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이념전쟁은 ‘연중무휴’
반면 집권 10년 만에 ‘소수 야당’으로 전락한 후 첫해를 보낸 민주당은 MB와 172석 ‘공룡 여당’ 한나라당의 파상공세를 온몸으로 막아내야 할 처지다. 연초부터 계속될 여당과의 ‘법안 전쟁’에서 밀리지 않아야 하고 10%대에서 답보 상태를 보이고 있는 지지율도 끌어올려야 할 처지다. ‘기축 정국’의 향방을 가를 정가의 주요 변수들을 미리 점검해 봤다.
#‘이념 법안’ 처리 충돌
여야는 지난 연말부터 ‘이념 법안’ 처리를 놓고 물리적 충돌을 불사하는 대결구도를 이어 가고 있다. 정치·경제·사회 등 전 분야에서 이전 정권의 이른바 ‘좌파 색깔’을 빼고 대신 ‘MB 컬러’를 주입하려는 여권의 기도에 맞서 야권이 ‘결사 저지’로 맞서고 있다.
양측 간 전쟁은 이미 지난해 연말 임시국회로부터 시작돼 기축년 한 해도 내내 계속될 전망이다. 한나라당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MB표 개혁법안’을 가급적 빨리 처리한다는 방침. 그러나 실제 얼마나 성과를 낼지는 미지수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과반을 넘는 152석을 얻은 후 4대 입법(국가보안법·신문법·과거사법·사립학교법)에 4년 내내 ‘올인’했지만 국보법 개정은 상정조차 못했고, 사학법은 2005년 말 직권상정을 통해 겨우 강행처리했던 전력 때문이다.
특히 민주당은 법안 전쟁 돌입 이후 지지율이 상승세를 타고 있는 점에 고무돼 ‘옥쇄’도 마다 않을 기세로 여당에 맞설 확률이 높다. 어찌 보면 민주당 지도부로선 한나라당이 2004년 ‘3·12 대통령 탄핵’ 사태 때처럼 강공 드라이브를 펼쳐주길 바랄지도 모른다. 실제 한 핵심 당직자는 “MB정권이 재벌과 부자 등 특정 계층의 이해를 대변하고,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행태를 재연하려 한다면 또 한 번의 ‘촛불 민심’에 부딪힐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반면 한나라당으로선 겉으론 ‘MB식 속도전’을 강조하면서도 자칫 ‘탄핵 악몽’이 재연될 수 있다는 전망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념 전쟁의 경과와 승패에 따라 정국의 기본 향방이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은 그래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여권진용 신년 연설서 가닥
MB정권 출범 1주년을 전후한 1월 하순 또는 2월 초순엔 당·정·청 전반에 걸친 진용 개편이 예정돼 있다. 우선 정부의 경우 지난 연말 부처별 1급 공무원들이 일괄 사표를 제출하면서 개편의 소용돌이가 시작됐다. ‘조각에 준하는 개각’이 될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정가에선 경제위기를 맞아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등 경제팀의 대거 물갈이가 기정사실로 굳어지고 있다. 대대적인 쇄신바람에서 비경제부처와 4대 권력기관(국가정보원 검찰 국세청 경찰청)도 예외가 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참모진 역시 정정길 대통령실장 이하 수석들에 대한 여권 내부의 평가가 상당수 ‘낙제점’에 가깝다는 점에서 중폭 이상의 개편이 불가피할 것이란 예상이다. 특히 ‘고질병’으로 지적되고 있는 ‘컨트롤 타워 부재’와 ‘정무능력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MB와 확실히 코드가 맞고 돌파력이 있는 인사들의 기용설이 힘을 얻고 있다.
여권 진용 개편의 방향은 1월 초 MB의 신년 연설에서 가닥이 잡힐 것으로 보인다. 여권 내에선 현재 “MB정권 창출에 헌신한 사람들을 청와대, 내각에 전진배치해야 한다”는 ‘친정체제론’과 “능력이 있다면 박근혜계뿐 아니라 이전 정권 핵심인사도 중용해야 한다”는 ‘탕평론’이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일각에선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인사 패턴을 벤치마킹해 ‘청와대는 측근 중심, 내각은 능력 중심’으로 가자는 절충론도 나온다.
청와대·정부 개편의 영향은 한나라당에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원내 사령탑’인 홍준표 원내대표와 임태희 정책위 의장, 안경률 사무총장 등의 입각설이 오르내리고 있어 지도부 개편 가능성이 거론된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핵심 당직에서 배제됐던 박근혜계의 중용 여부도 주요 관심사다.
