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면피용 사퇴” 의혹 제기…본사 해외 이전설도 돌아
당시 재계에서는 하림그룹과 성주그룹이 김상조 호(號)의 타깃이 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하림그룹은 편법 승계 문제, 성주그룹은 협력업체에 대한 불공정거래 문제로 논란의 대상이 된 터다. 지난 19일 공정위는 하림그룹의 계열사 부당 지원 행위와 관련한 조사에 들어갔다. 성주그룹 역시 지난 6월 말부터 공정위의 조사를 받고 있다.
지난 3월 성주디앤디의 협력업체 맨콜렉션·신한인비테이션·SJY코리아·원진콜렉션, 4개 회사는 공정위에 성주디앤디를 신고했다. 성주디앤디는 패션브랜드 MCM을 생산·판매하는 회사로 성주그룹의 지주사 역할도 하고 있다. 협력업체들은 성주디앤디가 부당한 단가를 적용하고 부당 반품을 하는 등 불공정 거래행위를 저질렀다고 주장한다.
공정위의 조사가 임박하자 김성주 성주그룹 회장은 지난 6월 1일 성주디앤디 대표이사직에서 돌연 사퇴했다. 사퇴 당시 성주디앤디는 “국내 경영을 윤명상 공동대표에게 맡기고 김 회장은 글로벌 시장에 주력하기 위해 사퇴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공정위의 조사를 피하기 위해 사퇴한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공정위 관계자는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사건 당사자 혹은 이해관계자의 출석을 요청할 수 있다”며 “하지만 대부분 공문을 보낼 때 특정인의 이름을 지정하지 않고 대표이사 혹은 대리인의 출석을 요청하는 게 관례”라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 6월 27일 공정위는 김 회장을 소환하려고 했으나 대표 자리에서 사퇴해 공동대표였던 윤명상 대표만 소환했다.
김성주 성주그룹 회장.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성주디앤디 협력업체 관계자는 “지난 3월부터 5월 말까지 공정거래조정원의 조정을 거쳤으나 합의하지 못해 공정위로 사건이 넘어갔다”며 “김 회장이 사퇴한 시기를 놓고 보면 공정위의 조사와 관계가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토로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일단 윤 대표와 협력업체 측을 소환해 양측의 입장을 듣고 자료를 요청한 상태”라며 “자료를 검토하고 필요하다면 김 회장도 부를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성주그룹을 이끄는 사람은 윤명상 대표다. 지난 6월 27일 윤 대표는 MCM의 가방 ‘디어터 뮤닉 라이온 카모 나일론’ 시리즈를 출시했다. 지난 14일에는 MCM의 밀라백, 패트리샤백의 뉴컬러 라인을 선보이는 등 경영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성주디앤디 관계자는 “윤 대표는 이전에도 국내 업무를 담당해왔고 단독대표가 된 현재도 동일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며 “김 회장은 국내 경영에 관여하고 있지 않다”고 전했다.
그렇지만 성주그룹과 협력업체의 관계 개선은 보이지 않는다. 성주그룹의 대외적 이미지도 날이 갈수록 하락하고 있다. 성주그룹을 고발한 협력업체 중 하나인 SJY코리아는 지난해 말 부도로 문을 닫았고 다른 협력업체의 경영 상황도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성주디앤디 관계자는 “이번에 공정위 제소 업체 3곳 중 2곳이 여전히 거래를 하고 있다”며 “공정위 제소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이나 성주디앤디는 과거도 그러했고 지금도 협력업체와 상생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협력업체들의 주장은 다르다. 성주디앤디의 다른 협력업체 관계자는 “공정위 조사가 들어간 이후 성주디앤디에서 어떠한 연락도 받은 적이 없다”며 “우리와 상생하기 위한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고 전했다.
