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드에 몰아친 멕시코 천사 열풍
▲ 오초아 열풍이 골프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 ||
미 LPGA 그린을 평정하면서 새로운 ‘골프 여제’로 등극한 오초아가 멕시코의 영웅이자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비단 멕시코뿐만이 아니다. 골프에는 통 관심이 없던 히스패닉계 사람들이 ‘오초아 열풍’에 동참하면서 골프에 심취하기 시작한 것. 8월에만 3연승을 거두면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오초아는 올 시즌 6승을 거두어 LPGA 투어 단일 시즌 최다 상금 기록을 갈아치웠다.
그녀가 올해 거둬들인 상금은 8월 말 현재 289만 1590달러(약 27억 2600만 원). 이는 아니카 소렌스탐이 2002년 세웠던 286만 3904달러(약 27억 100만 원)를 넘는 것이며, 앞으로 남은 10개 대회에서 단 한 번이라도 우승할 경우에는 LPGA 역사상 최초로 한 시즌 300만 달러를 돌파할 가능성도 있다. 골프 변방국인 멕시코에서 세계 최고의 자리에 우뚝 선 세계랭킹 1위 오초아의 면면을 살펴 보았다.
어린 시절부터 ‘골프 신동’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자라긴 했지만 사실 오초아가 이렇게까지 성공하리라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멕시코 전체 인구 1억 700만 명 중 골프를 즐기는 인구는 고작 1만 8000명 정도였으며, TV는 물론 잡지나 신문에서도 골프에 관한 기사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멕시코 사람들은 축구나 야구에만 열광할 뿐 골프에는 아예 관심이 없었다.
이런 골프 불모지에서 골프 영웅이 탄생했다는 것은 거의 기적이나 다름없는 셈.
오초아가 처음 골프채를 잡기 시작한 것은 5세 때였다. 부동산 중개업을 하던 아빠와 화가인 엄마 밑에서 태어난 오초아는 비교적 넉넉한 가정에서 자랐다. 당시 골프를 치던 아빠와 오빠들을 따라 집 근처에 있는 골프장에 놀러 간 것이 골프에 눈을 뜨게 된 계기였다. 아빠를 따라 골프장을 다니면서 오초아는 금세 아빠와 오빠를 뛰어넘는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6세 때 이미 지역 골프대회에 나가 우승했는가 하면 7세 때에는 전국대회인 내셔널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하는 등 천재적인 면모를 나타냈다. 6세 때 오초아를 골프장에서 처음 본 후 지도하기 시작했던 PGA 출신의 라파엘 알라르콘 코치는 “오초아는 매우 당찬 소녀였다. ‘왜 골프를 그렇게 열심히 치니?’라고 묻자 오초아는 ‘세계 최고가 되고 싶어서요’라고 대답했다”라고 회상했다.
이런 목표를 달성하려는 듯 오초아는 주니어 시절과 애리조나 대학 시절 숱한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두각을 나타냈다. 그녀는 이런 기세를 몰아 2002년 프로로 전향했다. LPGA 2부 대회인 ‘퓨처스 투어’에서 상금 랭킹 1위에 오른 오초아는 이듬해인 2003년 꿈에 그리던 LPGA에 데뷔해 ‘올해의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돌풍을 예고했다.
2004년 멕시코인으로서는 최초로 LPGA 투어에서 우승을 하면서 일약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른 오초아는 그해 시즌을 2승으로 마감하면서 상금 랭킹 3위에 올랐다. 2005년 LPGA 1승에 그치면서 주춤했던 오초아는 지난해부터 다시 폭발적인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2006년 ‘삼성월드챔피언십’에서 소렌스탐을 상대로 역전승을 거두면서 인상 깊은 경기를 펼쳤던 오초아는 시즌 6승을 기록하면서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올 8월엔 ‘브리티시 오픈’에서 우승하면서 생애 첫 메이저 대회 우승이라는 기쁨도 누렸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이처럼 골프 역사를 다시 쓰고 있는 오초아에 대한 멕시코인들의 사랑은 뜨겁다 못해 폭발적이다. 오초아 역시 조국인 멕시코와 국민들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그녀는 한 인터뷰에서 “나는 조국을 위해서, 그리고 멕시코 국민을 위해서 경기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 지난 26일 미국 세이프웨이 클래식 골프대회에서 우승한 뒤 트로피에 입맞춤을 하는 오초아. AP/연합뉴스 | ||
멕시코 전역에 걸쳐 골프 아카데미를 설립하는 것이 꿈인 오초아는 더 나아가 골프를 배우고 싶은데 형편상 배울 수 없는 가난한 어린이들을 위해서 무료 아카데미를 열 계획도 세우고 있다.
알라르콘 코치의 말에 따르면 “오초아의 진짜 목표는 단순히 세계적인 골프선수를 육성하는 것이 아니다. 골프를 통해서 멕시코 어린이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이런 까닭에 오초아는 골프와는 전혀 상관없는 ‘로레나 오초아 재단’을 설립해서 교육부문의 자선 활동도 하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오초아 재단은 325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한 바 있다.
또한 그녀는 일반인들을 위한 골프 문화를 확산시키고자 하는 꿈도 갖고 있다. 그녀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퍼블릭 코스와 퍼블릭 연습장을 짓고 싶다. 골프가 광고에도 나오고, 잡지에도 나오고, 또 TV에도 나왔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나타냈다.
지금 이대로라면 그녀의 이런 꿈이 이루어질 날도 얼마 남지 않은 듯싶다.
한편 오초아의 등장으로 이미 LPGA에는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언제부턴가 LPGA 투어가 열리는 골프장에는 히스패닉계 갤러리들이 부쩍 늘었다. 한 관계자는 “골프대회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고 놀라워했다.
소렌스탐마저 오초아의 인기에 기가 꺾였던 적이 있었다. 지난해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마스터카드 챔피언십’. 둘째 날 대회를 마친 후 기자회견장에서 오초아에게 홀딱 빠진 대부분의 멕시코 기자들은 마치 오초아 말고는 다른 선수들은 자리에 없는 듯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오초아의 기자회견이 끝난 후 곧바로 소렌스탐의 회견이 이어졌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기자들이 우루루 오초아를 따라 나가는 것이었다. 황당한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뜬 소렌스탐은 “모두 가버렸네!”라며 멋쩍어했다는 후문이다.
오초아가 이렇게 인기가 있는 것은 비단 실력 때문만이 아니다. 그녀의 됨됨이와 자상함이 팬들을 더욱 감동시키고 있는 것. 일례로 오초아는 경기가 끝난 후에는 늘 갤러리 사이로 걸어가 멕시코인들에게 일일이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어딜 가나 “난 멕시코 사람인 게 자랑스럽다”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녀의 애국심도 인기에 한몫하고 있기는 마찬가지.
명실상부한 ‘골프 여제’ 자리에 오른 오초아의 진정한 승리는 오초아 개인의 우승이 아니라 멕시코 전체의 우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