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선진화법 미세조정 필요…민생 중심 입법 통해 신뢰받는 국회 거듭날 것”
정세균 국회의장은 역대 의장이 모두 실패했던 국회 청소노동자 직접 고용 약속을 지켜 화제가 됐다. 사진=국회의장실
[일요신문] 정세균 국회의장은 역대 의장이 모두 실패했던 국회 청소노동자 직접 고용 약속을 지켜 화제가 됐다. 국회 사무처는 청소노동자뿐만 아니라 국회 내 다른 간접 고용 노동자들도 오는 2018년부터 순차적으로 직접 고용하겠다고 밝혔다. 정 의장이 몰고 온 신선한 새바람이다.
2년 임기 반환점을 돈 정 의장의 남은 목표는 개헌이다. 대표적인 개헌론자인 정 의장은 내년 지방선거 때 반드시 개헌안을 통과시켜 낡은 국가운영의 틀을 바꾸겠다고 밝혔다. 정 의장은 목표를 이룰 수 있을까. 정 의장을 만나 주요 현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7월 13일 2년 임기의 반환점을 돌았다. 그동안 국회의장으로서 거둔 성과들 중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20대 국회는 과거에 비해 많은 성과를 냈다고 자평한다. 개회사에서 약속드린 국회 환경미화원 직접 고용 약속을 지켰고, 쟁점사안이었던 누리과정 예산문제를 풀어내기도 했다. 개헌특위도 조만간 성과를 내놓을 예정이다.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지만 협치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취임 후 국회 청소노동자 직접 고용 약속을 지켰다. 이후 어떤 변화가 있었나.
“청소노동자분들은 그동안 국회 직원이 아니라 용역회사 소속 직원이었다. 직접 고용 이후 정식으로 국회 직원이 돼 자부심이 생겼다고 하시더라. 기존 직원들과 보이지 않게 작용했던 장벽도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제가 보기엔 표정이 밝아지신 것 같아 뿌듯하다.”
—청소노동자 직접 고용을 전체 공공기관으로 확대할 수는 없을까.
“국회가 청소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는 것에 대해 이전 정부의 반대가 심했다. 여러 전임 의장들이 직접 고용을 약속했지만 결국 무산된 것도 이전 정부와의 이견 때문이었다. 국회 같은 경우 용역업체에 지급하던 예산을 그대로 청소노동자들께 직접 지급해 비용부담이 늘지 않았다. 국회의 사례가 전 공공기관으로 확대되길 기대한다. 기관마다 사정이 다르겠지만 강한 의지만 있으면 충분히 가능하다.”
—20대 국회는 원내 교섭단체가 4곳이다. 국회의장으로서 어려움이 많을 것 같다.
“지난 1년간 여야 협치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다당 체제에서 국회가 산으로 가지 않게 중심을 잡으려 노력했다. 절대 다수가 없는 다당제이기 때문에 누구 하나 반대하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여야가 소통하고 협의하는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4당 사이에서 중심을 잡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작년 국회의장 미국순방에 원내대표단이 최초로 동행했고, 탄핵정국에서는 국가적 혼란을 막고 국회가 국정운영의 한 축으로서 역할을 하기 위해 4당 원내대표 회동을 수시로 주선했다. 매주 정례회의에서는 주요 이슈들에 관해 허심탄회하고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고 있다.”
—국회의장 임기 중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 탄핵안을 직접 통과시킨 국회의장으로서 감회가 남달랐을텐데.
“잘잘못을 떠나 대통령 탄핵이라는 불행한 사태 앞에서 안타깝고 비통한 심정이었다. 개인적으로는 2004년 탄핵을 막기 위해 의장석에 있었고, 이번에는 탄핵안 의결을 위해 의장석에 앉아 있었다. 의장으로서 사회를 보고 의사봉을 직접 두드려 의결했던 과정이 숙명처럼 느껴진다. 이번 탄핵은 국민의 요구로 시작돼 국민의 힘으로 이뤄낸 결과물이다. 어떤 권력도 헌법정신 위에 군림할 수 없음을 재확인했다. 다시는 이런 불행한 사태가 없도록 정치권이 노력해야 한다.”
—탄핵 후 조기 대선으로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돕기 위해 국회가 어떤 역할을 할 계획인가.
