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 짓밟힌 일본 열도 부글부글
▲ 지난 2004년 한일의원연맹 후원으로 한국에서 스모 시범경기를 갖은 몽골 출신 ‘최강 요코즈나’ 아사쇼류의 모습.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1997년 17세의 나이로 일본에 스모 유학을 와서 1999년 프로 스모선수로 데뷔한 아사쇼류는 연승을 거듭하며 불과 4년 후인 2003년 요코즈나의 자리에 올랐다. 그는 일본 스모사상 처음으로 일곱 차례 연속 우승(통산 21승)과 매년 여섯 차례 열리는 정기 시합을 모두 승리하는 신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그는 뛰어난 실력만큼이나 방약무인한 태도로 과거부터 적지 않은 문제를 일으켰다. 그런 와중에 ‘꾀병’을 핑계로 경기에 출전하지 않자 일본의 언론과 국민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요코즈나로서의 자질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면서 은퇴 압력을 가하고 있다.
아사쇼류 중징계의 계기가 된 것은 ‘꾀병 소동’이었다. 그는 허리와 무릎 등의 부상으로 전치 6주의 진단을 받아 여름 순회 행사를 빠지고 몽골로 돌아갔다. 그러나 몽골에서 얌전히 휴양을 하고 있어야 할 아사쇼류가 며칠 후 멀쩡하게 축구를 하고 있는 모습이 일본 TV에 방송됐다.
이에 대해 일본스모협회는 9월과 11월에 있을 시합의 출장 정지와 함께 30% 감봉, 4개월의 자택 근신이라는 이례적인 중징계 처분을 내렸다. 아사쇼류 측에서는 “징계 처분에 대한 충격으로 노이로제에 걸려 매일 신경안정제를 복용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일본의 언론은 ‘아사쇼류에게 은퇴 권고’ ‘노이로제도 꾀병’이라는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스모(相撲)는 ‘도효(土俵)’라고 하는 둥근 씨름판에서 두 선수가 몸을 부딪치거나 상대의 무릎이 먼저 땅에 닿게 하거나 씨름판 밖으로 밀어내는 쪽이 이기는 게임이다. 스모는 신화에 그 원형이 등장할 만큼 오래된 일본 전통의 격투기다. 또한 신 앞에서 행하는 의식(儀式)이라는 의미도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까다로운 법도나 예절이 요구된다. 예를 들어 상대에 대해 도발적인 제스처를 취하거나 자신의 패배에 불만을 표시하는 등의 행동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아사쇼류는 시합에서 진 후 경기장을 떠나면서 큰 소리로 욕설을 하거나 이미 승리가 결정된 상황에서도 상대방을 공격하는 등 스모의 매너를 지키지 않았다. 몽골 출신 요코즈나의 거친 행실은 많은 일본인에게 일본의 문화와 스모에 대한 존중이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그는 결국 ‘비호감’으로 낙인찍히게 됐다.
요코즈나가 출장 정지 처분을 받은 것은 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하니 꾀병 소동은 그동안 벼르고 있던 일본스모협회가 그를 따끔하게 혼낼 좋은 구실이 된 셈이다. 그 배경에는 요코즈나로서 일본 생활과 스모에 전념하지 않고 한창 시즌 중임에도 불구하고 수시로 몽골에 들락날락하는 모습에 대한 불만도 있다.
일본스모협회에서는 선수들의 부업을 금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사쇼류는 몽골에서 여행사, 인재파견회사, 은행 등 몇 군데 회사의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물론 실제 경영자의 이름은 부모나 형제들의 이름으로 되어 있지만 그가 일본에서 벌어들인 수입이 사업자금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번 감봉 처분으로 그가 입게 된 손해는 최대 5000만 엔(약 4억 원)에 이른다. 뼈아픈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그가 꾀병을 핑계로 몽골에 돌아간 것도 자신의 사업체를 돌보기 위한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 스모 선수에 따르면 나고야 시합을 앞둔 지난 6월 아사쇼류가 “올해의 여름 순회 행사 기간이 너무 길어서 어딘가에서 부상이라도 당해서 빠져야겠다”고 말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리고 실제로 여름 순회 행사 직전 “여름 행사를 쉬고 몽골에 돌아가 몸과 마음의 휴식을 취한 후 9월 시합에 대비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노이로제를 핑계로 꾀병 소동에 대해 아직 어떠한 공식적인 해명이나 사과도 하지 않은 상태다.
은퇴 압력을 받고 있는 아사쇼류의 향후 행보는 어떻게 될까. 그는 이미 이번 소동이 일어나기 전부터 “스모에 싫증이 나서 조만간 그만둘 것”이라는 이야기를 주위에 털어놨다고 한다. 그의 지인은 “단골 가게에서 함께 술을 마시고 있던 아사쇼류가 ‘이젠 스모가 하기 싫다. 내년에는 스모를 관두고 K-1에서 활동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라며 이 이야기를 뒷받침했다.
실은 약 2년 전에 K-1에서 비밀리에 아사쇼류와 접촉을 꾀한 적이 있었다. 계약금 8억 엔(약 63억 원)에 연간 4~5회 시합하는 조건으로 대전료 4억 엔(약 32억 원)을 제의받았지만 당시에는 아사쇼류가 유일한 요코즈나였기 때문에 스모를 그만두지 못했다고 한다. 그밖에 미국 ‘UFC’ 등 이종격투기 단체에서도 러브콜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 꾀병 소동 이후로 이종격투기계의 스카우트 제의가 완전히 끊긴 상태다.
아사쇼류가 그동안 보였던 불성실한 태도에 질린 일본스모협회와 국민들은 이번 소동으로 완전히 정이 떨어진 듯 “그런 요코즈나라면 다음 시즌에 돌아오지 않아도 전혀 상관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박영경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