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몰래 이불 속에서도 꾹꾹
휴대폰의 보급으로 생활이 편리해지긴 했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도 적지 않다. 특히 제대로 여과되지 않은 온갖 정보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청소년들이 받는 영향이 매우 심각하다. 일본의 대중지 <주간문춘>에 따르면 최근 청소년기의 여학생들을 중심으로 ‘휴대폰소설’이 유행하고 있는데 그 내용이 강간, 중절수술, 자살 시도 등 차마 어른들도 고개를 돌릴 정도의 과격한 내용이라고 한다.
작가가 휴대폰으로 글을 써서 ‘마법의 i랜드’와 같은 휴대폰 사이트에 올리는 ‘휴대폰소설’이 최근 일본의 여학생들 사이에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러한 휴대폰소설은 오프라인으로도 출판돼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다. 불황에 시달리는 일본의 출판업계에서 적게는 몇십 만 부에서 많게는 백만 부가 넘게 팔리고 있다.
서점에 진열돼 있는 휴대폰소설들의 표지는 매우 귀엽고 동화적이다. 그러나 표지만 보고 소녀들을 위한 낭만적인 순정소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실제로는 섹스와 매춘, 강간, 폭력 등을 미화시킨 자극적이고 과격한 내용으로 넘쳐나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인 <고이조라(戀空)-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의 내용을 살펴보자. 아주 평범한 고1 여주인공이 멋있지만 불량스러운 남자 주인공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 흔한 이야기다. 그러나 책의 첫 부분부터 남자 주인공의 전 애인이 사람을 고용하여 여주인공을 강간하는가 하면, 여주인공이 16세의 나이로 임신을 했다가 유산을 겪게 되는 등 청소년들이 읽기에 부적절한 내용으로 도배되어 있다. 이 책은 상하 두 권으로 출판되어 120만 부 이상 팔렸고 그 인기에 힘입어 올해 11월에 영화화될 예정이다.
▲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휴대폰소설 <고이조라>의 표지. 올 11월 영화화될 예정이다. | ||
마이니치신문사 등이 주최한 ‘제1회 일본 휴대폰소설 대상’에는 자그만치 2400편의 응모작이 몰렸다. 대상을 수상한 <클리어네스>는 자택에서 매춘을 하는 여대생과 건너편 아파트에 사는 호스트가 사랑에 빠지는 내용이다. 이 소설에 대해 <마이니치신문>은 “여대생과 호스트의 순수한 사랑”이라는 심사평을 실었다.
그밖의 휴대폰소설에서도 강간이나 윤락, 중절수술 등은 단골 메뉴다. 더구나 소설의 많은 부분이 작가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하니 더욱 충격을 금할 수 없다.
휴대폰소설 독자의 90%는 여중고생이다. 최근에는 초등학생들도 이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또한 독자로 만족하지 않고 작가로 나서는 여학생들도 늘고 있다. 그 중에는 초등학생 작가도 있다. 이들은 자신의 체험담을 쓰거나 드라마나 애니메이션에서 본 내용을 토대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휴대폰소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다보니 주독자층인 여중고생들에게 미치는 악영향이 점점 표면화되고 있다. 휴대폰 사이트 측에서는 24시간 감시체제를 가동해 불필요한 성적 묘사나 과격한 표현을 쓴 소설 게재를 제한하고 있지만 모든 소설을 관리하는 것은 불가능한 형편이다. 휴대폰소설 사이트에 사용자가 가장 집중되는 시간대는 주로 밤 11시부터 새벽 2시 정도. 부모들이라고 해도 잠자리에서 소설을 읽는 소녀들을 일일이 제지할 수 없는 것이다.
휴대폰소설의 폐해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올해 3월 아키타 현에서는 휴대폰의 포르노소설 사이트에서 중학생 남녀의 실명이 그대로 사용되어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또한 휴대폰소설 사이트의 개인 홈페이지 프로필은 원조교제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는 휴대폰소설 사이트가 단지 소설을 읽거나 쓰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타인을 괴롭히거나 매춘의 공간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박영경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