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뭐라 해도 내 생각대로 꿋꿋이
▲ 맨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아사히 맥주의 ‘스타일프리’, 전기밥솥 ‘혼스미가마’, 저금통 ‘인생은행’, 유키구니의 숙주나물, 유기유리로 만든 변기, 리코의 ‘GR DIGITAL’, 초콜릿 ‘GABA’, 장미향 나는 남성전용 향기껌. | ||
고이즈미 전 총리가 자신의 후계자인 아베 총리에게 “때로는 둔감력이 필요하다”고 충고해 이 말이 더욱 유명해지기도 했는데 이런 유행은 곧 주변의 시선에 연연하며 소극적으로 살아온 일본인들이 주위에 휘둘리지 않고 소신껏 자신의 생각을 행동에 옮기는 것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새로운 지혜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본의 대중지 <주간포스트>는 최근호에서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히트상품을 만들어낸 ‘꿋꿋한 사원’들의 성공 스토리를 소개했다. 이들은 크게 다음의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1 반대여론에 주눅들지 않는다
올해 3월 발매된 ‘아사히맥주’의 신제품 ‘스타일프리’는 약 한 달 만에 140만 상자가 팔리는 무서운 기세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당분 제로’를 실현시킨 기술력이 웰빙시대 소비자의 마음을 잡은 것이다.
제품 기획단계에서 회사의 연구진이 당분 없이 맥주를 만드는 것은 기술적으로 무리이며 만에 하나 만들 수 있다고 해도 맛이 없을 거라며 난색을 표했다. 하지만 기획자인 후쿠토미 씨(30)는 포기하지 않고 연구진을 설득했다. 2년에 걸친 시행착오의 연속에도 그는 꿋꿋하게 연구를 계속해 끝내 제품을 완성시켰다. 그의 둔감력은 후배들과의 관계에서도 발휘됐다. 뛰어난 후배의 능력을 시기하지 않고 그대로 인정해줬다. 그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 성공의 또다른 열쇠였다.
‘미쓰비시전기’의 전기밥솥 ‘혼스미가마(本炭釜)’의 가격은 무려 8만 5000엔(약 64만 8900원). 이런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발매 1년 만에 2만 대 이상 팔렸다. 이 제품의 특징은 바로 탄소소재에 있다. 솥 전체가 고르게 한번에 뜨거워지는 속성을 이용해 가마솥밥처럼 맛있고 고슬고슬한 밥을 지을 수 있다는 게 ‘대박’의 비결이란다.
그러나 제품화에 이르기까지 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개발자 아카이시 씨(38)는 사내의 반대여론에 시달려야 했다. 전기밥솥 안쪽의 솥을 만들기 위해 순도 99.9% 탄소소재를 가공하고 대량생산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아카이시 씨는 “맛있다면 팔릴 것”이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그의 꿋꿋함이 바로 히트상품 개발의 원천이 된 것이다.
2 내 길을 갈땐 ‘마이페이스’
장난감 회사 ‘다카라-토미’의 저금통 ‘인생은행’은 10만 개 이상 팔린 히트상품이다. 이 저금통의 특징은 액정화면을 통해 저축한 금액에 따라 두 평짜리 단칸방에서 시작해 고급 아파트에 살기까지 주인공의 인생이 변화하는 것을 보여주는 점이다.
제품을 기획한 사람은 노련한 베테랑 사원이 아닌 2년차 여성사원인 엔도 씨(25)다. 그는 이런 아이디어를 어디에서 얻었을까. 어려서부터 장난감 만드는 게 꿈이었다는 그는 “만원전철에 시달릴 때 짜증을 내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얻었다.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그때마다 메모장에 적어뒀다. 그리고 서서히 아이디어를 구체화시켰다”고 설명한다. 이렇게 낙천적이면서 꾸준하게 파고드는 그녀의 성격과 엉뚱해 보이기도 하는 관찰력이 아이디어의 밑거름이었다.
“유키구니의 숙주나물은 굉장히 비싸니까 절대로 사지 말라”는 파격적인 CM송으로 대박을 터뜨린 ‘주식회사 유키구니’. 주로 버섯류를 재배·판매하는 이 회사의 오히라 대표이사(59)가 새 상품인 숙주나물에 손대면서 내건 문구는 “비싸다”와 “사지 말라”는 것이었다. 물론 사내 회의에서는 모든 사람이 이 문구의 사용을 반대했다. 그러나 오히라 씨는 이런 반발이나 논란이 오히려 소비자들의 흥미를 끌 것이라는 계산을 하고 대담하게 자신의 뜻을 관철시켰다. 그가 ‘자기생각’을 접고 주변의 의견에 연연했다면 결코 이룰 수 없는 일이었다.
3 트렌드에 현혹되지 않는다
가정용 물품을 생산하는 ‘마쓰시타 덴코(電工)’에서 매월 5000개 이상이 팔리는 효자 상품이 있다. 바로 변기 ‘아라우노’. 때가 덜 타는 유기(有機)유리 소재라 청소를 안해도 깨끗함이 유지되는 게 장점이다.
개발 당시 도기로 만든 변기가 시장의 95%를 점유하고 있었다. 이때 개발담당자 마에다 씨(29)는 대세를 무시하고 유기유리라는 새로운 재료의 변기를 출시해 기존의 트렌드와 정면승부를 벌였고 그 결과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일본 소형 디지털카메라 시장에서 7만 5000엔(약 57만 3700원)이라는 결코 싸지 않은 가격으로 매월 5000대나 팔리는 카메라가 있다. ‘리코’의 ‘GR DIGITAL’은 기획자인 노구치 씨(47)가 유행을 무시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로 ‘마음대로’ 만든 제품. 명기로 알려진 필름카메라 GR의 디지털 버전으로 28mm 광각 단렌즈를 채택했다. 그런데 줌기능조차 없는 이 카메라에 마니아들의 시선이 쏠렸다. 그는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 돌 전문잡지나 이끼 전문잡지처럼 업무와 전혀 상관 없는 전문지를 보면서 영감을 떠올린다고 한다.
4 질보다 양으로 승부한다
“과자 업계에서는 신제품을 1000종류 내놓아도 실제로 팔리는 것은 3종류 정도”라고 말하는 사람은 일본의 유명 제과회사인 ‘에자키그리코’의 기획부 직원 시라토리 씨(30)다. 100일 연속으로 하루에 10개씩 새로운 상품 기획을 제출해야 하는 기획부 규칙 때문에 그는 주말도 반납하고 열심히 일했다. 그 덕분인지 입사 11년 만에 드디어 첫 번째 히트상품을 만들어냈다. 2005년 발매된 ‘초콜릿 GABA’가 그것으로 심신안정 효과가 있는 아미노산 ‘GABA’를 배합해 만든 제품이다.
이 제품은 특히 남성 회사원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며 연간 40억 엔(약 306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대박상품이 됐다. 시라토리 씨는 “질보다 양으로 승부한다는 기분으로 매일매일 새 기획을 내다보면 그 중에 하나는 대박을 터뜨린다”고 강조한다.
‘크라시에푸즈’ 상품개발부의 니헤이 부장(47·여)은 씹기만 해도 온몸에서 장미향이 나는 남성전용 향기껌을 만들어 히트를 쳤다. 연간 판매 목표액을 단 2개월 만에 달성했을 정도였다. 그의 성공의 이면에는 향기 성분을 직접 복용하는 등 적극적으로 실험에 참 여한 ‘무모함’이 있었다.
박영경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