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던 선수가 처자식 죽이고 자살
▲ 미국 프로레슬링의 간판 크리스 벤와가 부인과 아들을 살해한 후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 ||
지난 6월 24일 일요일 새벽 3시 58분. WWE 소속의 한 직원이 벤와로부터 한 통의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문자에는 이상하게도 벤와의 집주소가 적혀 있었다. 평소 벤와와 절친한 사이였던 그 직원은 “갑자기 왜 엉뚱하게 집 주소를 보냈지”라며 이상하게 여겼다. 그것도 새벽 4시라는 이른 시간에 말이다.
비슷한 시각 또 다른 동료 역시 벤와로부터 “우리 집에 와서 애완견 좀 봐달라”는 이상한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그리고 6월 25일 월요일 오전. 벤와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던 WWE 직원들은 그제서야 수상한 낌새를 채고 경찰에 신고했다. 벤와의 집을 수색한 경찰은 오후 2시 30분경 집 안에서 세 구의 시체를 발견했다. 지하실에 있는 체력 단련실에서 목을 매달아 자살한 듯 보이는 벤와의 시체와, 1층 서재 바닥에서 손발이 묶인 채 목 졸려 숨져 있는 아내 낸시의 시체, 그리고 2층 침실에서 잠옷을 입은 채 침대에 엎드려 숨져 있는 아들 대니얼의 시체였다.
정황상 외부에서 침입한 흔적이 없었다는 점, 그리고 벤와가 자살을 했다는 점 등을 토대로 벤와가 아내와 아들을 살해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벤와와 그의 부인인 낸시의 다정한 모습. | ||
이에 수사당국은 지난 7월 17일 공식적으로 벤와가 스테로이드 등 약물에 중독된 상태에서 아내와 아들을 죽이고 자신도 자살했다고 밝혔다. 즉 약물과다복용으로 인한 ‘우발적인 사고’에 가장 무게를 두고 있는 것. 평소 스테로이드제를 과용했던 그가 순간적으로 통제력을 상실해서 사건을 저지른 것 아닌가 하는 것이다. 실제 자택에서는 근육 증강제인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단백질 동화 스테로이드)와 함께 다량의 진통제와 신경안정제 등이 발견되었다.
또한 부검 결과 벤와의 시신에서도 정상보다 10배가량 많은 양의 테스토스테론과 함께 다량의 항우울제와 진통제 등이 검출되었다. 하지만 약물이 살인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정확한 증거는 없다는 것이 검시관의 설명. 사람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우울증이나 정신착란 등과 같은 심각한 부작용을 앓는 경우는 극히 드물며, 벤와의 경우 지난 4월 실시한 WWE의 도핑 검사에서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그가 과음을 한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것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됐다.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빈 맥주 캔 10개와 와인 병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역시 직접적인 살해 동기는 될 수 없다고 검시관은 말했다.
또 다른 살해 동기로는 가정 불화를 꼽을 수 있다. 부인 낸시와 심심치 않게 말다툼을 했던 그가 싸움 끝에 순간적으로 일을 저질렀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03년 낸시는 한 차례 이혼소송을 낸 바 있었다. 이유는 벤와의 폭력 때문이었다. 그가 집안 가구를 부수거나 폭력을 일삼는다고 주장했던 낸시는 당시 벤와의 접근금지 명령을 신청하는 등 강력하게 이혼을 요구했다.
▲ 아들 대니얼과 함께 사진을 찍은 크리스 벤와. | ||
조심스럽게 거론되고 있는 또 다른 살해 동기로는 오랫동안 숨겨 왔던 아들 대니얼의 건강 문제가 있다. 이런 주장은 대니얼의 팔에서 발견된 희미한 주사바늘 자국 때문이기도 하다.
다름이 아니라 대니얼이 남모르게 ‘취약성 X 증후군’을 앓고 있었다는 것. 이는 비록 태어날 때에는 정상이지만 자라면서 점차 말이나 행동발달이 더디어지는 증세로 보통 자폐증이나 정신지체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런 까닭에서였는지 대니얼은 일곱 살치고는 체구가 작았고, 이를 염려한 벤와가 아들에게 성장 호르몬을 투여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아들의 장래에 대한 걱정 끝에 벤와가 극단적 선택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대니얼의 외조부는 이런 소문을 강력하게 부인하면서 “대니얼은 지극히 정상적인, 건강한 아이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WWE 측은 “모르긴 몰라도 대니얼의 건강 문제로 부부 간에 다툼이 잦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사건 발생 하루 전날에도 낸시가 벤와의 주치의와 통화를 했으며, 다음 날에는 벤와가 직접 주치의를 찾아가 면담을 하고 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말다툼이 시작됐고, 결국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까지 사태가 번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로선 이 세 가지 모두를 명확한 살해 동기라고 단정 짓기란 힘든 상황이다. 유서 한 장 없고, 또 벤와가 생전에 사건과 관련해서 주변에 언급한 내용도 전혀 없기 때문이다.
현재 범인보다는 살해 동기를 중심으로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과연 벤와가 어떤 이유로 비극적인 결말을 택했는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