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시장 선심 이벤트” vs “민간협력 사업일 뿐”
지난 7월 청주 지역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 물폭탄이 쏟아지며 피해가 속출한 가운데 서울시가 잠수교에 810t의 모래를 들여 인공 백사장 이벤트를 기획해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서울시
지난 7월 26일 서울시 한강사업본부는 한강 잠수교 차량을 통제하고 백사장과 워터 슬라이드를 설치해 ‘도심 속 휴양지’로 꾸민다고 밝혔다. 810톤 규모의 모래를 가져와 인공 백사장을 조성하고 선베드와 파라솔 60개를 각각 설치한다는 계획이다. 잠수교의 경사로를 이용해 150m 워터 슬라이드도 설치된다. 이 기간에 잠수교 교통은 전면 통제된다. 당초 이 행사는 지난 7월 28일부터 30일까지 3일 동안 열릴 예정이었으나 서울 지역에 발효된 호우 특보로 인해 오는 11일로 연기됐다.
국내에서 처음 시도되는 이 행사는 시민단체인 ‘서울산책’의 자부담으로 진행된다. 모래 해변 조성에 약 5억 원이 소요되는데 서울산책은 자부담 3000만~4000만 원, 티켓팅 1억 원, 기업 협찬 2억~3억 원으로 자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한강사업본부에 따르면 서울시의 대표적 여름페스티벌인 ‘한강몽땅 여름축제’에 서울산책이 잠수교 바캉스 아이디어를 제안했고 시가 협력하기로 결정하며 행사가 기획됐다.
하지만 일각에선 시민단체가 기업으로부터 억대 규모의 자금을 지원받고 이례적으로 교통까지 통제하는 행사를 진행하는 배경에 박원순 시장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냔 의혹이 일고 있다. 바로 박원순 시장과 서울산책 조경민 대표의 인연 때문이다. 조 대표는 지난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박원순 후보 캠프에 참여한 바 있다. 그는 또 서울시가 서울역 고가 공원화 사업의 민간 협력단체인 ‘고가산책단’의 대표도 역임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이헌승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박원순 시장이 캠프 인사 출신이 대표로 있는 서울산책에 일감을 몰아줬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당시 이 의원이 서울시에 받은 자료에 따르면, 서울산책은 서울역 및 서울역 고가와 관련된 용역 등 총 1억 6100여 만 원에 달하는 계약을 6건 체결했다. 이 가운데 5건은 수의계약 형태라고 이 의원은 주장했다.
실제 등기부등본을 살펴본 결과 2015년 5월 설립된 서울산책의 첫 목적 사업은 ‘서울역 고가 프로젝트 관련 사업’이다. 이밖에도 서울산책 홈페이지에 게재된 활동연혁에는 서울시와 관련된 활동이 8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의회 주찬식 자유한국당 의원은 서울산책이 서울시의 사주로 만들어진 ‘유령단체’라고 지적했다. 주 의원은 “지난해 시에서 서울역 고가사업을 서울산책이란 시민단체가 홍보한다기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서울산책 사무실을 직접 가본 적이 있다”며 “당시 문도 잠겨 있었고 임대료도 못내는 상황이라 서울시가 사주해서 만든 유령 민간단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단체가 5억 원이나 들여 잠수교에 인공 모래사장을 만드는 행사를 주관한다는 건 사실상 박원순 시장의 입김이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이번 행사가 내년 선거를 앞둔 포퓰리즘 성격이 짙은 선심성 이벤트라고 비판했다. 주 의원은 “잠수교 이벤트는 박 시장이 내년 지방선거를 대비해 표를 얻기 위한 졸속 이벤트”라며 “특히 박원순 시장 임기 동안엔 민간에 맡겨 운영하는 정책이 전임 시장들에 비해 월등히 많다. 이번 행사 역시 시민단체를 앞에 내세우고 반응이 안 좋으면 책임을 떠넘기려는 심산”이라고 말했다.