재계 일부에서는 협력업체와 관계 개선이 이뤄지려면 김성주 회장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김 회장은 대표직에서는 물러났지만 성주디앤디 지분 94.8%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재계 관계자는 “협력업체들과 관계를 개선하려면 꽤 많은 비용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지만 전문경영인 혼자 결정하는 경우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며 “나중에 일이 잘못됐을 때 전문경영인은 그에 대한 책임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김 회장은 현재 해외에 체류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김 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가깝게 지낸 소위 ‘친박’으로 알려졌다. 또 최순실 씨의 비밀 모임인 ‘팔선녀’의 멤버라는 의혹까지 받았다. 친박 인사에 갑질 논란까지 더해 김 회장이 국내에서 활동하기가 껄끄러웠을 것으로 해석된다. 그렇지만 협력업체와 갈등을 매듭짓지 않고 해외로 나가 무책임하다는 비난이 나온다.
김성주 회장은 친박 인사로 알려졌으며 팔선녀 멤버였다는 의혹까지 받았지만 김 회장은 팔선녀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연합뉴스
김 회장이 두 달 이상 부재하면서 여러 뒷소문까지 나온다. 김 회장이 해외에 머물면서 장기적으로 본사를 해외로 옮긴 후 승계 작업에 착수한다는 것. 그의 딸 김지혜 씨는 성주디앤디 글로벌 이커머스 팀장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이 지난 6월 16일 대한적십자사 총재 자리에서도 사퇴한 것도 공정위 조사를 피하는 동시에 해외 본사 이전 추진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성주디앤디 관계자는 “총재직 사임은 5월 말부터 결정했고 공정위 조사와 무관하다”며 “해외 본사 이전은 근거 없는 이야기”라고 전했다.
김 회장은 고 김수근 대성그룹 창업주의 딸로 명품업계에서 큰 존재감을 드러냈다. 2005년 인수한 독일 패션브랜드 MCM은 성주그룹을 대표하는 브랜드다. 그는 박근혜 정부 시절 대한적십자사 총재에 오르는 등 유명세를 타면서 여성 최고경영인(CEO)의 상징 같은 존재로도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 각종 논란으로 갑질의 대명사로 떠올랐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
‘위 아래로 귀 열고 개혁’ 김상조 위원장 취임 후 공정위 행보 지난 6월 13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 위원장이 취임했다. 김 위원장은 첫 작업으로 치킨업계 손보기에 나섰다. 앞서 BBQ, 교촌치킨 등 국내 유명 치킨 프랜차이즈들은 가격 인상을 예고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6월 16일 가맹사업법 위반 혐의로 BBQ 현장 조사에 착수했다. 이후 BBQ와 교촌치킨은 가격 인상 계획을 철회했고 심지어 BHC치킨은 가격을 인하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김 위원장의 하도급업체에 대한 갑질 기업 제재 행보도 주목받고 있다. 공정위가 최근 불공정 하도급거래와 관련해 조사를 벌인 곳은 성주그룹을 포함해 현대위아, 한일중공업, 대동공업, 화산건설 등이다. 공정위의 조사를 받은 현대위아는 “향후 부당하게 하도급 대금을 감액하거나 클레임 비용을 전가할 수 없도록 전자입찰시스템을 개선했다”며 “현재 정기적으로 시행 중인 공정거래 및 하도급법 교육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공정위가 개혁 행보를 보이자 공정위를 찾는 업체도 늘어나고 있다. 공정위에 따르면 2017년 상반기 조정 신청 접수 건수는 1377건으로 2016년 상반기(1157건)에 비해 19% 증가했다. 처리 건수 역시 1242건으로 지난해(971건) 대비 28% 증가했다. 공정위의 개혁 대상에 대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김 위원장은 지난 6월 23일 4대그룹(삼성·현대차·SK·LG)을 만나 정책을 논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재계와 소통을 통해 대기업집단이 사회와 시장이 기대하는 바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라며 “수급사업자·가맹점주·납품업체 등의 목소리도 지속적으로 청취할 것”이라고 전했다. [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