“입법부의 역할은 정부 정책을 꼼꼼하게 살펴서 상임위나 입법활동을 통해 보완 및 수정하는 일이다. 입법부가 행정부가 하는 일에 대해 무조건 찬성만 해서도 안 되겠지만 각 상임위에서 충분히 논의한 후 추진 필요성이 있는 정책에 대해서는 적극 협조하는 것도 국회의 몫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야정 협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부와 여당이 국정운영의 파트너로서 야당을 인정하고 더 설득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고 야당도 국익을 위해 양보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내년 지방선거에 맞춰 국회 주도로 개헌안을 통과시키겠다고 했다. 차질은 없나.
“이번만큼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헌안 발의 주체인 국회와 대통령 모두 개헌의 필요성이나 시기에 대해 동일한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다만 구체적인 권력구조 개편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다르다. 그 부분은 개헌특위에서 조율하고 있어서 곧 이견이 좁혀지고 합의에 이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구상하고 있는 개헌방향은 무엇인가.
“개헌의 핵심은 분권이다.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하는 적폐를 바로잡는 것이다. 대통령이나 행정부가 가진 권력 일부를 국회나 제3의 기관으로 분산하고 중앙정부가 가진 권력을 지방에 이양하는 분권형 개헌이 되어야 한다. 분권이라고 하는 방향에만 합의를 한다면 권력구조는 4년 중임이든 단임이든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선거제도 개편도 개헌과 같이 이뤄지나.
“선거제도 개편은 ‘분권을 위한 개헌’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선거제도 개편 없이는 특정부분에 편중된 권력을 분산시키기 어렵다. 선거구제개편, 비례대표제 개선 등 선거제도 개정 문제는 국회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세부적인 내용은 법률에서 규정하도록 위임하더라도 선거제도의 중요한 부분은 헌법 개정 과정에서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여당에서 국회선진화법을 손질하자는 이야기가 나온다.
“국회의장을 해보니 양당제를 전제로 마련한 국회선진화법이 다당 체제에 적용되면서 소수 의원의 비협조만으로도 국회 전체가 공전되는 문제가 확인됐다. 소수 의견도 중요하지만 국회의원 다수 의견과 국민들의 요구를 수용 못하는 문제점이 발생한다. 개헌이나 탄핵도 재적의원의 2/3가 찬성하면 가능한데, 안건조정제도를 거치게 되면 법안 하나를 처리하는데 찬성하는 의원수가 2/3가 넘어도 처리 못하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선진화법의 취지 및 필요한 요소는 살리되 미세조정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난 6월 특수활동비 논란 이후 청와대는 특수활동비를 자진해서 삭감했다. 국회도 특수활동비를 과감하게 수술해 예산을 투명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의장취임 후 국회 예산집행에 대해 검토를 지시하고 불필요한 예산집행을 불허해왔다. 그러나 기밀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수사 등 중요 국정활동에 불가피하게 특수활동비가 필요한 부분이 존재한다. 이런 부분을 감안해 특수활동비가 제대로 사용될 수 있도록 점검해 나갈 것이다.”
—북핵 위기가 고조되면서 국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남북 긴장완화를 위해 국회 차원에서 계획하고 있는 일은 없나.
“지난달 국회에서 남북 이산가족 상봉 촉구 결의안이 채택됐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정치적인 관점이 아닌 민족적, 인도적 관점에서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또 저는 6자회담 당사국 의회 간 대화 필요성을 꾸준히 강조했다. 지난 6월 서울에서 열린 유라시아국회의장회의에서도 기조연설을 통해 6자회담 당사국 대화를 강조했고, 남북 국회의장 회담 추진의사도 밝혀 참석한 유라시아국회대표단들로부터 지지를 받은 바 있다. 외교적, 정치적 문제로 정부가 풀지 못하는 문제는 의회 간 대화를 통해 풀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남은 임기 동안 반드시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가.
“예측 가능한 개헌을 추진하고 생산적 협치 문화를 만들고 싶다. 민생 중심 입법에도 주력하겠다. 민생문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청년 실업 해소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 비정규직 해소와 4차 산업혁명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전환점이 되도록 국회가 나설 것이다. 이와 관련해 여야 간 쟁점 없는 법안은 물론이고 쟁점 법안이라도 국민 눈높이에서 처리하는 등 민생을 중심에 두고 입법 활동을 하겠다. 국민에게 신뢰받는 국회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