잠수교는 수위가 5.5m 이상이면 보행자 출입이 통제되고 6.2m 이상이면 차량 통행이 금지된다. 현재 지역마다 강수량 차이가 큰 국지성 호우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돼 여전히 불안한 상황이다.
안전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잠수교는 지난 1일 내린 비로 새벽 한때 수위가 4m까지 올라갔다 현재 평균 수위인 3m대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 7월 11일에는 서울지역에 내린 집중 호우로 잠수교가 잠겨 통행이 전면 통제됐다. 이날 새벽 잠수교는 평균 수위를 훌쩍 넘는 6.53m를 기록했다. 잠수교는 수위가 5.5m 이상이면 보행자 출입이 통제되고 6.2m 이상이면 차량 통행이 금지된다. 현재 지역마다 강수량 차이가 큰 국지성 호우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돼 여전히 불안한 상황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청년단체 관계자는 “이미 잠실에 인공 백사장을 만들어 운영 중이고 한강 수영장도 있는데 굳이 언제 잠길지 모르는 잠수교에서 이런 이벤트성 행사를 진행하는지 모르겠다”며 “연기를 했다고 하지만 언제 또 집중 호우가 내릴지 모르는데 너무 갑작스럽게 추진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서울시의회 의원은 “잠수교에 다니는 차량뿐만 아니라 그 일대 전체가 통행량이 굉장히 많은 구간인데 교통사고 위험이 적지 않을 것”이라며 “광고판 읽다가 사고난다고 광고판도 없애라는 판에 모래사장 바라보다 사고 안 난다는 보장도 없지 않나”고 말했다.
이 같은 지적에 서울산책은 문제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산책 관계자는 “서울산책은 한강사업본부와 한강홍수통제소 등과 함께 안전사고 매뉴얼을 만들어 놨다”며 “만약의 경우 보행자 통제와 철수를 위해 잡아놓은 기준점은 잠수교 수위가 4.5m에서 5m 사이에 달했을 때다. 수위가 올라갈 요소가 발생했다고 판단되면 당연히 철거를 하거나 행사를 취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현장 안전에 대한 부분도 전문안전인력을 24시간 배치해 놓는 등 계획을 세워 놨다”며 “행사 기간 동안 10만 명 정도가 잠수교를 찾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잠수교에 5000명 이상의 인원이 몰릴 경우엔 입구에서 인원통제를 해 일어날 수 있는 안전문제를 최소화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서울산책은 박원순 시장과 관련된 의혹에 대해서 한강사업본부와 한강몽땅축제와 연결된 민간협력사업일 뿐 서울시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민간협력사업은 각각의 사업이 갖고 있는 재미난 요소들을 기획해 한강몽땅이란 축제 안에 같이 묶어낸다”며 “그 속에 잠수교 바캉스도 있는 것이고 아이템 기획과 자금력에 대한 준비계획을 갖고 한강사업본부와 만나 진행된 사업이지 서울시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사업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도 서울산책이 잠수교 바캉스 주관 업체로 선정된 것에 대해 박원순 시장과 관계 없다고 밝혔다. 서울시에 따르면 시는 지난해 12월부터 인적네트워크를 통해 각종 행사를 주관할 협력사를 찾아 사전 모집을 했다. 그 과정에서 서울산책이 잠수교 바캉스 아이디어를 제안해 검토를 거친 뒤 선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오히려 서울산책은 이 같은 의혹에 대해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아무래도 서울에 연고지를 갖고 있는 단체다보니 박원순 시장과 연결된 것으로 비춰지는 것 같다”며 “실질적으론 국고 지원을 받지 않고 진행하는 사업이 대부분인데 사업 각각의 특성을 따져보지 않은 상황에서 서울시의 일감몰이처럼 비춰지는 것에 대해선 억울한 부분이 있다”고 전했다.
김상훈 기자 ksang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