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을 짓 했나” “정신 이상한가” 심하다 심해
지난 19대 대통령선거가 있던 5월, A 씨(여)는 투표를 하고 지인과 호프집에 들어가자마자 묻지마 폭행을 당했다. 이미 술을 마시고 있던 일행 중 한 명이 “왜 쳐다보냐”며 유리 맥주잔으로 A 씨의 손과 머리를 가격한 것이었다. A 씨는 이때 머리를 다치고 손목 인대가 끊어지는 등 전치 6주 진단을 받았다. 가해자는 경찰 조사 이후 특수상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고,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그러나 A 씨는 지난 두 달 동안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폭행 이후 현장을 달아났던 가해자는 열흘 만에 병원에 나타나 합의를 요구했다. A 씨는 “폭행으로 전치 6주를 진단 받았고, 특수상해 혐의 기소에도 피의자가 불구속 상태여서 신변에 위협을 느꼈고, 수사 도중 도주할까봐 불안했다”며 “지금 재판이 진행되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행주도 짤 수 없을 정도로 회복이 안되고 있고, 일도 두 달째 나가지 못하고 있어 생계 유지가 어렵다”라고 말했다.
A 씨는 가장 믿고 의지했던 경찰에게 오히려 추궁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A 씨는 “형사가 대뜸 나에게 한 말은 ‘(가해자가) 아무 이유 없이 때렸겠냐’는 것이었다. 또 가리봉 아가씨가 아니냐고도 물었다”며 “나는 가해자와 그 일당을 처음 보는 사람이라 묻지마 폭행이라고 주장했지만 이조차 의심받았다”고 주장했다.
또한 A 씨에 따르면 사건 담당 서울지방경찰청 소속 형사가 “사건이 얼마나 많은데 이것 때문에 내가 병원까지 와야 하냐”며 짜증을 냈고, A 씨가 폭행으로 인한 충격으로 진술을 잘 못하면 ‘말을 못 알아듣겠다’며 추궁했다고 한다. 경찰 수사 이후 A 씨가 고소장이 접수됐는지 확인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을 때도 이 형사는 시종일관 반말로 응대했던 사실도 확인됐다.
A 씨는 “가해자가 어떻게 됐는지 궁금했는데 아무 연락을 받지 못해서 직접 연락을 했다. 고소장과 진술서의 개념을 혼동하자 형사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며 윽박질렀고, ‘아이씨’라는 말까지 서슴없이 해서 경찰이 이래도 되나 싶어 깜짝 놀랐다”며 “평소에는 위기 상황에서 경찰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일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담당 형사는 “왜 맞았는지에 대한 원인을 수사해야 했기 때문에 물어봤던 것뿐이었고 호프집에 들어갈 때 시끄럽게 떠들어서 유리 맥주잔으로 때린 것이라는 가해자 측 진술을 확보했다”며 “수사 이후 전화 통화 당시에는 서로 친해져서 반말을 했던 것 같다. 피해자가 보상 심리가 있을 수 있고 경찰 수사에 100% 만족을 할 수 없으니 불만을 가질 수 있는 부분이고 이에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 관계자는 “피해자 보호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수사했다”면서 “경찰이 피해 상황을 제대로 알아야 하기 때문에 피해자에게 당시 상황에 대해 여러 번 물어봤지만 어떻게 맞았는지조차 제대로 말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이어 “말을 잘 하지 않아 조금 지능이 낮은 분이라고 생각했고, 조사를 진행해야 하는 답답한 마음에 추궁을 하긴 했던 것 같다”면서도 “수사 이후에는 고맙다고 인사까지 하더니 지금 와서 경찰에게 피해를 당했다고 말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피해자들도 있었다. B 씨(여)는 채팅 앱을 통해 만난 이 아무개 씨(24)로부터 40여 일 감금을 당하며 금전적인 약취를 당하고 성폭행의 피해까지 입었다. 이 씨는 B 씨에게 “채팅 앱 사용으로 현상 수배 대상이 됐고, 검거되지 않도록 도와주겠다”며 접근했다. 이 씨는 이후 B 씨의 사촌언니인 C 씨도 똑같은 방법으로 감금했고, 유사성행위 업소 출근을 강요하기까지 했다.
가해자가 검찰에 송치된 이후에도 피해자는 대출금 독촉에 시달리고 있다.
B 씨 역시 부천 소재 모텔에 감금돼 있다가 나오게 됐고 바로 부천 원미경찰서를 찾아갔다. 그러나 B 씨에 따르면 이번 조사관 역시 “어디 아프냐. 스무 살 넘은 성인이 어떻게 그런 사기에 넘어가냐”며 “여기선 찾을 수가 없으니 사건이 있었던 수원으로 가서 고소장을 접수하라”고 말했다. 다시 찾은 수원의 지구대에서도 ‘사기인지도 잘 모르겠다’고 응대했다.
탈출 직후 경찰서를 찾은 터라 휴대폰도 없던 B 씨는 C 씨 등 가족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연락을 하기 위해 인터넷을 쓰고 싶다고 했지만 경찰에게 “지구대 내에 인터넷 사용이 안된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B 씨는 “감금과 사기 등을 당한 것도 억울한데 정신병 걸린 사람 취급을 해서 상처를 받았다”며 “감금의 충격뿐만 아니라 경찰에게 그런 말을 듣고 나서 한동안 대인기피증으로 고생했고 잠을 잘 자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경찰에 따르면 경기남부경찰청 등에서 내부 감찰을 시작했는데 피해자들의 주장과 관련 경찰들의 진술이 다소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고 한다. 피해자들이 피해 상황에 대해 명확하게 이야기하지 않아 범죄 피해 가능성을 생각할 수 없어 사건 접수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가해자 이 씨는 B 씨와 C 씨를 상대로 5대 이상의 휴대폰을 불법으로 개통해 금전적 이득을 취했다. 또 이들 명의로 불법 대출을 받아 1000만 원 상담의 금전을 얻었다. 이 씨는 서울관악경찰서에서 검거된 이후 감금, 영리목적 약취 유인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이 씨의 재판은 진행 중이지만 피해자들에게는 여전히 불법 대출로 인한 독촉이 진행 중이며 피해 금액이 보전되기는 힘든 실정이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