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돌릴 뿐인데’ 인기 비결 아무도 몰라…“불안장애 해소”vs“집중력 저해” 이견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는 장난감 ‘피젯 스피너’가 아이들을 넘어 어른들까지 즐기는 키덜트 장난감으로 각광받고 있다.
‘피젯(fidget)’이란 ‘꼼지락거리다’ ‘가만히 못있다’ 혹은 ‘가만히 있지 못하는 사람’을 뜻한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피젯 스피너’는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는 장난감이다.
지금은 다양한 모양의 제품이 등장했지만 기본적으로 ‘피젯 스피너’는 바람개비 모양을 하고 있다. 보통 서너 개의 날개로 이뤄져 있으며, 중앙 부분에는 축이 되는 볼베어링이 있다. 플라스틱, 금속, 놋쇠, 티타늄, 구리, 알루미늄 등 재료도 다양하며, 디자인도 천차만별이다. 크기는 손바닥 위에 올려놓을 수 있을 정도로 보통 컵받침 크기다.
‘피젯 스피너’의 작동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그저 엄지와 중지로 가운데를 잡은 다음 검지로 날개를 퉁 튕긴 후 날개가 회전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전부다. 다만 다루는 솜씨나 제품 종류에 따라 회전 속도나 모양 등이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사용자마다 저마다의 개성을 뽐낼 수 있다.
팽이를 손으로 가지고 노는 것과 같으며, 보고 있으면 최면에 걸린 듯 묘하게 빨려 들거나 어지럼을 느끼기도 한다. 이처럼 단순한 장난감이건만 근래 들어 여기에 푹 빠진 사람들이 몰라보게 늘고 있다니 그 이유가 궁금해지는 것도 사실.
<뉴욕타임스>가 “피젯 스피너는 Z세대의 훌라후프다”라고 말한 것처럼 특히 미국의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 아이템으로 자리잡은 ‘피젯 스피너’는 최근 도널드 트럼프의 아들인 배런 트럼프(11)가 한 손에 ‘피젯 스피너’를 들고 에어포스원에서 내리는 모습이 포착되면서 더욱 화제가 됐다. 배런뿐만 아니라 트럼프의 손주인 아라벨라와 조지프 역시 ‘피젯 스피너’를 가지고 노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었다.
‘피젯 스피너’의 대박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던 것은 2016년 크리스마스 무렵이었다. <포브스>가 ‘피젯 스피너’를 가리켜 ‘2017년 머스트 해브 오피스 토이(2017년 꼭 사야 할 사무실 장난감)”라고 명명하면서 더욱 관심이 모아졌다. <포브스> 설명에 따르면 직장 내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데 더없이 효과적이라는 것이었다.
2017년 3월 즈음에는 유튜브와 레디트 등에 ‘피젯 스피너’ 후기 및 트릭 동영상이 대거 올라오기 시작했으며, 이에 따라 곧 학생들 사이에서도 유행하기 시작했다. 할리우드 셀럽들까지 인기에 가세하면서 ‘피젯 스피너’의 열풍은 그야말로 삽시간에 번져 나갔다.
이렇게 갑자기 주목을 받기 시작한 ‘피젯 스피너’의 인기 현상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구글에서는 4월부터 관련 제품의 검색 횟수가 급등했으며, 현재 아마존의 장난감 및 게임 분야에서는 상위 20개 베스트셀러 상품 가운데 17개가 ‘피젯 스피너’다. 게다가 한때 미 전역의 월마트를 비롯한 모든 상점에서는 품절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었다.
사정이 이러니 다양하게 변형된 제품들도 속속 등장했다. 가령 눈꽃이나 별 모양인 제품이나 무지개나 배트맨 마크가 나타나는 제품도 개발됐다. 또한 조명이 첨가돼서 화려함을 자랑하거나 특정 소리가 나는 제품도 등장했다. 심지어 블루투스 기능이 있는 제품도 있다. 가격은 2달러(약 2300원)부터 무려 1000달러(약 110만 원)까지 다양하지만 웬만한 제품은 5달러(약 5600원) 정도면 충분히 구입이 가능하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의 아들인 배런 트럼프가 한 손에 ‘피젯 스피너’를 들고 에어포스원에서 내리는 모습이 포착됐다.
