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경찰’ 등 영화 속 조선족 묘사 “악의적이다” vs “영화적 장치일 뿐”
논란이 촉발된 계기는 영화 <청년경찰>(감독 김주환·제작 무비락)이다. 박서준, 강하늘 주연으로 8월 9일 개봉한 영화는 8일 현재 550만 관객 동원에 성공했다. 패기 넘치는 두 명의 경찰대학생이 우연히 목격한 범죄를 소탕하는 내용이다. 개봉 이후 꾸준히 관객을 동원, 올해 여름 개봉한 한국영화 가운데 단연 눈에 띄는 성적을 거둔 화제작이지만 인기를 더할수록 한쪽에서는 조선족을 비하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조선족을 범죄 집단인 것처럼 악의적으로 묘사한 데다, 그들의 주요 거주지역인 서울 대림동을 실명 그대로 영화에 담아 범죄 소굴로 그렸다는 문제제기다.
조선족을 범죄의 온상으로 그리는 설정은 비단 <청년경찰>의 문제만이 아니다. 최근 제작되는 범죄, 스릴러 장르 한국영화에서 이제 조선족은 빠질 수 없는 존재가 된 분위기다. 장르적인 특성상 잔혹한 범죄를 소재로 하는 이들 영화에서 조선족은 대부분 범죄를 일삼는 청부살인업자 등으로 등장한다. 조선족을 비하하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만든다는 사실에서 비난 여론이 서서히 형성된 상황. 그러다 <청년경찰>을 계기로 조선족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영화 ‘청년경찰’ 홍보 스틸 컷.
# <청년경찰> 묘사 어떻기에…대림동 우범지역 표현
재한동포총연합회 등 30여 개 단체들은 ‘중국동포, 다문화,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한국영화 바로 세우기 범국민대책위원회’(대책위)를 구성하고 “최근 한국영화 속 중국동포 묘사가 편견을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분명 허구의 이야기인데도 중국동포를 악의적으로 묘사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고착시킨다는 목소리도 높였다.
집단 항의의 기폭제가 된 <청년경찰>에는 서울 대림동이 주요 배경으로 등장한다. 실제로 중국동포가 가장 많이 거주하는 곳이다. 주인공인 두 청년은 소녀를 납치한 인신매매조직을 뒤쫓다 대림동으로 들어서고, 그곳에서 범죄를 일삼는 범죄자들과 만난다. 이들은 모두 조선족으로 묘사된다.
영화에는 조선족으로 이뤄진 범죄조직이 인신매매한 어린 소녀들을 폐건물에 감금하는 장면은 물론 그곳에서 난자를 채취하는 내용이 비교적 상세하게 그려진다. 중식당을 근거지로 둔 범죄조직이 청년들을 구타, 고문하는 장면도 있다. 영화 속 택시기사는 대림동을 “경찰도 손대지 못하는 동네”라고 말한다. 대책위는 한때 <청년경찰>에 대한 상영금지가처분 신청까지 고려한 것으로 알렸다.
<청년경찰>을 만든 김주환 감독은 조선족과 대림동을 범죄 온상으로 설정한 데는 특별한 의도는 없었다고 설명한다. “미국영화도 냉전시대에는 항상 적군은 러시아였다”는 감독은 “<신세계> 이후 조선족이 적으로 나오는 영화가 늘었는데, 어떤 편견을 갖고 있지 않고 영화적인 장치일 뿐”이라고 밝혔다.
2010년 나홍진 감독이 영화 <황해>에서 중국동포를 청부살인업자로 그려낸 것을 시작으로 <신세계> <차이나타운> <아수라>까지 인기 범죄영화들이 같은 설정을 답습해왔다. 이들 작품에서 중국동포는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잔혹한 살인을 서슴지 않는 집단으로 줄곧 그려졌다.
10월 개봉하는 마동석·윤계상 주연의 <범죄도시> 역시 중국동포로 이뤄진 범죄 집단들에 관한 이야기다. 물론 2000년대 초반 실제 국내서 벌어진 조선족 조직간 대립을 그린, 실화 소재인 만큼 이번 논란에서는 한 발 비껴나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범죄 소재 영화들이 굳이 조선족을 범죄자로 설정하는 데 있어서, 특별한 이유나 개연성을 부여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책위는 “열심히 일하면서 살아가는 중국 동포들의 이미지를 고의로 훼손하는 것을 삼가고, 우리가 함께 살아갈 만한 사회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영화 ‘황해’ 홍보 스틸 컷.
# 조선족 묘사 폭력만? 현실적인 접근 시도
논란이 거세지만 한편에서는 조선족 문제를 현실적으로 그리려는 시도도 있다. 조선족을 왜곡해 묘사하는 일부 영화를 향한 비판의 이면에서 “전부의 문제는 아니다”라는 영화계 목소리다. 개봉을 준비 중인 신하균·도경수 주연의 <7호실>과 촬영을 앞둔 이나영 주연의 <뷰티풀 데이즈>가 대표적이다.
이들 영화는 국내 거주 중국동포의 일상에 현실적으로 접근한다. 몇몇 범죄영화가 수위를 한껏 높여 폭력의 상징으로 조선족을 바라보는 방식과는 확연히 다르다. 각각 사연을 가졌지만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담아내는 데 주력한다.
촬영을 마친 <7호실>에는 조선족 청년이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폐업 위기의 DVD방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영화에서 배우 김동영이 연기하는 조선족 청년은 돈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에 매진하는 착실하고 성실한 모습을 보인다. 실제 국내서 살아가는 대다수 중국동포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7호실>의 이용승 감독은 최근 한국영화 속 조선족이 폭력적으로 그려지는 데 아쉬움을 갖고 자신의 영화에서는 “복덩이로 그리고 싶었다”고 밝혔다. 영화는 개봉에 앞서 7월 열린 제21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작으로 소개돼 호평을 이끌어냈다.
이나영의 연기 복귀작으로 관심을 끄는 <뷰티풀 데이즈>도 비슷하다. 중국으로 탈북한 여성이 조선족과 어우러져 삶을 이어가고, 다시 한국으로 옮겨오는 과정을 담는다. 실화 소재인 만큼 현실성 높은 이야기다. 특히 주인공인 탈북 여성이 중국에 두고 온 조선족 아들이 극의 또 다른 축이 될 것으로 알려진 만큼 영화가 풀어낼 조선족의 모습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