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 재심 결과 축소·왜곡 의혹…시교육청 감사에 “부당·위법” 비난하기도
지난 4월 경기도 가평의 한 수련원에서 숭의초 3학년 학생 4명이 같은 반 학생 유 아무개 군(10)을 집단으로 폭행했다. 이 가해 학생 가운데 배우 윤손하의 아들과 금호아시아나 그룹 박삼구 회장의 손자인 A 군(10)이 포함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론이 들끓었다. 더욱이 당초 숭의초의 자체 학교 폭력 조사의 가해 학생 명단에서 A 군이 누락됐다는 사실도 밝혀져 비난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졌다.
‘수련회 학교 폭력 사건’으로 지난 6월부터 서울시교육청의 특별장학과 서울시학교폭력지역위원회의 재심이 진행됐던 숭의초 전경.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서울시교육청은 특별장학을 통해 숭의초 교장, 교감, 생활지도부장 등 3명은 해임, 담임교사 정직 등 관련자 4명에 대해 중징계처분을 내릴 것을 요구했다. 서울시 학교폭력대책지역위원회의 재심에서도 숭의초가 “폭력이 아니라 아이들 사이에서 흔히 있는 일”로 주장했던 사건에 대해 “학교 폭력이 맞다”고 확인하기도 했다.
시교육청의 감사에서 숭의초가 사건 목격 아동의 진술서가 포함된 총 6장의 초기 진술서를 분실한 사실이 드러났다. 또 숭의초 교사가 정당한 이유 없이 A 군의 어머니에게 아이의 진술서를 휴대전화로 찍어 보내거나, 이메일로 학교폭력위원회 결과를 보내준 정황이 드러나 경찰이 수사에 나서기도 했다. 학교 측이 사건을 축소하거나 은폐하려 한 의혹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가 확인된 것이다.
A 군의 가담 여부가 명시돼 있을 중요한 자료가 누락되거나 중간에서 유출되면서 서울시 학교폭력대책지역위원회 측은 “제출된 문서만으로는 A 군의 학교 폭력 사건 연루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즉, 학교 폭력 사건은 있었으나 A 군이 가담을 했는지 여부를 가리기에는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자료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다만 나머지 3명의 가해 학생들에 대해서는 서면 사과 조치를 내려 학교 폭력 사건이 실재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했다.
그런데 이런 결과가 나오자마자 숭의초가 ‘호외’를 뿌리기 시작했다. <숭의초 학폭 재심 “재벌 손자, 가해자 아니다” 결론>이라는 헤드라인의 이 호외는 일부 기자들에게 전달됐다. 숭의초 측은 “서울시 학교폭력대책지역위원회의 결과가 나온 만큼, 서울시교육청이 요구한 교직원 징계 요구는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서면 사과 조치가 내려진 다른 가해 학생들을 언급하면서도 “(이번 사건은) 장난에서 빚어진 사건”이라며 사안이 부풀려졌음을 재차 강조하기도 했다.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상 가장 낮은 징계라는 점을 부제목으로까지 달기도 했다.
숭의초는 여기서 더 나아가 “서울시교육청의 숭의초 교직원에 대한 징계 요구 사유는 이번 서울시 재심 결과에 비춰보면 중대하고 명백한 사실 오인이며, 부당하고 위법한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서울시교육청과의 전면전을 선포한 것이다. 이미 숭의초는 사건이 보도된 지난 6월 한 매체와의 전화 통화에서 숭의초 교장이 ”우리는 교육청은 하나도 안 무섭다“는 발언을 했다고 알려지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서울시와 시교육청이 즉각 반발했다. 서울시는 숭의초가 보도자료를 뿌린 지난 1일 오후 부랴부랴 해명자료를 내고 “피해학생이 존재하는 만큼 이번 사건은 학교 폭력 사건이 맞고, 재벌 손자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증거 자료가 부족해 판단이 불가능하므로 미조치한 것이지 가해자가 아니라고 한 바 없다”고 맞섰다. 한 서울시 관계자는 “도무지 학교가 왜 이랬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어떤 이유에서 미조치됐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이런 주장을 해 피해 학생에게 서울시가 대못을 박은 것처럼 되지 않았나”라고 혀를 차기도 했다.
“부당하고 위법”이라는 주장에 맞닥뜨린 시교육청은 강도 높은 비판으로 맞섰다. 시교육청 측은 “숭의초의 주장은 서울시의 재심 결과를 완전히 왜곡한 것”이라며 “애초에 서울시가 재벌 손자에 대한 판단을 내리지 못한 것은 숭의초가 사건을 축소·은폐했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사건 직후 학폭전담기구를 마련하는 것도 지연시키고, 재벌 손자의 가담 여부를 알 수 있는 초기 진술서를 분실해 사건 조사를 어렵게 만들었으면서도 이를 악용해 왜곡된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숭의초가 학교 폭력의 가해자가 아니라고 당당히 주장하고 있는 재벌 손자 A 군은 또 다른 학교 폭력 사건의 당사자이기도 하다. 수련회에 플라스틱 야구 방망이를 들고 갔던 A 군은 아이들이 잠을 자라는 자신의 명령을 듣지 않았다는 이유로 방망이를 휘둘러 2명을 때렸다. 이 사건 역시 시교육청이 숭의초를 감사하면서 지적하고, 이에 대한 학폭위를 별도로 열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지켜지지 않았다. 도리어 A 군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털어놨던 피해 학생들이 “학폭위를 열지 말아달라”고 탄원서를 제출하기까지 했다. A 군의 어머니 역시 탄원서를 냈는데, A 군도 이 폭행 사건의 피해자라는 취지로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숭의초는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해 학폭위 개최 여부를 이달 중으로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미 이 사건이 한 학부모에 의해 학교 내에서 공론화됐을 때도 “다른 피해 학생들이 학폭위 개최를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묵살한 바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추가 학교 폭력 사안에 대해서도 유야무야 넘어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