▲ 여야는 지난 연말부터 이념법안을 두고 물리적 충돌까지 벌였다. 사진은 한나라당 지도부(위)와 민주당 지도부. | ||
집권 여당의 양대 산맥인 MB계와 박근혜계는 2008년 한 해를 갈등과 반목으로 일관했다. 이 같은 여당의 분열은 여권 난조의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 18대 총선 ‘공천파동’과 뒤이은 박근혜계 낙천자들의 대거 탈당, 총선과정에서의 ‘박풍’(박근혜 바람)으로 인한 MB계 핵심들의 낙선사태가 연이어지면서 갈등의 골은 깊어만 갔다. 총선 후 논란 끝에 박근혜계 당선자들의 일괄복당이 이뤄졌지만 양측 간 ‘한랭전선’은 여전했다.
새해엔 여러 정치적 계기로 볼 때 양자 관계가 결정적 시험대에 오를 것이란 전망이 많다. 첫 관문은 박근혜계로부터 ‘공적 1호’로 평가받는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조기 귀국 및 중용 여부가 될 것으로 보인다. MB계 일각에서 작금의 위기국면을 돌파할 ‘해결사’로 꼽히고 있는 이 전 최고위원이 다시 여권 전면에 나설 경우 박근혜계의 반발이 거셀 것이 분명하기 때문.
실제 박근혜계의 좌장인 김무성 의원은 최근 공개적으로 “이 전 최고위원의 조기 귀국은 우리(박근혜계)에 대한 전쟁선포”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이 전 최고위원 외에 내년 4월 재·보선 출마설이 나도는 이방호 전 사무총장, 정종복 전 제1사무부총장 등 공천파동 ‘주역’들의 공천을 놓고서도 현재로선 양측이 격돌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여권 주변에선 MB계와 박근혜계가 새해 들어 본격적인 ‘화해 무드’로 접어들 것이란 전망도 없지는 않다. 물론 1월 말 당·정·청 개편 과정에서 박근혜계 인사들의 입각 또는 당 지도부 전진배치 등 ‘포용론’이 힘을 발휘하고, MB가 직접 박근혜 전 대표를 만나 ‘국정 동반자’ 관계를 다시 재확인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일 때 가능한 얘기다. 일각에서는 아직도 ‘박근혜 총리론’까지 거론하고 있지만 성사 가능성이 그다지 커 보이진 않는다.
#현 정권 중간평가적 성격
3대 선거(대선 총선 지방선거)가 모두 없는 올해 정치일정에서 가장 큰 변수는 4월과 10월에 치러질 재·보선이 될 전망이다. 집권 2년차를 맞는 MB정권의 중간평가적 성격을 띠는 만큼 승패에 따라 여야 모두 리더십에 급격한 변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많다는 분석이다.
재·보선 대상은 이미 확정된 곳이 3곳(전북 전주 완산갑, 전주 덕진, 경북 경주)이고 1심이나 항소심에서 당선 무효형 이상의 형을 받아 금배지가 위태로운 곳은 11곳이나 된다. 이들 지역은 대부분 4월에 재·보선이 예상되고 재판 진행이 늦은 일부는 10월에 치러질 전망이다.
한나라당 입장에선 재·보선이 ‘잘해야 본전’인 부담스러운 장사다. 노무현 정권의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이 17대 총선 이후 재·보선에서 연전연패하면서 몰락했던 것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특히 가중되고 있는 경제위기와 20%대인 MB의 낮은 국정지지율, 당내 계파갈등과 ‘수도권 대 지방’의 대결구도 심화 등을 감안하면 더욱 더 고민이 깊어진다.
그래서 여당에선 여차하면 원외인 박희태 대표와 강재섭 전 대표, 이재오 전 최고위원 등 핵심인사들을 최대한 징발해 선거에 내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들은 정치생명을 건 도박이라 할 수 있는 재·보선 출마를 주저하는 경우가 많아 여권 핵심부를 갑갑하게 만들고 있다.
반면 민주당 등 야권에서는 재·보선을 한나라당 독주체제를 뒤흔들 국면 전환의 호기로 삼을 태세다. 특히 창조한국당 문국현 대표(서울 은평 을),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경남 사천) 등 야권 공조의 고리가 되는 지역구를 중심으로 총력전을 펼친다는 움직임이다.
여기에 손학규·정동영 전 대표, 김근태 전 의장 등 차기 대선주자군의 출마 가능성도 변수다. 차기 대권주자군으로 꼽히는 이들의 출마가 당선으로 이어질 경우 그에 따른 정국구도의 변화는 클 수밖에 없다. 이들이 살아올 경우 ‘차기 부재’란 평가 속에 침체를 겪던 민주당으로선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