그렇다면 ‘피젯 스피너’는 왜 이렇게 인기가 있는 걸까. 도대체 어떤 점이 남녀노소의 마음을 사로잡은 걸까. 이에 대해서는 사실 전문가들이나 학자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왜 이렇게 인기인지 그 이유에 대해서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는 제품 개발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스트레스 완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치료, 집중력 향상, 심리적 안정감, 자폐증 치료 등의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을 뿐이다. 가령 펜실베이니아에서 ‘러닝 익스프레스’를 운영하고 있는 사장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면 지루함이 날아가 창의적으로 생각하게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피젯 스피너’가 사람들을 스마트폰에서 해방시키는 역할을 한다고도 말한다. 손가락으로 ‘피젯 스피너’를 돌리게 되면 자연히 스마트폰을 만지지 못하게 되고, 이로써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고 주위를 살피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차라리 스마트폰에 고개를 박고 있는 것보다는 ‘피젯 스피너’를 돌리는 것이 건강에 더 좋다고 말한다.
이에 대한 반대 의견도 물론 있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사실은 집중력 향상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을 비롯한 전문가들은 심리적으로 안정이 된다거나 자폐증이나 ADHD에 효과가 있다는 뚜렷한 연구 결과가 있거나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는 없다고 말한다.
이와 관련, 임상심리학자 겸 뉴욕 아동심리협회의 ADHD 및 행동장애 센터 회장인 데이비드 앤더슨 박사는 “정신질환은 치료가 어렵다. 때문에 간단한 해결책이 없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장난감 하나로 그렇게 간단하게 치료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설령 몇몇 사람들이 효과를 봤다고 해서 ‘피젯 스피너’를 전문적인 치료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는 앤더슨은 “맛집 사이트 후기를 놓고 과학적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오히려 ‘피젯 스피너’가 집중력을 저해하는 한편, 주의를 더 산만하게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센트럴플로리다대학 심리학과 산하 아동학습클리닉 회장인 마크 래포트 박사는 “‘피젯 스피너’ 같은 장난감을 사용하면 오히려 주의가 산만해진다”고 말했다.
가령 수업 시간에 글씨를 쓰지 않고 양손으로 ‘피젯 스피너’를 돌린다거나, 다른 학생들이 돌리는 모습을 넋을 놓고 바라보는 경우도 있다. 한 교사는 <워킹마더>를 통해 “학생들이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스피너만 바라보고 있다”고 말했는가 하면, 또 다른 교사는 “‘피젯 스피너’가 돌아가는 소리에 다른 학생들의 정신이 팔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한 퀸즈의 한 과학 교사는 아찔한 순간을 회상하면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한번은 하마터면 ‘피젯 스피너’에 집중한 채 차 앞으로 튀어나온 학생을 칠 뻔했다.”
이에 ‘피젯 스피너’ 소지를 금지하는 학교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2017년 5월 발표된 조사에 따르면, 현재 미국 내 공립 및 사립 학교의 32%가 ‘피젯 스피너’ 금지령을 내린 상태다.
‘피젯 스피너’ 최초 개발자로 알려진 캐서린 헤팅어. 그의 딸이 오른손에 들고 있는 것이 헤팅어가 만든 모델이고 왼손에 들고 있는 것이 요즘 유행하는 피젯 스피너다.
그렇게 몇 차례 수정한 끝에 마침내 최초의 스피너 장난감이 탄생했다. 그녀가 만든 초기의 모델은 플라스틱 재질의 둥근 원반으로, 볼록 솟아오른 가운데 부분에 손가락을 끼워 빙빙 돌리는 형태였다. 플로리다 인근의 예술공예 박람회를 찾아다니면서 제품을 팔았던 그녀는 내친 김에 특허권까지 신청하기로 마음먹었다. 1997년 ‘스피닝 토이’라는 이름으로 특허를 신청했던 그녀는 신청서에 장난감 모양을 가리켜 미의회의사당 건물을 본떠 만들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녀의 특허에 관심을 갖는 완구업체는 아무 곳도 없었다. 세계 최대 완구회사인 ‘하스브로’를 찾아갔지만 그곳에서도 역시 거절당하고 말았다. 이렇다 할 빛을 보지 못했던 헤팅어의 특허권은 지난 2005년 만료됐다. 특허를 연장하는 데 필요한 400달러(약 45만 원)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현재 ‘피젯 스피너’의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치솟았다. 돈방석에 앉을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친 것이 아깝지 않냐는 질문에 헤팅어는 “발명가에게 가장 근사한 일은 사람들이 자신이 만든 제품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나는 행복하다”고 말했다.
