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 부인 ‘과거’도 시끌
▲ (왼쪽부터) 레지나 페루기, 도나 하노버, 주디스 네이선, 크리스틴 라테가노 | ||
줄리아니의 어릴 적 친구이자 첫 번째 부인. 1968년 결혼했다가 1982년 이혼했다. 이혼 사유는 그녀와 줄리아니가 6촌 사이라는 것. 당시 줄리아니는 “로마 가톨릭 교회로부터 결혼을 승인받은 적이 없다”는 이유로 14년 만에 이혼했다.
둘 사이에 자녀는 없으며, 현재 페루기는 ‘센트럴 파크 보존위원회’의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도나 하노버
줄리아니의 두 번째 부인. 배우 겸 TV 앵커이며, 방송국 제작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1982년 줄리아니가 첫 번째 부인과 이혼한 직후 주위의 소개로 만났으며, 만난 지 6주 만에 청혼했다. 1984년 결혼했으며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결혼생활은 줄리아니의 여성편력 때문에 얼마 안 가 삐걱대기 시작했다. 1997년 당시 줄리아니의 공보비서였던 크리스틴 라테가노와 스캔들이 터졌을 때만 해도 하노버는 잘 참고 견디는 듯 보였다.
하지만 진짜 올 것이 오고 만 것은 2000년이었다. 이미 2000년 초부터 결혼반지를 끼지 않고 다니던 줄리아니는 TV 프로그램의 인터뷰 도중 갑자기 이혼을 선언하면서 자신에게는 사랑하는 사람, 즉 주디스 네이선이라는 여성이 있다는 충격적인 발표를 했다.
배신감에 몸을 떨었던 하노버는 2002년 줄리아니와 정식으로 이혼했다. 이들의 이혼 소송은 미국인들의 초미의 관심사였다. 당시 그녀는 680만 달러(약 63억 원)의 위자료와 함께 두 자녀의 양육권, 100만 달러(약 9억 원) 상당의 고급 아파트 등을 받아냈다.
현재 그녀는 고등학교 동창이자 변호사인 에드윈 오스터를 만나 재혼했다.
주디스 네이선
1999년 맨해튼의 레스토랑에서 처음 만난 줄리아니와 첫눈에 사랑에 빠진 후 2000년 공개적인 커플로 발전했다. 네이선과의 첫만남에 대해서 줄리아니는 “우리는 서로 첫눈에 반했다. 마치 번개를 맞은 것 같았으며, 동시에 감정이 끌렸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시 줄리아니는 부인과 이혼 절차가 마무리되지 않았음에도 네이선과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 비난을 사곤 했다.
네이선은 줄리아니가 전립선암으로 투병 중일 때 곁에서 지극정성으로 간호했으며, 결국 2002년 11월 파리에서 줄리아니에게 청혼을 받았다. 2003년 줄리아니와 네이선은 뉴욕 시장의 관저인 ‘그레이시 맨션’의 정원에서 웨딩마치를 올렸다.
하지만 최근 그녀는 남편인 줄리아니가 본격적인 대선후보 레이스를 펼치기 시작하자 숨겨진 과거가 폭로되면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재혼으로만 알려졌던 줄리아니와의 결혼이 사실은 세 번째 결혼이라는 사실이 들통난 것이다.
1974년 스무 살 때 제프리 로스라는 이름의 남성과 라스베이거스의 한 예배당에서 서둘러서 결혼식을 올린 적이 있었던 것. 당시 결혼 생활은 5년 만에 끝이 났으며, 첫 번째 남편에 대해서는 “아주 형편없는 사람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녀는 1979년 이혼한 지 닷새 만에 사업가인 두 번째 남편 브루스 네이선과 결혼식을 올렸으며, 딸 하나를 낳았다.
또한 그녀의 허위 학력도 문제가 되고 있다.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간호학과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사실은 대학 부설인 2년제 간호학교를 졸업했다는 것이다. 또한 그동안 간호사로 일하기보다는 제약회사에서 판매 담당 일을 맡아 오랫동안 일을 해온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크리스틴 라테가노
1993년 스물여덟 살의 최연소 나이로 줄리아니의 공보관으로 임명되어서 화제가 됐다. 뉴욕 역사상 두 번째 여성 공보관이라는 영광을 안기도 했지만 결국은 줄리아니의 눈에 띄면서 스캔들 주인공으로 더욱 주목을 받았다. 1997년 불거졌던 이 스캔들을 보도했던 <베니티 페어> 기사에 대해 그녀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극구 부인한 바 있다.
1999년 공보직을 그만둔 후 정계를 떠났으며, 그 후 스포츠신문 기자와 결혼해서 가정을 꾸렸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