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대 입학 미끼 짐승짓” VS “학생 엄마 알코올 중독자”…경찰 사건 재수사 검토
지난 9일 대구 달성군 다사읍 대실역 부근에서 중3 딸이 학원 원장에 성폭행을 당했다며 1인 시위를 벌인 어머니의 모습.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이런 가운데 지난 10일엔 성폭행범으로 몰린 원장도 A 씨와 똑같은 방식으로 1인 시위에 나서 관심을 모았다. 원장은 이날 선글라스와 모자로 얼굴을 가린 채 A 씨가 시위를 벌이고 있는 장소에 나타나 피켓을 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날 이들은 마주보고 1인 피켓 시위를 벌이며 서로를 향한 비난의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나왔다”는 글로 시작되는 원장의 피켓에는 “(A 씨가) 이혼 후 딸과 원룸에서 살면서 남자친구들을 데려와 새벽까지 술 마시고 그분들과 잠자리를 하는 것을 딸이 너무 싫어했다. 엄마가 알콜중독자 같다고 해 힘들어 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어 그는 피켓에 “그래서 (어머니께) 상담 요청을 드렸는데 (이 문제로) 어머니와 심하게 다투었다”며 어머니와의 갈등이 일어난 배경은 성폭행이 아닌 학생 상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다툼이 있었다고 해서) 이런 허위사실을 유포하며 저의 가족과 사업에 엄청난 손해를 주는 행위를 더는 참을 수 없어 나왔다”며 “현재 민·형사상 고소를 진행 중에 있다”고 밝혔다.
지난 14일 <일요신문>은 A 씨를 직접 만나 사건의 전말을 들어봤다. 지난해 10월 9일 당시 중학교 3학년이던 딸 B 양(16)은 상담을 위해 학원에서 원장을 만났다. 이 학원은 특정 교과목에 대한 수업이 이뤄지는 곳이 아닌 공부 습관, 진학 상담 등을 다루는 학습센터로 보통 일주일에 한 번꼴로 원장과의 상담이 이뤄진다. 그날 원장은 상담이 끝난 뒤 B 양에게 커피를 권유했고 둘은 근처 카페로 향했다.
문제는 원장이 B 양을 집에 보내지 않고 다시 학원으로 들여보낸 것이다. A 씨에 따르면 학원에는 상담이 이뤄지는 상담실 말고도 학생들이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는 독서실 형태의 공부방이 있다. 학생들은 상담을 기다리는 동안 이곳에서 공부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전해졌다. B 양은 자습하고 가라는 원장 말에 이끌려 학원으로 돌아갔고 그곳에서 화를 당했다는 게 A 씨의 주장이다. A 씨는 “상담 끝나고도 딸이 학원으로 같이 왔다는 게 그가 ‘합의하에 관계’라고 주장하는 이유”라며 “학원에도 CCTV는 없다. 오직 엘리베이터 CCTV로 같이 올라가는 것만 보고 강제성이 없었다고 했다”고 말했다.
B 양은 사건 다음날인 11일 학교 상담 선생님에게 이 같은 사실을 털어놨고 학교는 성폭력상담센터인 해바라기센터에 신고했다. A 씨가 딸의 성폭행 사실을 알게 된 것도 학교 연락을 받은 뒤였다. 하지만 경찰 수사 결과 성관계 사실은 인정됐으나 강제성 여부에서 증거불충분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
A 씨는 사건 이후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고 정신과 치료를 위해 딸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런 그가 1년 가까이 지난 시점에서 과거 사건을 들어 1인 시위를 하게 된 이유는 따로 있다. 최근 원장이 A 씨에게 ‘진학 세미나’ 관련 공지 문자를 보냈기 때문이다. A 씨는 “우리 딸 같은 피해자가 또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참을 수 없어 거리로 나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알코올 중독’이나 ‘사생활’을 문제삼은 원장의 주장에 대해서도 A 씨는 “이것이야 말로 허위사실”이라고 반발했다. A 씨는 오히려 사건이 일어난 뒤에도 원장이 “무조건 이 학원만 다니면 꼭 경북대학교를 갈 수 있게 해주겠다”며 B 양에게 접근했다고 주장했다. A 씨는 “딸이 검사 받으러 산부인과 갔다고 하니까 성관계 사실을 시인하면서도 ‘딸이 지금 고민하고 있는 게 뭔지 아냐’며 딸의 학교 성적 문제 등을 얘기하더니 나중엔 자기랑 같이 살자했다며 말도 안 되는 소리로 협박했다”고 말했다.
B 양도 지난 11일 페이스북 한 페이지를 통해 원장이 그동안 성적농담을 일삼아 왔다고 폭로했다. 또 “예전 성추행당했던 일을 털어놨을 땐 ‘그때 기분 좋았지?’라고 묻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경찰 조사 당시에 대해 B 양은 “너무 무서웠고 정신적 충격도 있는 상태서 그때 일을 자세하게 설명해야 한다는 게 너무 어려웠다”며 “CCTV가 없고 원장이 내가 자신을 덮치는 걸 어쩔 수 없었다고 억울하단 식으로 말해 경찰이 원장 손을 들어준 것 같다”고 설명했다. A 씨도 “딸이 정말 두려운 상황에 놓이면 어떤 사람은 저항을 하지만 어떤 사람은 아무것도 못하고 움직일 수도 없다고 하더라”며 “(경찰에서) 동작·자세 등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라고 요구해 심리적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피해 학생 어머니의 1인 시위로 성관계 사실이 알려지자 문제의 학원은 11일 밤 간판을 떼고 영업을 중단했다. 사진=피해 학생 어머니 제공
한편, 무혐의로 종결된 이 사건에 대해 전문가들은 경찰의 수사 방식에 의문을 나타냈다. 백기종 전 수서경찰서 강력팀장은 “이 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학교 선생님에게 먼저 얘기를 했고 해바라기센터를 통해 경찰에 진술이 충분히 위축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될 수 있었는데 수사가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학원장의 지위나 위치를 이용한 추행이나 성관계로도 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 존재하는데 단순히 강압인지 아닌지에 국한돼 수사를 한 것이 피해자의 위축된 진술로 인해 무혐의가 난 게 아닌가 의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김복준 한국범죄학연구소 연구위원은 거짓말탐지기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김 위원은 “피해자도 본인 진술에 신빙성을 보이려 거짓말탐지기를 해달라고 할 수 있다”며 “만약 피해자가 하겠다고 하는데 피의자가 안하겠다고 버티면 그건 상당 부분 혐의가 있는 걸로 보이기 때문에 거짓말탐지기를 이용해 수사를 하면 좀 더 명확한 부분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건을 담당한 대구지방경찰청은 경찰에 진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피해자의 주장이 제기됨에 따라 현재 재수사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이 사건은 성관계는 사실이지만 강제성이 확인되지 않아 증거가 불충분해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지난 3월 검찰에서도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대구지방경찰청 여성청소년과 관계자는 “조만간 피해자 어머니를 불러 진술을 들어볼 예정”이라며 “피해자가 수사 과정에서 진술을 제대로 하지 못한 점을 파악한 뒤 재수사 여부를 검토할 것”이라고 전했다.
김상훈 기자 ksang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