현재 뚜렷한 특허권이 없는 ‘피젯 스피너’는 ‘하스브로’를 비롯한 다양한 완구업체에서 대량 생산하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정육면체 형태인 ‘피젯 큐브’도 있다. ‘피젯 큐브’는 각 면에 온오프 스위치, 미니 조이스틱, 잠금장치, 버튼 등이 있으며, 이 장치들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면서 조작하는 형태다.
하지만 무엇이든 빨리 끓어 오르면 그만큼 빨리 식게 마련. ‘피젯 스피너’ 때문에 수업에 방해가 된다면서 불만을 쏟아내고 있는 대부분의 교사들은 “아마 ‘피젯 스피너’ 열풍은 빨리 나타났던 것만큼 빨리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피젯 스피너 최초 개발자는 따로 있다? “토크바가 원조” 지재권 분쟁 스콧 맥코스커리는 자신이 만든 ‘토크바’가 피젯 스피너의 원형이라고 주장한다. 2017년 5월 <블룸버그뉴스>는 “피젯 스피너를 처음 개발한 사람은 캐서린 헤팅어가 아니다”라고 보도했다. 헤팅어가 만들었던 ‘스피닝 토이’가 엄밀히 따지면 오늘날 유행하고 있는 ‘피젯 스피너’와는 작동 원리부터 다르다는 것이다. 즉, 빙글빙글 돌아간다는 점 외에 둘 사이의 공통점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럼 왜 이렇게 알려진 걸까. 이에 대해 <블룸버그 뉴스>는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에 올라온 잘못된 정보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2017년 4월, 누군가 헤팅어를 ‘피젯 스피너’의 최초 개발자라고 명시해 놓은 것이 시작이었다. 이 정보를 토대로 <뉴욕타임스> <가디언> 등이 헤팅어에게 인터뷰를 요청했고, 헤팅어는 즐거운 마음으로 인터뷰에 응해 스피너를 개발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이와 관련, <블룸버그뉴스>는 두 명의 특허 전문가에게 의견을 구했다. 과연 헤팅어의 플라스틱 원반과 오늘날의 ‘피젯 스피너’ 사이에 얼마 만큼의 연관성이 있느냐 자문을 구했던 것.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두 제품 사이에 연관성을 찾기 힘들다고 결론 지었다. 다시 말해 두 제품이 작동될 때 완전히 다른 메커니즘이 적용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최초 개발자는 누구일까. 2017년 5월, 자신이 ‘피젯 스피너’의 원 개발자라고 주장하는 남성이 나타났다. 스콧 맥코스커리라는 남성이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NPR>과의 인터뷰에서 맥코스커리는 “2014년 ‘토크바’라는 금속 스피닝 장난감을 처음 개발했다. 바로 이것이 지금의 ‘피젯 스피너’의 원형이다”라고 주장했다. 실제 ‘토크바’는 현재 유행하고 있는 ‘피젯 스피너’와 상당히 흡사한 모양을 하고 있다. 가운데 부분을 잡으면 날개가 빙빙 돌아간다는 점, 그리고 작동 원리도 비슷하다. 다만 40~260달러(약 4만 5000~29만 원) 정도로 가격이 비싸다는 점, 주문제작이 가능한 고급형이라는 점은 다르다. ‘토크바’를 개발하게 된 계기에 대해 맥코스커리는 “IT업계에 수년간 종사하면서 많은 시간을 기나긴 회의에 참석하거나 전화를 붙잡고 있는 데 소비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볼펜을 딸깍거리거나, 면도칼을 열고 닫거나, 손에 잡히는 무엇인가를 만지작거리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하고 있는 이 짓을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현재 그는 지적재산권을 둘러싼 법적 분쟁을 벌이고 있다. 특허청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그는 자신이 ‘피젯 스피너’의 특허권자라고 확신하고 있다. [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