 더욱 긴장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관가가 이렇게 바짝 얼어붙은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이명박 대통령 때문이다. 최근 이 대통령을 만난 한 의원은 “이 대통령은 최근 자주 ‘견위수명’(見危授命:위기를 만나면 목숨을 던진다)이라는 말을 한다. 자신은 이처럼 배수의 진을 친 장수처럼 절박한 심정인데 참모들이 자신의 마음처럼 움직여 주지 않는 데 대해 답답해하고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이런 답답한 심정은 향후 국정 쇄신의 폭을 가늠해볼 수 있는 바로미터다. 특히 이 대통령은 청와대 참모뿐만 아니라 내각 장관들에게도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최근 한나라당의 일부 의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정기국회 국정감사 때 일부 장관들의 대응은 수준 이하더라”라는 한 의원의 말을 듣고 “그 장관이 누구냐”며 큰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그 의원이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리자 이 대통령은 며칠 뒤 다른 채널을 통해 그 의원에게 끝까지 ‘문제의 장관’이 누구인지 알아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 이상득 의원(왼쪽), 최시중 방통위원장. | ||
그렇다면 이 대통령이 뽑아들 위기탈출 특단의 카드는 무엇일까. 정치권에선 “소장파의 전면배치를 통한 친정 체제의 구축”이 가장 현실적 대안이라고 본다.
청와대 사정을 잘 아는 앞서의 A 씨는 이에 대해 “지금까지 여권 권력 구도는 이상득 의원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을 정점으로 하는 관리형 체제였다. 이는 국정 경험이 없는 이명박 정권의 연착륙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집권 1년을 넘기면서 그 구도는 확연하게 달라질 것이다. 지금까지의 ‘올드 패션’이 ‘뉴 앤 영 패션’으로 탈바꿈할 것이다. ‘영 패션’의 핵심은 지난해 한나라당 경선과 대통령 선거 때 최전선에서 뛰었던 소장파들을 말한다. 이 대통령은 이들을 중용해 노건평 이펙트로 활동 공간 축소가 불가피해진 이상득 의원을 견제하는 동시에 젊은 피를 앞세워 늘어진 국정 수행력에 양력을 불어넣겠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으로서는 최근 깊어진 위기의식에다 청와대와 내각의 겉도는 현상, 여기에 ‘노건평 이펙트’에 따른 친·인척 관리의 필요성까지 겹쳐 여권의 권력 운용 구도에 변화를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긴 셈이다. 그리고 그 변화의 핵심은 소장파들을 과감하게 중용해 위기를 일사불란하게 돌파할 수 있는 동력을 찾자는 쪽으로 귀결된다.
친이(친 이명박 대통령) 직계인 조해진 의원은 최근 “필요하면 배지를 떼고서라도 이 대통령을 곁에서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친이 직계 소장파는 지난 한나라당 경선 때 이 대통령에게 거침없이 직언을 쏟아내던 경험이 있다는 점에서 현재의 ‘관리형 체제’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당시 캠프에서 활동했던 한 인사는 이에 대해 “그때는 이 대통령도 굉장히 열린 마음이었다. 그는 우연히 마주친 참모들을 자주 자신의 집무실로 데려가 허심탄회하고 자유스럽게 대화를 했다. 참모들은 현장의 목소리를 잘 들어주는 이 대통령 스타일을 좋아해 거침없이 직언을 쏟아냈다. 하지만 지금은 권력 시스템이 그럴 공간을 허락해주지 않는다. 이 대통령으로서도 그런 점이 매우 답답할 것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라도 예전에 우연히 마주쳤던 소장파 참모들을 이제는 자신의 곁에 두고 가감 없는 여론을 챙겨들으려고 할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최근 기자가 만난 대부분의 소장파 인사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 들어간 뒤부터 예전 대선 후보 시절의 열린 자세가 없어진 것 같아 안타깝다. 이제라도 이 대통령이 부르면 언제라도 달려가 예전 경선·대선 캠프에서 자유스럽게 토론하던 분위기를 다시 살려내고 싶다. 그리고 그 핵심은 바로 여론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그대로 따르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