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춘부만 노린 잔혹극 정말 막 내릴까
▲ 지난달 19일 영국 경찰은 매춘여성 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스티븐 라이트(오른쪽)를 체포했다. AP/연합뉴스 | ||
끔찍한 연쇄살인이 벌어진 곳은 런던 북동쪽에 위치한 작은 항구도시인 입스위치. 인구 12만 명의 평화로운 항구도시가 공포스런 살인 현장으로 뒤바뀐 것은 불과 며칠 사이였다.
지난해 12월 2일. 힌틀스햄 인근의 개천에서 벌거벗은 여성의 시체 한 구가 발견되었다. 다음날 시체의 신원이 밝혀졌다. 보름 전 행방불명되었던 젬마 아담스(25)였다. 성매매여성으로 알려진 그녀는 11월 15일 집을 나간 후 돌아오지 않았으며, 남자친구가 실종 신고를 낸 후에도 여전히 행방이 묘연한 상태였다.
그리고 시체가 발견된 다음 날인 12월 3일, 또 한 건의 실종 신고가 접수됐다. 역시 매춘부로 일하던 아넬리 알더톤(24)이 집을 나간 후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 다음날인 4일에는 또 다른 매춘부 아네트 니콜스(29)의 실종 신고가 잇따라 접수되었다.
경찰은 이들이 모두 매춘 여성이라는 점, 그리고 젊은 미모의 여성들이라는 점 등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수상한 점이 많다고 판단, 연쇄살인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첫 번째 시체가 발견된 개천을 중심으로 수사를 시작했다.
마침내 12월 8일, 두 번째 시체가 발견되었다. 아담스의 시체가 발견되었던 같은 강줄기에서 지난 10월 30일 실종된 타니아 니콜(19)이라는 매춘여성이 발견된 것. 그녀 역시 옷이 모두 벗겨진 채 목이 졸려 살해당했으며, 아담스와 함께 강에 버려진 것으로 짐작되었다.
사건이 점점 심각해지자 경찰은 이 지역 여성들에게 혼자 외출하지 말고, 외출을 하더라도 가능한 한 어두워지기 전에 귀가할 것을 당부했다. 사건의 진원지인 홍등가는 개점 휴업 상태가 되었으며, 대부분의 여성들은 남편이나 애인과 함께 외출하거나 귀가하는 등 안전에 만전을 기했다.
하지만 이런 경고를 비웃기라도 하듯 다음 날 또 한 건의 실종 신고가 접수됐다. 폴라 클레넬(24)이라는 이름의 매춘 여성이 사라진 것. 그녀가 실종되기 4일 전 ITV와의 인터뷰에서 “위험하긴 하지만 거리로 돌아가야 한다. 당장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인 10일 세 번째 시체가 발견되었다. 앞서 실종되었던 알더톤이 낵튼 마을 인근의 수풀에서 지나가던 행인에 의해 발견된 것. 당시 알더톤은 발가벗겨진 상태로, 목 졸라 살해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당시 그녀가 임신 3개월로 홑몸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 입스위치 연쇄살인사건의 희생자들. 왼쪽부터 젬마 아담스, 폴라 클레넬, 타니아 니콜, 아네트 니콜스, 아넬리 알더톤. | ||
다섯 명의 희생자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매춘 외에도 모두 마약에 중독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젬마 아담스는 승마와 피아노 연주가 취미인 유복한 중산층에서 자란 여성이었다. 부모는 그녀가 매춘을 한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아담스가 매춘을 한 이유는 다름 아닌 ‘마약’ 때문이었다. 그녀는 여러 차례 재활센터에 들어갔지만 이내 줄행랑치곤 했으며, 마약에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부모 몰래 홍등가에서 일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타니아 니콜 역시 전 직장 상사의 말에 따르면 평소 ‘조용하고 차분한 소녀’였다. 원래 꿈은 가수였지만 그녀 역시 마약의 늪에 빠지기 시작하면서 매춘부로 일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미용사가 꿈이었던 아네트 니콜스는 마약을 구입하는 데 하루에 무려 500파운드(약 90만 원)를 지불하곤 했으며, 이 돈을 벌기 위해 기꺼이 몸을 판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어떤 이유로 이런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걸까.
다행히 수사는 빠르게 진행되어 첫 번째 시체가 발견된 지 보름 만인 지난달 19일 마침내 유력한 용의자가 체포되었다. 자택에서 경찰에 체포된 용의자는 스티븐 라이트(48)라는 이름의 전 포크 트럭 운전사였다. 당시 경찰은 그가 어떠한 증거로 체포되었는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으면서 단지 “유력한 증거물을 다량 확보하고 있다”고만 밝혔다.
다른 성매매 여성들의 증언에 따르면 라이트는 홍등가에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단골 손님이었으며, 근래에 홍등가 인근으로 이사온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이웃 주민들은 그가 얼마 전 새로 구입한 ‘포드 몬데오’ 승용차의 내부와 외부를 매일같이 청소하는 모습이 수상했다고 증언한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와 오랫동안 동거를 해온 파멜라 굿맨은 그의 결백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세 아이의 아빠이기도 한 그가 살인범으로 지목된 데 대해 그녀는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 그는 홍등가에 드나들 사람이 아니다. 그는 살인범이 아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의 친구들 역시 “그는 평소 다정하고 친절한 사람이었다”고 말하면서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현재 경찰은 그가 범인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다만 언론에는 살인 동기와 함께 그가 어떤 방식으로 살인을 저질렀는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경찰은 이에 대해 첫 번째 용의자로 지목되었다가 보석으로 풀려난 슈퍼마켓 점원 톰 스티븐스(37)가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면서 수사가 혼란에 빠졌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아무튼 라이트의 체포로 한동안 영국 전역을 공포 분위기로 내몰았던 연쇄살인사건은 일단락된 상태다. 앞으로 남은 것은 과연 그가 진짜 범인이 맞는지 법정에서 가려내는 일이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